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崗산책 (12) 곁에 앉는 사람 | 신석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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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환 목사
새해를 눈앞에 둔 지금, 지난 1년을 생각한다. 물론 목회 현역일 때 보다는 은퇴 이후의 삶이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목사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가 가벼울 수는 없다.
12월은 이제 쏜살처럼 우리들 곁을 떠날 것이다. 다른 달보다 다른 시간보다 다른 계절 보다, 더 짙은 여운을 남기며 급한 발걸음을 뒤로하며 모퉁이를 돌아설 것이다. 그러나 그리 서운해 할 필요는 없다. 그 모퉁이를 돌면 가는 세월만 있는 게 아니고 오는 세월도 있으므로, 또 다른 삶이 당신을 기다릴 테니 오히려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차라리 바보 같았던 또 하나의 당신을 훌훌 떠나보내고 지혜로운 또 하나의 당신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이제는 고인이지만 인도의 네루 수상은 생전에 “곁에 앉았던 사람”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네루 수상은 평화를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했었던 정치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의 이미지는 늘 국민들 곁에 앉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인도는 가난했던 나라인데 그래도 사람들은 네루를 존경하고 사랑했던 까닭은 사람들 곁에서 그들의 아픔과 빈곤을 함께 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요즘 사람들은 남을 위해 걱정하기 보다는 험담을 즐겨하고 이해보다는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려 애를 쓴다. 네루가 이 시대 사람이었다면 아마 무능한 지도자로 취급당했거나 아예 수상이 되지도 못했을지 모른다. 하여 소위 지도자를 자처하고 그 반열에 오르려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차라리 옛날 사람이 그리울 때가 많다.
인간이 살만하니 본성이 나오는 것 같다. 미국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다. 한국은 발 빠르게 선진국이라고 자화자찬하더니 거기 사는 인간들은 모조리 가붕개가 된 듯한 느낌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이 과연 선진국인지는 의문이다. 살인자건 전과자건 도덕 파탄자건 지도자가 되겠다고 아우성이고 그런 인간들을 지도자 반열에 오르도록 난리를 치니 참으로 목불인견이다.
교계는 어떤가. 정체를 모르는 사람도 얼마간 신학교에 다니고 “회개”했다고 말만하면 목사가 되고 오히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너나 잘하세요” 비난을 마지않는다. 신학교를 선지학교라고 불러대려면 가르치는 사람이나 학생이라는 인간이나 겸손까지는 그만두더라도 제 주제나 본분을 알아야할 일이다.
목사들이야말로 “곁에 앉아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성경에도 짐을 서로 나눠지라는 말씀이 많이 나오지 않는가. 그러나 그렇게 나눠지고 곁에 앉기는커녕 감투 하나씩 쓰고 서서 내려다보려고 호령하려 들지 않는가. 제발 다른 데 앉지 말고 교인들 곁에 앉아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는데 주력하기 바란다. 세월은 너무 빠르다. 목회 전선에서 사역을 감당했던 그때를 그리워할 때가 곧 온다. 지금 그 생각을 앞당겨서 열심히 고치고 수정하며 당신을 부르신 주인의 마음에 들도록 “앉는 연습”을 하기 바란다. 다른 목사의 손을 잡기보다는 불신자의 손을 잡고 교우들의 손을 잡아주며 그들의 곁에 앉아 들어주고 가르치는 사명자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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