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독립만세운동과 신앙인의 민족역사의식 - 노재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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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화 목사(전 성결대 학장, 사회학/목회학 박사
매년 3월은 3.1기미독립만세운동의 기념행사로부터 시작된다. 1919년 3월1일 민족대표 33인이 탑골공원에서 낭독했다는 <31독립선언서> 서문은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로 시작된다. 고등학교 때에 어느 과목인지는 기억이 잘 안나는데, 이 선언문의 의미는 조선의 독립국임의 당위성을 밝히고 독립국으로서의 조선, 자주민으로서의 조선인을 선언한 글이라고 배웠다. 올해는 3.1.기미년 독립만세운동 기념일 106주년이 되는 해이며, 조국 대한민국의 방방곡곡, 그리고 해외 한인 디아스포라 750만명도 거류국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며 기념식을 거행하였다고 한다.
한민족의 역사에서 20세기 초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기였을 것이다. 1905년 일본 제국주의는 강압적으로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조선 땅에 통감부를 설치하여 외교권을 박탈해가고, 급기야 1910년, 일제는 조선의 국권을 강탈하고 식민지로 전락시키면서 우리 민족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억압 속에 놓이게 되였다. 일본은 우리말과 글을 빼앗고, 역사를 지우며, 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려고 했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도 한민족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존엄과 자유를 기억했고, 억압을 뚫고 역사의 주인으로 일어서고자 했다. 1919년, 바로 그 뜨거운 민족 역사의식이 3.1독립운동으로 꽃피웠다던 것이다.
이 3.1운동은 단순한 정치적 저항의 사건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되찾으려는 몸부림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창1:27), 억압과 속박이 아니라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하셨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타인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것은 죄악이다. 3.1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과 강탈 앞에서도, “자유와 독립”이라는 하나님이 주신 권리를 되찾기 위해 의분강개하여 분연히 일어섰던 것이다.
1919년 3월 1일, 당시 전체 인구의 1.1-1.3%에 불과한 기독교인은 민족대표 33인중 16인으로 이승훈, 길선주(목사), 오화영(목사), 박동완, 신석구, 신흥식, 양전백(목사), 유여대(목사), 이갑성, 이명룡, 이필주(후에 목사가 됨), 최성모(목사), 등과 천도교(15인), 불교(2인)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대한독립을 세계에 선포했다. 그 뒤로 학생, 농민, 상인, 종교인, 남녀노소를 막론한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와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 운동은 특히 기독교인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신앙적 의미가 깊다. 이후 1911년 105인 사건에도 개신교인이 92명이었다. 기독교는 일찍이 조선에 자유와 평등, 사랑의 가치를 전파했고, 신앙은 곧 민족을 살리는 희망이 되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는 말씀처럼, 믿음 안에서 우리는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를 꿈꾸게 되었다.
3.1운동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우리는 역사와 생명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의 백성이며, 정의와 평화를 이루는 민족이라는 자각이다. 독립선언서에는 “우리는 대한 독립국의 국민이며, 인류 평등의 대의를 밝히노라”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보편적 가치, 곧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거룩한 백성”(신7:6)이라는 믿음과 맞닿아 있다. 억눌린 현실을 넘어, 하나님 앞에서 자유롭고 존귀한 존재로서 살아가려는 한민족의 역사의식이 이 선언문에 담겨있다. 구약의 역사는 선민의 이스라엘 민족과 주위의 이민족과의 수 많은 투쟁의 역사로서 직접 하나님의 통치권에 속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민족과 모세의 출애굽 사건, 사사시대, 에스더와 모르두개, 등등...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3.1운동에는 종교와 계층을 뛰어넘는 연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기독교, 천도교, 불교가 하나 되어 함께 민족의 자주를 외쳤고, 지식인뿐 아니라 농민과 상인, 여성과 청년이 함께 거리에 섰다. “우리는 대한독립국의 국민이며, 세계만방에 알리노라”는 그 외침 속에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와 평등, 그리고 평화를 향한 열망이 담겨 있었다. 이런 모습은 사도 바울이 말한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는 말씀을 떠오르게 한다. 그날 거리마다 울려 퍼진 만세 소리는 억압을 넘어선 사랑과 연대, 평화의 외침이었다고 감히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3.1운동의 대가는 혹독하게 치렀다. 일제 군경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수많은 이들이 희생당했고, 마을이 불타고 가족이 흩어졌다. 하지만 성경은 말한다. “의인은 환난을 당하여도 여호와께서 그 모든 환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34:19). 실제로 3.1운동을 계기로 우리 민족은 더 깊이 하나가 되었고, 독립운동은 더욱 강해졌다. 해외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국내에서도 신앙과 정신을 지킨 독립운동이 끊임없이 이어졌다는 것이 연구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더욱이 우리에게 3.1운동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자 내일을 열어가는 이정표요 시대정신이다. 오늘 우리는 다시 3.1운동을 돌아보며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신 사명을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중에도 한민족을 지키셨고, 해방의 기쁨도 허락하셨다. 하지만 물질적 풍요와 편안함 속에서 우리는 과연 그 역사의 정신과 믿음을 지키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와 평화, 정의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또한 31독립운동과 당사자인 일본과의 관계는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끊임없이 다루어져야 한다. 일제는 이미 북간도에 농업이민과 그들로 하여금 자경단을 조직, 그 자경단이 관동군부의 모체가 되어, 노부교 사건과 만주사면,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근대 일본의 100년 전쟁의 중반전에 접어들었다. 일본 군부는 총력전 체제로 돌입, 식민지 조선의 전시체제의 병참기지화로 수탈과 강제노역 등으로 조선의 인적 물적 자원의 고갈되어 생활은 피폐해 갔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으로 일본제국주의는 막을 내리게 되고, 이로 인해 한민족은 40여년간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미완의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는 21세게 지구촌 글로벌시대에 일본의 과거 만행을 어찌하여야 한다는 말인가. 엡4:32, 마6:14-5, 마18:21-22, 히8:12 등에서 “...형제가 죄를 범하면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해라..”라고 말씀한 것처럼, 그들의 죄과는 철저한 회개 위에 용서는 하되, 절대로 그 죄과는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철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 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며, 기도하는 자의 것이다.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우리는 민족의 아픔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날의 만세 소리는 오늘도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있으며,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인공이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5:24)는 말씀처럼, 우리 민족이 정의와 평화의 강을 흐르게 하는 사명을 계속 이어가길 소망한다.
또한 역사는 지키는 민족만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과거의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며 역사는 과학이다. 우리가 경험한 역사는 긍정의 역사이건 부정의 역사이건 우리가 안고 가야 하는 것이다. 목회현장에서도 역사 왜곡되거나 편향적 역사관은 금물이여 후세에게 바른 역사교육과 의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 길이야 말로 31정신의 숭고한 뜻이며, 우리 기독교 선열들의 신앙 정신을 이어가는 길일 것이다. 그날의 만세 소리는 여전히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있으며, 우리는 여전히 역사를 만들어가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오늘, 우리가 외쳐야 할 만세는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를 향한 외침이어야 한다.
아멘!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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