최고 지도자론(最高 指導者論)(Ⅲ)-대한민국이 필요한 지도자상 I 정성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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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지금 우리나라는 매우 급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래서 급조된 지도자가 나올 수 있다. 앞서 말했던 조동진 박사의 글을 보면 대강 7가지 지도자상이 있다고 한다.
1) 독재적 지도자상 2)가부장적 지도자상 3)당파적 지도자상 4)방임(放任) 주의적 지도자상 5)전문가적 지도자상 6)관리적 지도자상 7)민주주의적 지도자상 등으로 분류되고 있다. 독재정권으로 상징적인 존재였던 로마 제국은 전제자를 뽑을 때는 밤의 어두움 속에서 선출했었다고 한다. 로마 시민들은 독재자에게 권력을 주면 포악하고 독재적인 통치로, 전제적이고 권세 적인 정부, 절대적 군주로 되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독재적인 지도자는 즉흥적으로 하고 싶은 대로 결정한다. 그 독재자는 국민의 정서나 안위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는다.
독재자라는 말을 생각하면 <시이저> <루이 14세> <징기스칸> <히틀러> <스탈린>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세습으로 이어지는 북측 지도자들이다. 그들은 환상과 공포 적인 것을 적절히 조정하고 마지막에는 환희를 이끌어가는 연출자들이다. 이런 독재자의 약점은 너무 화려하고 찬란하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독재자들에 비하면 대한민국 수립 이후의 대통령들은 독재자가 아니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재물을 탐한 일이 전혀 없고, 시대적 소명(召命)을 다했을 뿐이다. 하지만 반대자들은 그들에게 독재자라는 프레임을 씌우면서, 서서히 사람들은 붉게 물들게 되었다. 그래서 70년 동안 북쪽 공산당을 이끈 독재자들에게는 흠모의 정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진정한 지도자(Statesman)는 권력에 대한 본능도 있지만, 국가와 국민에 대한 사랑에서만 영감을 받는다는 말이 있다.
가부장적인 지도자상도 있다. 이런 경우 지도자와 대중과의 사이가 완전히 일치를 이룬다. 이런 지도자는 아버지와 같은 태도를 가지고 그 집단의 개개인의 관심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독재적 지도자는 자신을 대중과 동일시 한다. 그런데 이런 지도자의 약점은, 독재적 지도가 제거되면 대중이 속수무책이 되듯이, 가부장적 지도자가 사라지게 되면 대중은 허탈감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북한의 김가 3대(代)는 가장 독재적이면서도 자신을 어버이로 둔갑시켜, 숭배하도록 하는 김일성 종교를 만들었다. 공산주의는 종교이다.
그리고 당파적 지도자상도 있다. 유대인은 특별 사명의 부르심을 입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종족을 철저히 무시해 왔다. 당파적 지도자는 확신이 강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집단적 약점을 작게 하려고 한다. 특히 지도자가 창설자이고 대표인 경우는 필사적이다. 그런 지도자는 특별한 분야는 유능하지만, 전체를 아우르고 통합하는 시야가 좁다. 그러다 보니 이런 지도자는, 자신을 특수한 무리와 동일하게 생각하면 매우 편파적이고 소견이 좁은 지도가 된다.
또 방임(放任)주의적 지도자상도 있다. 허버트 스펜서는 「최소한의 통치를 하는 정부가 최선의 정부이다」라고 했다. 이와 같은 간접적 방법은 인간들의 본성과 죄악에 대해 스스로 교정할 수 있고 회복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적 사고방식이다. 최고 지도자 유형에는 전문가적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 분야의 전문가가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므로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 드리고 전문 분야를 통합하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관리자 적 지도자상도 있다. 관리자 혹은 집행자란, 전체적인 목표가 세워지고 그것을 좀 더 확장시키거나, 새롭게 하는 능력을 가진 지도자를 말한다. 그래서 관리적 지도자는, 사람들을 통하여 무엇을 얻어내는 기술자이며, 과학이며, 목적 있는 활동의 기술을 지향한다.
우리가 원하는 지도자상은 두말할 필요 없이 <민주주의적 지도자상>이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근원적으로 보면 정치적인 결정을 할 때, 전체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정부 형태를 뜻한다. 그 후에 이 권리는 국민이 대표자들을 선출하는 방법을 통해 행사되었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전형적인 민주주의 지도자의 활동은 그 집단의 필요에 따라 결정되는 셈이다. 때문에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은, 이런 국민의 필요를 좀 더 구체성을 가지고 명확히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민주주의적인 최고 지도자는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대원들에게 온화한 해석을 붙여 주면서, 교향악 적 효과를 더해가며 조화와 협력을 이루어가는 것과 같다.
민주주의적 지도자의 능력은 집단의 참여에 의해 특정 지어진다. 단체 토론과 경청에 따라서 정책이 결정되면 대중들을 격려하고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집단이 최고 지도자를 뽑는 선거에 부정이 있었다면, 그것 자체가 비민주적일 뿐 아니라, 나라를 망하게 하는 범죄가 되는 것이다. 한국은 십수년간 부정선거의 시비가 있었으나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판결 없이 어물적 넘어갔다. 부정선거는 그 자체가 독재적 나라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다. 최고 지도자는 모든 것을 통합하고 조정하는 도덕적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 박사는 「정부는 반드시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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