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구원의 하나님” (9)한국에서 교회 개척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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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애 목사(강남임마누엘교회 담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영국의 사역을 마치고 한국에 다시 들어왔다. 어쩌면 더 이상은 선교지를 갈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를 선교지로 파송한 분당 쪽에 있는 성결교회에서 다시 청년부 사역을 하게 되었다. 나는 날마다 주님의 뜻을 구하게 되었다. 40년이 넘는 신앙의 전통이 있는 교회. 몇 년 준비하고 시작된 새 성전건축에 많은 복잡한 일들이 생겼다. 그러나 나는 주님만 바라보기만 했다. 무엇이 어찌되든지 죽으면 죽으리라, 매달 사례비를 모두 건축헌금으로 올려드렸다. 그리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도 가운데, 말씀 묵상가운데 기다리고 기다렸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주님은 내게 새로운 사역지를 허락하신다는 세미한 음성이 나에게 확신을 주셨다.
영국에서 언젠가 홈리스 형제자매들에게 로고스교회 쟌 목사님과 찬양으로 섬길 때 한국에 돌아가면 60년대 그룹사운드 키보이스로 또 친구야로 유명한 윤복희 권사님 오빠 윤항기 목사님을 꼭 한번 찾아뵙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생각났다. 중학교 시절 낭만과 행복한 가수 이미지가 늘 동경하게 된 분이 윤항기 가수인데 목사님이 되셔서 이제는 찬양을 하시다니 영국에서 방송으로 그분의 간증을 들으면서 꼭 반드시 만나보고 싶은 분이셨다. 6.25 전쟁 속에서 어려움 이겨내고 신앙인으로 목회자로 서기까지 세계무대를 빛나게 하신 주님의 역사도 듣고 싶었다. 또한 유럽언론사에 이 분을 취재해서 알리고도 싶었다.
나는 명동에 있는 윤 목사님이 사역하는 예음교회를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대뜸 이 교회에서 사역지가 있으면 사역을 시작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흔쾌하게 승낙하셔서 2년 반을 그곳에서 연예인 사역을 하게 되었다. 윤 목사님과 사모님은 늘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렇게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섬기며 나아갈 때에 주님은 내게 교회 개척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렇게 시작한 교회가 강남임마누엘교회이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 나는 청담동에 잠시 기거하면서 이곳에 영혼들이 얼마나 아파하고 신음하는지를 보았다. 그곳에 나를 주님이 인도하셨다. 시작은 처음부터 한분 장로님과 권사님이 함께 하셨다. 작은 코엑스 삼성동 사무실에서 시작한 교회는 오랜 시간 선교와 부교역자 생활에 익숙한 나로서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러나 어찌하든지 주의 십자가 구원의 복음만이 중거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나아갔다.
강남임마누엘 교회는 처음부터 하나님 나라와 대한민국 사랑으로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해외에서 조국의 존재와 힘은 사역에 큰 힘이 되었다. 선교사를 인구대비 가장 많이 파송하는 나라, 세계강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은 해외에 거주하는 교민들이나 선교사들에는 자부심이 컸다. 선교지에서 새벽마다 기도시작이 나의 조국 한국 땅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한국의 복음과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한반도에 끝나지 않은 종전이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몰라 나보다 더 우리나라를 걱정하는 모습도 보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런던에서 하버 항구 쪽으로 전도하러 가는 날 라디오에서 연평도 사건을 보도할 때 한반도에서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차라리 전쟁이라도 나기를 바라기라도 하듯 흥미로워하는 외국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입을 다물고 그들의 얼굴을 응시하며 침묵으로... 속으로 기도하며 울었다. 성경에 이스라엘 복음화와 민족애에 대한 고백을 수많은 애족애국 더 나아가 애민을 한 성경인물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전 세계가 관심을 가져도 풀지 못한 지구상의 숙제 중에 하나가 한반도 통일문제다.
나는 외국친구들이 어리숙한 말로 통일문제의 질문에, 대답은 우리 대한민국만 준비되면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원코리아가 될 것이라고 확신 있게 대답했다. 안타까운 것은 한반도의 통일문제는 독일과 다른 이념과 사상문제이기에 더욱 말씀과 기도가 절실하다. 그래서 우리는 몇 명이 되지 않지만 교회의 출발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반도 통일을 위해 그리고 열방을 선교하는 교회로 출발했다. 사람들이 뭐라 하든 주님이 주신 비전을 따라 주님이 원하는 그곳에 우리의 기도와 간구가 있기를 바랬다. 지금도 그 뜻을 같이하는 김 장로님이 모든 사역을 도와주고 계신다.
얼마나 어려운 길인가. 교회성도 숫자가 중요하지 않은가.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감사하다. 주님의 눈이 있는 한반도의 분단의 아픔에 더 집중할 수 있는 믿음과 기회를 주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기도소리에 어떤 분은 비아냥거리기도 하고 조롱도 했고, 지금도 가끔 이런 사람들을 대한다. 교회월세도 못내는 주제에 성도도 없는 주제에 복음통일, 민족통일이라니, “너 잘났다” 이런 식으로 비웃는다. 열방을 선교하는 교회라니...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다. 이런 말 이런 표정들, 그러나 여전히 아직도 예배 때마다 기도 때마다 이 기도는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사무실에서 다시 분당 쪽 정성덕 박사님 연구실로 예배처를 옮겼다. 박사님 내외분은 우리의 형편을 아시고 기꺼이 상담실을 내주셨다. 얼마니 감사한가. 거기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사랑 나라사랑 복음통일 열방선교를 위해 기도했다. 3평 남짓 거실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앞으로 계산은 없었다. 어린아이가 아버지만 바라보듯이 그렇게 믿음의 행진을 했다. 적은 헌금은 모두 선교지에, 통장은 매달 제로였다. 1년 넘게 이렇게 예배를 드리자 성도분 중에 성전으로 이사가자고 하고 박사님 내외분에게 민폐도 되는 것 같아 다시 강남으로 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인도받은 곳이 무역센터 코엑스 앞에 거의 100평이 넘는 사무실 일부를 성전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거기서 매주 예배도 드리고 부흥회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거기도 계속 있지 못했다. 지금 교회가 30년이 넘는 지하교회 자리에 있어 돌이켜보니 모두 이런 저런 과정과 시련을 통해 주님이 일하고 계심을, 임마누엘하심을 알게 되었다.
우리교회가 말도 안 되는 돈을 가지고, 그것도 강남 한복판에서 교회를 알아본다는 것은 사실 엄두도 안 나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주님이 허락한 믿음으로 행진을 할 때 가능함을 알게 하시는 선한도구였다. 때로는 생각했다 세상적으로 나도 잘나가는 사람이었어. 학원원장에, 지금은 소천하셨지만 앙드레김 선생님과 함께 대등한 위치에서 일도 했고, 연예인들과 방송국에서 활동도 하고, 국제학교 총책임자로, 신학교 교수로... 지금 세상적으로 나는 백도 돈도 없는 선교지에서 재산과 건강, 자녀들마저도 다 쏟아버린 거룩한 거지 개척교회 목사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하나님사랑, 나라사랑, 복음통일, 교회존재의 핵심, 영혼구원에 힘들고 고달플 때마다 새롭게 복음의 옷을 고쳐 입었다. 그리고 드디어 주님이 예비한 성전으로 인도함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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