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만난 사람과 바예수 만난 사람(사도행전 13:1~12) - 최광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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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광희 목사 I 행복한교회(한국)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잘난 사람은 잘난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대로 산다
야이야이 야들아 내 말 좀 들어라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1993년에 신신애가 부른 노래, ‘세상의 요지경’의 가사입니다. 이 노래의 가사처럼 세상에는 가짜와 사기꾼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짜가 없는 세상에 살고 싶어 하지만 하나같이 속기도 하고 속이기도 하면서 살아갑니다.
세상에 이런 속임수가 들어온 것은 에덴동산에 살던 하와가 사탄의 미끼를 덥석 물면서부터입니다. 우리가 가짜에 속지 않으려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둘째는 가짜를 분별하는 지혜와 셋째, 가짜를 배척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세상에는 가짜 종교도 많고 이단도 많습니다. 우리가 가짜를 분별하려면 끊임없이 성경을 배워야 하는데 이단들도 성경을 들고 거짓말하기 때문에 성경도 바르게 배워야 합니다.
우리 합신 교단은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 이 세 가지를 3대 이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좀 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을까를 고민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신앙생활을 할까를 항상 고민합니다.
여기서 ‘바른’이라는 말은 ‘성경대로’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랴? 사람을 기쁘게 하랴? 사람을 기쁘게 하면 하나님의 종이 아니니라.”라고 했듯이 우리는 성경대로의 바름을 추구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성경을 통해서 무엇이 바른 것인지 제대로 배워 바른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름은 같지만 다른 인생을 걸어온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참 예수를 만난 사도 바울이고 다른 한 사람은 바예수를 만난 세르기오 바울입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그 사람들의 마지막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기 위해 함께 성경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바나바가 다소에 가서 사울을 데리고 와서 함께 말씀을 가르친 결과 안디옥교회가 크게 부흥한 이야기는 사도행전 11장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3:1을 보면 안디옥교회에는 바나바와 사울 외에도 니게르, 루기오, 마나엔이라는 세 사람의 지도자가 더 있었습니다.
참고로 마나엔이 헤롯의 젖동생이라고 하는 말은 정말로 젖을 같이 먹고 자랐다는 뜻일 수도 있고 매우 친한 동생이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하여간 마나엔은 정치적으로도 고위층인데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분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헌신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올해 합신에 입학한 조영길 전도사는 서울대학교 법대를 나와서 서울지방법원 판사를 역임했고 현재 법무법인 I&S 대표변호사인데 목사가 되려고 신대원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나라에 신대원이 많이 있는데 합신이 바름을 추구하고 성 혁명 세력과 싸우는데 앞장서는 것을 보고 합신을 선택했습니다. 이 분 외에도 영향력 있는 사람이 교회로 많이 들어오면 좋겠습니다.
2절을 보면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주님을 섬기기 위해 금식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유대교인들은 매년 나흘씩 금식하는 날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의 금식은 유대교의 금식일과는 달랐습니다. 2절에서 그들은 예배하기 위해 금식했고 3절에서는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해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금식은 주님을 섬기는 좋은 방법입니다. CCC는 예전부터 원단(元旦) 금식기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검색해봤더니 나사렛형제들은 올해도 원단금식수련회를 했습니다. 저도 젊을 때는 자주 금식했으나 최근에는 못했는데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시 금식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하며 주님을 섬기던 안디옥교회에 하나님께서 뜻밖의 명령을 하셨습니다. 다섯 지도자 가운데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보내라는 것입니다. 다섯 명의 지도자들은 성령의 지시에 바로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금식하며 기도한 후에 안수하여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먼저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를 선교지로 선택하고 배를 탔습니다. 구브로는 검지로 안디옥을 가리키는 모양(☞)으로 생긴 섬인데 중지(中指) 위치에 살라미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살라미는 이탈리아의 살라미 소시지와 상관이 없음) 그리고 손목 위치에 바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살라미에서는 주로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지만 파포(Πάφος)에 와서는 총독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시 총독은 세르기오(Σέργιος) 바울인데 로마 원로원 가문의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총독 세르기오 바울 옆에는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 한 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 마술사의 이름은 바예수인데 ‘예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Bar는 아들이라는 뜻인데 참고로 맹인 바대매오는 디매오의 아들입니다.
바예수는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이면 율법을 지키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데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가 되었으니 악한 사람입니까? 그의 본명은 바예수(예수의 아들)이고 별명은 엘루마인데 엘루마는 곧 마술사라는 뜻입니다(8절). 그런데 사실은 바예수도 본명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하려고 개명한 이름입니다.
세상에는 남의 이름을 이용하여 사기를 치는 사람은 언제나 있습니다. 신신애가 노래했듯이 세상에는 가짜가 판칩니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가짜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가짜는 없앨 것이 아니라 물리치는 것이 옳은 선택입니다.
세상에 가짜가 판치는 것은 가짜에 대한 수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사라집니다. 사람들이 가짜에 속으면서도 사기꾼을 가까이하는 이유는 공짜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심하게 표현하면 사기를 칠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짜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 외에는 없습니다.
총독 세르기오 바울은 이제까지는 거짓 선지자 바예수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랬던 총독에게 하나님의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총독은 총명한 사람이어서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들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원했습니다. 사실 그런 마음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이제 마술사 바예수는 가장 큰 고객을 잃게 생겼습니다. 그러니 바예수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요. 바예수는 총독이 바나바와 사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8절에서 “믿지 못하게”라는 말은 “왜곡되게 믿도록”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왜곡되게 믿으면 안 믿는 것보다 위험합니다. 한 번 이단에 빠진 사람은 돌아오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되게 믿도록 한 최초의 사건은 선악과 사건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한 뱀은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말했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으면 죽는 것이 아니라 눈이 밝아진다. 그리고 하나님과 같아진다.”
그 말을 들은 하와에게 사기꾼의 마음이 생겼습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것이 정상인데 하나님이 되겠다는 사기꾼의 욕망은 사탄의 미끼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미끼를 덥석 물었고 사탄의 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후 인류는 사기꾼에게 너무나 쉽게 속고 있습니다.
총독 세르기오 바울은 여태껏 엘루마 바예수에게 속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세르기오 바울 앞에는 바예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참된 예수를 만난 사도 바울이 와 있습니다. 이 바울은 그 옛날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를 만나서 변화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히브리식 이름을 사용하던 사울은 여기서 처음으로 바울이라는 헬라식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세르기오 바울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자기와 공통점이 많으면 가깝게 느끼거든요.
제가 요즘 성 혁명 세력과 싸우면서 몰랐던 사람을 많이 만납니다. 목사는 물론이고 의사, 교수, 변호사, 정치인 등을 많이 만납니다. 그런데 처음 만난 분이 성이 같거나 사는 지역이 가깝거나 같은 고향 출신 혹은 졸업한 학교가 같거나 어떤 공통점이 있으면 더 가깝게 느낍니다.
바울은 히브리식 이름 대신에 헬라식 이름을 사용하면서 세르기오 바울에게 친근히 다가갔습니다.
“총독 각하, 저의 이름도 총독님과 같은 바울입니다. 제 고향은 길리기아 다소에서 어릴 적부터 사용한 이름입니다.”
이렇게 총독과 가까이 다가간 바울은 복음 전도를 훼방하는 마술사 엘루마의 사기 행각을 폭로했습니다. 바울의 지적과 책망이 선포되자 엘루마는 즉시 맹인이 되었습니다(10~11절). 그 모습을 본 총독은 깜짝 놀라면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믿었습니다.
세르기오 바울은 바예수, 예수의 아들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속고 살았습니다. 반면에 사도 바울은 참된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았습니다. 참 예수를 만난 바울 덕분에 세르기오 바울도 참 예수를 만나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가짜와 사기꾼은 언제나 어디에나 늘 있습니다. 한국교회 안에는 예수님을 사칭(詐稱)하는 가짜가 많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수십 명의 재림예수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이단도 있습니다. 그 집단에서는 장길자라는 여자를 어머니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얼마나 웃깁니까?
또 신천지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이단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신천신지는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여 영원히 다스릴 나라인데 이만희 집단 때문에 그 이름도 못 쓰게 생겼습니다.
이 외에도 이단이 얼마나 많은지 다 열거하면 숨가쁩니다. 그런데 이단과 사기꾼이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런 사기꾼을 추종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심지어 “하나님도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고 말하는 미친 목사도 있는데 아직도 추종자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도 초기에는 좋은 사람처럼 보이니까 추종했더라도 명백하게 잘못된 것을 보고도 여전히 사기꾼을 추종하는 사람은 문제가 많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이단을 따라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에는 이단 외에 사기꾼도 많습니다. 사기당한 사람은 말합니다. “그 사람이 그럴 줄 몰랐다.” 분별력이 없었던 것이죠.
우리에게 이것이 좋다, 저것이 좋다고 권하는 많은 말을 우리는 분별해야 합니다. 요즘은 사람을 속이는 유튜버도 많습니다. 인터넷에 범람하는 정보와 영상을 분별해야 합니다. 만일 음란한 영상 하나를 잘못 선택하여 보게 되면 우리의 영혼에 큰 손해가 됩니다.
바예수는 언제나 있는데 사기당하면 나만 손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예수를 만나지 않도록 은혜를 구하고 분별력을 길러야 합니다. 그런 분별력은 어디서 올까요?
9절을 보면 바울이 바예수를 꾸짖을 때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분별력은 바로 성령 충만에서 나옵니다. 좋은 목사를 알아보고 따르는 것도,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도 성령 충만해야 가능합니다. 인터넷이 돌아다니는 정보와 영상이 내 영혼에 유익한지 내 영혼을 망치는 악한 것인지 구별하는 것도 성령 충만해야 가능합니다. 성령 충만하기 위해 초대교회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이제 여러분,
바예수가 아닌 참 예수를 따를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성령 충만해서 누구 말이 성경적인지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유튜브를 구독할 것인지 끊을 것인지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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