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崗산책(7) - 자책골을 회상하며 I 신석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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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환 목사
언제였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월드컵 결승전에서 승부차기에 실패한 프랑스 선수가 있었고 그가 땅을 치며 괴로워했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러나 그는 회복할 수 있었다. 절치부심하여 자책골을 만회할만한 경기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는 운이 좋은 인간이었다.
각종경기에서 벌어지는 자살골 자책골, 그리고 각종 킥에서의 실축은 그 선수에게는 참으로 씻을 길 없는 아픔으로 남는다. 그것도 다시 오기 힘든 빅게임에서 실수를 저질렀다면 그 상실감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그러나 언제까지 울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자책골의 추억을 속히 잊어버리고 다시 공을 차라고 격려한다. 남의 일이면 쉽게 말하겠지만 막상 내 일이 되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다시 찰 기회도 없이 운동장에서 나가야만 하는 선수의 막막함은 그저 물러나서(退) 숨는(隱)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문제는 인생살이에서 겪는 삶의 자책골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생은 자책골의 연속일지 모른다.
세월은 빠르고 반드시 오늘은 내일의 어제가 되기 때문에 애써 잊어버리려 노력하지 않아도 인간에게는 망각의 저장탱크가 있어 거기에 일단 넣어버린다.
신기한 일은 몇 십 년 동안 정말 까맣게 잊고 살았던 그 저장탱크 밑바닥에 죽은 듯 엎드려 있던 옛날의 자책골, 그 환영(幻影)이 이제 은퇴를 하고 모든 관심사에서 한 발 물러나 살고 있다는 오늘 불현 듯 나타나 괴롭힌다는 사실이다.
어느 시인이 쓴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가을에는 겸손하게 하소서” 은퇴 후의 삶은 가을과 비슷하다. 그것도 스산한 늦가을을 닮았다. 그러나 시인은 손 털고 지는 낙엽을 보면서도 겸손하지 못한 자아를 성찰했는가보다.
넉넉한 마음으로 액자에 끼워둔 가을을 관조하던 시인이 문득 뼈아픈 자책골의 추억을 목격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자책골의 환영은 필요한 계영배(戒盈杯)일지도 모른다.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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