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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2)

“내가 만난 구원의 하나님” (7) 2차 영국으로의 부르심 그리고 나의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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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카이로스타임즈
댓글 0건 작성일 23-09-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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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영애 목사(강남임마누엘교회 담임)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상에 감사하라 이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영국에서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나는 히드로 공항에서 출발하기 전 주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다. 이 땅에 예배가 회복되고 교회가 회복되기를 기도하며 아픈 마음에 가슴이 먹먹했다. 그러나 최소한 영국에 부르신 주님께 보답을 한 것 같아 한편으로는 속이 후련했다.

 

인천공항에 내려서 그동안 한국 음식, 정서에 허기진 나는 아무 식당이나 뛰어 들어가 김치찌개를 시켰다. 한때는 여름이면 매미우는 소리, 가을이면 들녘에 노오란 벼들과 코스모스가 얼마나 그리운지 한국에 있는 딸에게 매미우는 소리를 녹음해서 들려달라고 부탁도 하고 싶었던 기억이 났다. 선교지에서 김치가 너무 그리워 몰래 길가에 있는 민들레를 뜯어다가 인도마늘은 어찌나 매운지 거기에 고춧가루대신 간장을 부어 만든 나름의 김치를 헐레벌떡 먹고 주일날 일찍 성도들을 반갑게 웃으면서 맞이하는데 성도들이 슬금슬금 나를 피하는 모습을 보고 마늘 냄새가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이젠 추억이 되어 나는 한국에서 청년부사역을 위해 기도했다.

 

나를 파송한 성결교단 교회에 다시 돌아와 청년부 사역을 맡았다. 담임목사님께서는 오랜 세월 선교에 관심이 많은 분이시라 16개 나라를 선교하고 계셨다. 나는 여전히 교회에서 영국선교사로 통했다. 교회가 40년이 넘는 교회라 재건축을 하였다. 나는 사례비를 모두 건축헌금에 드리고, 청년부 아이들이 먹는 것, 치킨 피자에 투자하느라 주머니에는 단돈 만원도 없었다.

 

두 딸은 제대로 돌보지도 못했다. 매주 주일날 성도들이 먹다 남은 교역자들에게 주는 쌀밥 한 덩이로 아이들과 1주일을 버틴 적도 있다. 훗날 그 당시 교인들에게 내가 이렇게 이런 시기가 있었다고 말하면 그때 왜 말 안 했냐고, 우리는 몰랐다고 하면 나는 그냥 웃는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반드시 주님께서 주님의 나라를 위한 헌신에는 상급이 있음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국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동안에 연립지하 단칸방에 주님이 우리가족을 인도했다. 집주인은 목사님 아들인데 아버지목사님 몇십년 평생소원이 아들이 목회자가 되는 것을 기도하셨다. 나는 기도가운데 우리교회로 인도했고 지금은 우리교단에 어엿한 신실한 목회자가 되셨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님의 때에 누구를 통해서든 응답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새벽마다 드리는 예배 후에 2시간씩 날마다 기도를 드렸다. 그 옛날 80년대 밤새 8시간씩 기도드리고 산 기도에 비하면 호화스럽게 드리는 기도였다. 지금은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드리는 교회가 서서히 없어지는 것 같아 아쉽다. 예배 후 한 시간이 지나면 성전에 담임목사님과 사모님, 항상 셋이 남아 또 기도부흥회를 시작했다. 그렇게 통성기도와 방언기도를 한참하고 있는데 주님께서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그 이튿날 그 자리에 또 같은 응답이 내렸다. 그것은 마치 상관이 부하에게 명령하는 식이었다. 나는 새벽기도시간이 부담스러웠다.

 

나는 얼른 내주머니를 만져보았다. 그리고 두 딸을 생각했다. ‘주님 제 형편아시지요?’ 나의 응수였다. 3일째 되던 날도 똑같은 응답을 받았다. 나는 할 수 없이 중국에서 두 손 두발 들고 하나님께 항복하듯이 했던 고백대로 그렇게 하겠다고 주님께 항복했다. 그리고 고민하기 시작했고 어떻게 선교자금을 만들어야 하는지 막막했다. 그렇게 며칠 지나고 새벽시간에 기도가운데 내 영안이 열리기 시작했다. 영화의 한 장면이 펼쳐졌다. 런던에서 나의 사역을 지극정성으로 도운 북한자매 지연(가명)자매가 나타났다. 그 자매는 내가 한국에 돌아오기 전 날 선교사님 한국에 가시면 꼭 라쉬(인조눈썹)도 사서 부치시라요, 내가 돈은 보내 드릴 테이요네일 가게에서 라쉬 붙이는 일을 하는 자매에게 알았다고 대답했는데 그 자매기 내 눈에 영화필름처럼 나타나는 게 아닌가?

 

장면은 한 여름 깊은 밤인데 하늘엔 달이 떠있고 압록강 좁은 물이 세차게 흘러가는데 가만히 보니까 시커먼 흙탕물이었다. 그러나 강폭은 좁았다. 세차게 흘러가는 시커먼 물에 지연자매가 중간쯤 거센 물결에 떠내려가는 때에 이 자매가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하나님! 살려주세요그때 어디서 오셨는지 주님께서 흰옷을 입은 채로 지연자매를 안고 중국에 던졌다. 나는 이 장면을 지금도 필름처럼 선명하다. 그런데 소설처럼 아침 식사 후에 런던에서 지연자매가 연락이 왔다. “선교사님, 한국가시면 라쉬 사서 보내신다고 했는데 왜 안보내시는 기요?” 약간 불만의 목소리였다. 나는 속으로 한국 사람이면 다 돈이 많은 줄 아나보네...’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새벽에 주님이 보여주신 영화필름을 말했다. 본 그대로 한동안 말을 이어갔다.

 

한참을 조용히 듣고 있던 그 자매가 갑자기 전화기에 대고 울기 시작했다. “선교사님, 사실 그렇게 친해도 제 개인의 비밀이라 아무에게도 말 안했는데, 북한에서 내가 탈출한 장면이야요. 한여름 장마철에 압록강 좁은 강을 건너는데 시커먼 흙탕물이 콸콸 흐르는 물 가운데 떠내려갔을 때 어렴풋이 들은 하나님한테 살려달라고 했시오. 그리고 밤새 공동묘지에서 얼마나 무섭고 춥워서 울었는지 모르기요...” 그 자매는 계속 울기만 했다.

 

그 자매는 런던에서 같이 먹고 자고 해도 이런 예기는 하지 않았다. 한참을 울고 난 뒤에 선교사님 영국에 안 들어오시기요?” “주님께서 가라고 하시는데, 돈이 하나도 없어서 기도만 하고 있어요.”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자기네 집에서 숙식제공을 다 할 테니 빨리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응답이 이렇게 빨리 떨어질 줄 몰랐다. 그 다음은 비행기와 체류비였다. 지연자매는 내게 라쉬를 먼저 사서 보내란다. 내형편도 모르면서... 차비도 없는 내게... 그러나 믿음으로 수소문 끝에 라쉬 회사를 찾았다. 나는 생전 처음 알았다 인조눈썹이 한국 사람이 개발한 아이템이라는 걸.

 

주님께서 라쉬 회장님을 만나게 해주셨다. 성령이 충만한 선교하는 회사였다. 처음 만났을 때 회장님, 사모님과 예수님 얘기하면서 성령님의 임재로 서로 은혜를 나누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 구속의 은혜,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영원한 본향을 그리워하며 같이 한참을 울었다. 나는 있는 모습 그대로 부족한 모습 그대로 그간의 얘기를 말씀드렸다. 회장님은 선교에 쓰라고 하시면서 한 박스를 주셨다. 돈으로 환산하면 제법 큰돈인데 믿음으로 후원해주셨다. 이게 세상에서 가능한 일인가. 그것도 몇 시간 만에 삭막한 세상에서 오직 예수 안에서 .... 그리고 우리교회 오셔서 일일부흥회 하시면서, 노영애 선교사님 일어나라고 하시더니 비행기 값 체류비를 해결해주셨다.

 

나는 영국에 다시 들어갔다. 지연자매가 방긋 방긋 웃으면서 어울리지도 않는 선글라스를 끼고 자전거를 몰고 마중을 나왔다. 함께 한집에 살면서 열심히 노숙자 사역에 동참했다. 결혼은 했지만 아이가 없어 늘 고민이었다. 하루는 아이문제를 놓고 기도하는데 새파란 오이를 보여주셨다. “주님께서 새파란 오이를 보여주셨는데, 아들을 주실 것 같아.” 얼마 지나지 않아 좋은 소식이 들렸다. 아기가 생기고 아들을 낳았다.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는 삶의 믿음의 현장에서 일어난다. 머리털까지 세포까지 세시는 하나님은 신비롭고 신실하신 좋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우리는 다시 선교현장을 향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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