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케 하소서 I 정성구 박사 > 초대칼럼

본문 바로가기

초대칼럼

「부흥케 하소서 I 정성구 박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카이로스타임즈
댓글 0건 작성일 25-04-01 13:39

본문

e7a105700c47677f9ff61da5b7a9daf4_1743529135_9903.png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45일은 <한국 기독교 선교 14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한국교회 선교를 말할 때 알렌(Allen)의 의료 선교사의 내한부터 따지는 것이 맞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1984년에 모든 교파가 연합하여 한국 기독교 선교 100주년 기념을 성대히 치렀다. 당시 한경직 목사와 최훈 목사가 주축이 되었고, 그 행사를 기획하고 총괄하는 일은 김경래 장로였다. 그는 현재 98세의 나이인데도 아직도 왕성하게 한국교회를 위해 일할 뿐 아니라,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 재단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당시 필자는 1984년에 총신대학의 학장으로 있었기에 여러 기념 세미나에 참석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나라에, 목사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입국한 것은 198545일 부활절 아침이었다. 이들은 부산항에 잠시 정박했다가 인천 제물포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이들은 일본의 요코하마에서 이수정이 번역한 <이두현토 성경><마가복음언해>라는 쪽복음 성경을 가지고 배에서 내렸다. 그런데 언더우드는 총각이었지만, 아펜젤러는 부인을 동반하고 있었고 임신 중이었다. 당시는 먼저 온 의사 알렌이 영접을 했었지만, 아펜젤러는 부인 문제로 입항이 불허되자 다시 일본으로 갔다가 두 달 후에 서울로 돌아오게 된다. 1884년 의료선교사로 온 알렌은 의사로서 광혜원(廣惠院)이라는 최초의 서양식 병원을 만들고 의학을 가르쳤다. 갑신정변 때 민영익의 깊은 상처를 치료하고 당당히 고종의 어의가 됐을 뿐 아니라, 대미(對美) 관계의 외교관으로 또는 미국이 파송한 공사관으로 큰일을 많이 했다.


앞서 말한 대로, 목사 선교사가 온 것은 1885년에 인천에 입국한 언더우드(H. G Underwood)와 아펜젤러(H. G Appenzeller)가 최초이다. 1984년에 한국교회가 초교파적으로 힘을 합해서 100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히 치렀으나, 당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측 총회의 입장에서는 목사, 선교사가 한국에 발을 디딘 것이야말로 한국교회의 시작으로 이해했었다. 그래서 1985년 선교 100주년 기념대회를 성대히 베풀었다. 그 일에 직·간접으로 간여한 필자로서는 당시 상황을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합동 측은 당시 증경 총회장이던 이영수 목사가 총회 선교위원장으로 대회장을 맡아 선교 100주년 기념 대회를 엄청나게 기획했었다. 45일 그날 오후 언더우드가 제물포에 도착하는 것을 실제로 재연하는 퍼포먼스를 했었다. 수많은 목사, 장로, 평신도들이 첫 번 선교사가 도착한 제물포에 운집했었고, 언더우드 가족 26명도 초대되었다. 큰 배에서 작은 배로 갈아타고 제물포로 들어올 때, 언더우드 가족 모두가 탑승했고, 그중에 젊은 언더우드 4세는 초기 선교사 역할을 했었다. 교단의 중진들도 배에 탔다. 최훈 목사, 김창인 목사, 이영수 목사, 이삼성 목사, 배태준 장로 등 그리고 필자도 배를 타고 제물포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린 언더우드 4세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땅에 엎드려 입을 맞추는 의식을 했고, 내한 감사예배를 드리는 중에 언더우드 1세의 아들인 원한경 박사가 축하 인사를 했었다.


그리고 40년 전 당시에는 자가용 승용차가 거의 없던 시대였기에, 100대의 대형버스와 200여 대의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인천 제물포에서 집회장소인 장충체육관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아주 장관이었다.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고 한국교회의 새로운 부흥 운동을 기원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날 밤 장충체육관을 가득 메운 성도들은 노회마다, 기관마다 깃발을 들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찬양을 했다. 그리고 증경 총회장 충현교회 김창인 목사님의 메시지가 있었고, 대회장인 이영수 목사는 전 세계에서 일하는 선교사들을 비행기로 모두 불러 모아, 한 분 한 분 소개했다. 그때 놀라운 감격과 역사가 일어났다. 그날 행사에 일본 고배신학교 류조 하시모토 교장도 우리 일정에 함께 했다. 또한 한 해 전 한국 기독교 100주년을 이끌었던 한경직 목사는 손님 자격으로 내빈석에 앉았었다. 필자는 이 모임에서 축도 순서를 맡았다. 지금부터 40년 전의 기록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언더우드는 구세 학당을 세우고 독립운동가들을 길러내고, 오늘의 연세대학교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대한예수교장로교회의 제1대 총회장을 역임했다. 언더우드 목사는 뉴욕대학과 뉴브론 스윅신학교를 졸업했는데, 화란 개혁교회 목사였다. 그러나 그 당시 재정문제로 개혁교회의 파송이 어려워지자, 장로교회로 옮겨 선교사 파송을 받고 오늘의 한국교회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리고 언더우드 가족은 자자손손 우리나라를 위해 일해 온 은인들이었다. 한국교회가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눈물의 기도와 복음 증거로 세계 선교의 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작금의 한국교회는 영적인 힘을 잃고 세속주의적이고 비 복음적인 일들로 교회의 숫자는 많아졌지만, 초기 선교사들이 전해 준 순수한 복음은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낙심할 것 없다. 다시 부흥할 수 있다. 필자는 하박국서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고뇌하는 하박국에게 하나님의 대답과 위로가 있는 후에 하박국은 고백하기를,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소서>(3:2)라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의 꼬락서니를 보면 하나님의 진노의 채찍을 맞아야 마땅하지만, 그래도 교회 지도자들은 <부흥케 하소서>라고 하나님께 매달려야 한다. 목회자들은 쓸데없는 인문학적 설교나 헛된 자유주의, 신비주의를 버리고 진리의 말씀에 놀라 자빠지고, 뒤집어져야 한다.


한국교회 선교 140주년 아침에 다시 부흥을 위해 기도하자!


<카이로스타임즈>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78건 1 페이지

검색


카이로스타임즈 TEL : 917-733-8682 Email : kairostimes23@gmail.com Name : Wonjung Yu
Copyright(C) 2023 카이로스타임즈.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