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河 에세이(7) I 인생 장막(帳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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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록 목사(선교사, 수필가)
소유욕에 집착한 인생은 그 마음에 여유가 없다.
일평생 자기 명의의 장막에 메여 사는 자는 불쌍하다.
우주적 장막 관을 갖은 자는 그 영혼이 자유롭고 복되다.
어느 추운 겨울날 거지 부자(父子)가 육교아래서 잠을 자고 있었다. 이들은 새벽녘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 눈을 떴다. 바로 옆의 고층 아파트에서 불이 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우성치며 떨어져 죽어가고 있었다. 때마침 경찰차, 소방차, 앰뷸런스 차들이 달려왔다. 수많은 구경꾼들까지 합세하니 일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阿修羅場)으로 변했다.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거지 아들이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우리는 저렇게 불날 걱정이 없어서 좋아요.” 뜻밖의 얘기에 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이 녀석아, 모두가 이 애비 덕인 줄 알라.”
거지는 인생장막이 없다. 굳이 말한다면 하늘이 그들의 천장이요 온 땅이 누울 마루인 셈이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밟는 것이 내 땅이고 눕는 곳이 내 집이다. 비록 춥고 배고프지만 그래도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 있고 낭만이 있다. 유럽의 집시족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문명의 이기(利器)를 거부하며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장막을 치며 산다. 이 장막은 늘 한시적이며 곧 철거를 전제로 한다.
장막생활을 했던 대표적인 민족은 이스라엘이다. 저들은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40년 동안이나 광야 길을 걸어야 했다. 20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땡볕에 시달리며 행군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더욱이 사막의 밤은 엄청 춥다. 쉼의 유일한 공간은 장막이었다. 저들은 날이 저물면 장막을 치고 해가 뜨면 거두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그러기에 땅의 장막에 미련을 둘 수 없었다. 그 장막은 하루 밤 쉼을 주는 안식처에 불과했다.
장막은 여러 종류가 있다. 구중궁궐, 웅장한 성(城), 잔디위의 그림 같은 집,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촌, 간이천막, 다리 밑 등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비싸고 화려한 곳을 선호한다. 그런 곳일수록 쾌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5성급 호텔에서 하루밤 묵으나 간이 천막에서 묵으나 본질적인 면에서 큰 차이는 없다. 둘 다 쉼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대저택에서 잠잔다고 숙면하리라는 법은 없다. 아라비아 사막같이 쉴 곳 없는 곳이 문제지, 인간이 등을 기댈 곳만 있으면 그것으로 자족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인생장막에 대한 생래적인 집착과 부담감을 갖고 있다. 가능한 많이, 넓게, 화려하게 지으려 한다. 현대인은 집 한 칸 마련하기 위해 사회생활 시작부터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을 쪼개어 주택부금을 든다. 허나 정작 주택하나 마련하고 나면 이미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게 된다. 기력은 쇠하고 퇴직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보게 된다. 장막을 소유하기 위해 달려왔건만, 성취의 만족과 희열은 잠시요, 이제 인생의 내리막길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에너지를 육신의 장막에 투자할 필요가 없다. 땅의 것에 마음의 중심을 두면 부자유하며 하늘 길 향해 집 떠나야 할 때 힘들어진다.
인생살이, 장막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장막은 인생의 필수적인 요소지만 그렇다고 행복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여 우리는 자기 명의의 장막에서 자유해야 한다. 보라. 20평짜리 아파트 소유자는 이 세상 누울 곳이 20평뿐이지만 우주적 장막 관을 가진 자는 온 세상이 누울 곳이다. 비록 내 소유는 아닐지라도 오늘 내가 밟는 땅, 묵는 곳이 있다면 그 순간은 내가 주인이다. 이 바쁘고 긴장감이 도는 세상, 집 없는 설움 탓하지 말고 가슴을 확 펴자. 그리고 옆으로부터 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아빠, 우리는 불 날 걱정이 없어서 참 좋아요.”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고후5:1-2).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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