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河 에세이(14)-크리스천의 애국애족(愛國愛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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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록(선교사, 수필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
사상은 피보다 진하다.
그러나 신앙은 모든 것을 초월한다.
조국(祖國) 대한민국이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문제로 휘청거리고 있다. 회사에 사장이 하루만 없어도 표시가 난데 벌써 국가 리더십이 혼선을 빚은지 3개월이 넘었다. 많은 사람들이 진영 논리에 갇혀 원수처럼 싸우고 있다. 주말이면 서울 광장은 북새통을 이룬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 엄동설한(嚴冬雪寒)에 얼마나 비생산적인 일인가? 이러한 진영 대결은 시민뿐만 아니라 국회와 언론계 그리고 일부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이렇게 국론이 분열된 적이 있었던가? 문제는 앞으로이다. 헌재의 탄핵선고가 어떻게 결론이 나던 그 후유증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만일 탄핵 인용이 되면 곧바로 대선정국으로 이어지면서 정파 간 반목현상은 극에 달할 것이다. 혼란스러운 이때 우리 크리스천들이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대통령 탄핵과 소회
익히 아는 바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12월 3일 밤10시27분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에 국회는 12월 4일 새벽 1시경 계엄령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윤 대통령은 12월 14일 국회에서 탄핵되었다. 2025년 1월 15일에는 공조수사본부에 의해 체포영장이 집행되었다. 이로서 대통령은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재판을 받아왔다. 이제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선고만 남겨두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정국은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시계 제로(視界0)”의 상황에 접어든 것이다. 우리는 기억한다. 9년 전인 2016년 겨울에도 이와 비슷한 사태가 있었다. 어떻게 10년도 안된 기간에 두 번씩이나 대통령 탄핵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아프리카 어느 부족 국가도 아니고 세계 10위권의 국력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이다. 더구나 한류로 인해 세계인이 우러러 보고 있지 않는가? 부끄럽다. 원컨대 우리 조국이 헌법 테두리 안에서 행정적 조치가 질서 있게 전개되어 국가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가 제대로 작동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희망한다.
비상계엄의 후유증
윤석열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헌법77조 1항)가 아님에도 왜 비상계엄을 선포했을까? 여러 설들이 난무하다. 보수논객의 대표 격인 조갑제씨는 이를 두고 정치적 핵폭탄이라 했다. 하지만 사회 전반에 불러온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고 있다. 우방국들이 걱정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다. 국가의 대외 신인도가 뚝 떨어졌다. 금융지표가 잘 말해주고 있다. “계엄선포 이후 거래 4일 동안 코스피는 5.5%, 코스닥지수는 9.2% 하락했다. 날아간 시가총액만도 144조원에 달했다”(매일경제 2024, 12/9 사설). 이 금액은 2025년 한국 국가 총 예산677조(KDI 자료)의 21.2% 해당된다. 달러 환율은 국정난맥으로 인하여 1,480원까지 올라갔었다. 이번 비상계엄의 충격은 어찌 경제 분야일까 보냐! 이는 국가 모든 영역에 심대한 해독을 끼쳤다. 그로 인해 국력손실이 터진 댐의 봇물처럼 흩뿌려지고 있다.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준 심리적 불안감과 불신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죽하면 농민들까지 트랙터를 몰고 나올까? 이제 민심은 정치 이념적 양극화로 가을 논바닥처럼 갈라지고 있다. 남북 대치도 서러운데 같은 동포, 국민들끼리 이 무슨 아픔이란 말인가?
세 부류의 사람들
첫째는 좌, 우파에 속해 적개심을 분출하는 그룹이다. 여기 특징은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라는 것이다. 상대방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둘째는 국가나 민족 대사에 방관하는 그룹이다. 마치 세상을 달관하듯 무관심하며 오직 자기 이익과 락(樂)을 쫓아 살아간다. 셋째는 실용주의적 노선에 있는 그룹이다. 이 부류는 이념이나 정치적 색깔에 좌우되기보다 중도적 입장에서 사항에 따라 취사선택을 한다. 그렇다면 어느 주장이 맞고 틀린 것인가? 논리 체계는 세상 어느 조직에나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것에 감정이 이입되는 것이다. 그러면 객관적 판단이 흐려지며 독선으로 빠지기 쉽다. 마치 모래에 물과 석회를 섞으면 시멘트로 굳어져버린 것과 같다. 우리는 사이비 종교나 궤휼(詭譎)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본다. 대한민국 5천만 국민은 그 생각, 습관, 문화 등이 다 같을 수 없다. 한 여인에게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도 그렇지 아니한가? 따라서 우리는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별해야 한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상대방을 함부로 정죄하면 파장이 커진다. 성경은 너희가 “판단하지 말라”고 했다. 판단하기 위해서는 절대적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 말씀뿐이다. 자아(自我)를 형성하고 있는 “가치체계, 지식체계, 경험체계”는 기준이 될 수 없다.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의 역할
크리스천은 애국애족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 민족과 국가의 당면과제를 안고 부르짖는 일이다. 100마디 말보다 한 마디 기도가 더 힘이 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는 고비마다 당신의 종들을 쓰셨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다니엘이다. 그는 바벨론 포로의 신세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단 6:10). 우리는 자기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건 다니엘의 기도를 본받아야 한다. 둘, 본분에 충실 하는 일이다. 화난다고 자리를 박차며 뛰쳐나간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러면 국가의 기능이 마비된다. 의로운 분노를 가슴에 품되 임무수행에 있어서 책임을 다 해야 한다. 마치 무소가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우직하게 길을 가듯이 이런 복무 자세가 필요하다. 셋, 제사장적 역할을 하는 일이다. 우리는 배달의 겨레, 한 운명 공동체이다. 손등과 바닥은 뗄 수 없다. 진보와 보수, 미우나 고우나 우리에게는 모두 필요하다. 공산주의자가 아닌 이상 서로 존중하고 대결을 자제해야 한다. 세상에 가장 우매한 일은 피아(彼我)를 구분하지 못하고 아군끼리 싸우다 쫄당 망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상황은 서로 간 첨예한 대립 가우데 너무 격앙(激昂)되어 있다. 조금만 건들면 뭔가 터질 것만 같다. 그리스도 보혈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누가 이 찢긴 상처를 치료하며 화평의 다리를 놓을 수 있을까? 민심이 흉용한 이 때 교회가 제사장적 사명을 감당하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것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맺음 말
태풍이 불어올 때 현자(賢者)는 고개를 숙인다. 나라가 어수선하고 시끄러울 때 너도 나도 시류(時流)에 편승해 돌을 던지기 쉽다. 이럴 때일수록 크리스천들은 파당논리에 휩쓸리거나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말아야 한다. 각자가 소신은 갖되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덕스럽게 행해야 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사상은 피보다 진하다. 허나 신앙은 모든 것을 초월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안을 열어 시대와 민족을 보아야 한다. 낡은 이념의 틀에 갇혀 앞을 못 보는 것은 불행이다. 지금은 민족과 국가의 번영을 위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이 필요하다. 극단적 대결을 피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의멸친(大義滅親:대의를 위해서 사사로움을 버림)의 자세가 요구된다. 세상 어디에나 사건 사고는 있기 마련이다. 지혜로운 자는 문제가 없기를 바라기보다 그것을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로 승화시킨다. 이를 위해 우리 크리스천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그 방안은 성경에 쓰여 있다. “너 죽고 나 살자”라는 방식이 아니라 “너 살고 나 살자”이다. 아니 보다 더 “너 살고 나 죽자”라는 정신으로 나아가면 어떤 매듭도 풀 수 있다.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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