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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구원의 하나님”-(3) 불신가정에서 이어지는 신앙생활의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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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카이로스타임즈
댓글 0건 작성일 23-07-22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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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영애 목사(강남임마누엘교회 담임)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시편 62:1)

 

나는 청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했다. 원하던 법학대학을 가지는 못했지만 기도로 마음을 달래면서 미래를 향해 꿈을 꿨다. 나는 우리 집안에서 그래도 나름 잘사는 서울에 셋째이모네 집으로 짐을 옮겼다. 항상 밝고 친절하게 대해주셨던 이모. 마음속으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이모는 내 눈에 비친 모습은 일반 여자들하고 달랐다. 사업가 아닌 사업가로서 호탕한 성격과 매사에 밝고 긍정적인 모습에 이모네 집을 선택한 이유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이모네 집에는 항상 사람들이 들끓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모는 한국의 민족종교 단군할아버지를 모시는 리더였다. 나는 생각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나에게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아무런 불편함 없이 나는 내 나름 대학도 준비도 하고 스스로 해결해야 했기에 아르바이트도 했다. 그림에 소질이 있어서 그림에 관련된 알바를 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꿈꾸던 대학에 들어가서 성공한 법조인이 되는 게 내 꿈이었다. 나는 날마다 주님께 기도하면서 믿음 안에서 살 수 있도록 나를 붙들어 달라고 기도를 했다.

 

나는 일반 책보다 성경책을 늘 끼고 살았다. 항상 심령에 중심은 예수그리스도였다. 이런 나를 이모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나를 귀여워 해주셨고 성실한 조카로 이쁘게 봐 주셨다. 아무조건 없이 부담 없이 살 수 있도록 배려해준 고마운 마음에 청소와 빨래를 도왔다. 이모부는 사업으로 이모도 종교관련 일로 늘 바빴고 동생들도 잘 따랐다.

 

이모는 지금 생각해보면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항상 옆에서 보면 이모는 뭔가 큰 꿈을 가지고 계셨다. 어느 날 전화 통화를 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단군할아버지를 민족종교로 세우고 남산에 단군신을 모시고 전국 각 학교에 단군신상을 건립해야 한다는 대충 그런 대화 내용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안 순간부터 마음이 불편해졌고 우상숭배를 하는 가정에 내가 들어왔다는 생각에 주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모가 그렇게 바빴고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평안하게 지냈다. 이모하고도 별 다르지 않게 사이좋게 지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학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자 낮에 아무도 없던 집에 이모가 거실 한가운데 심각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나는 이유를 몰라 당황했다. 그러자 이모가 입을 열었다. 평소에 다정하고 밝은 이모의 얼굴이 아니라 냉정하고 쌀쌀한 모습이었다. “너 이리와 앉아 봐라. 그리고 무릎을 꿇어라영문을 모르는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어른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다짜고짜 물었다. “너 예수를 진심으로 믿니?”

 

이모는 어서 대답하라고 다그치는 모습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예수님을 인정했다. “네 믿어요.” 나의 생명 되신 예수그리스도 어떤 상황가운데에서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그리스를 부인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도 어린 조카의 형편을 아는 이모는 다시 냉정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당장 이집에서 나가라, 네가 우리 집에 들어온 후로 일이 잘 안 풀렸다. 그런데 일본에서 온 큰 분(무당)이 우리 집에 예수쟁이가 있어서 일이 진행이 안된다고 하더라.”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다 , 나갈 게요이렇게 대답하는 나를 이모도 순간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그 집에 들어 간지 몇 달 후부터 은행에서 차압이 들어온다는 얘기를 어렴풋이 들었다.

 

이모는 갑자기 자기무릎을 탁 치더니 무릎 꿇고 있는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갈 데도 없는 네가 어디를 가겠니? 나는 네가 예수 믿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네가 진짜 예수쟁이인지 몰랐다. 나도 종교인지만 이모가 어린 너에게 배웠다. 나도 너처럼 믿어야 되는데...“

 

우리는 그렇게 잠시 침묵 속에서 한편으로는 영적 싸움을 하고 있었다. 단군교도 영적 일이라 마귀도 자기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웠던 모양이디. 어린 내 눈에 종교가 사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모는 아무튼 자신의 결핍을 바로 인정하는 멋진 여자였다. 내가 이모를 존경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내게 이모는 성경책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성경책을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하셨다. 나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탓인지 순간 지혜를 떠올렸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쓰레기통에... 쓰레기통에 버리는 척 하면서 신발장 구석에 성경책을 안보이게 숨겨 놓았다. 그렇게 하고 돌아온 나를 바라보는 이모의 눈빛은 사뭇 전에 눈빛이 아닌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나를 핍박하기 시작했다. 나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교회도 못나가게 하고 일만 시켰다. 주일이면 화장실에서 빨래를 하면서 작은 화장실 창문으로 들여오는 교회 종소리를 들으면 나는 창밖 종소리를 향해 울었다.

 

이런 일이 이어지면서 나는 어느 날 꿈을 꾸게 되었다. 이모네 안방에 큰 부처상 앞에 제사상에 과일과 떡... 향불과 머리가 큰 중부터 아기 중까지 앉아서 불공을 하고 있고 나는 거실구석에 쭈그리고 있는데 어떤 목사님이 나를 데리러 오는 꿈이었다. 이 꿈을 꾸고 난후 이집을 떠나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날도 무서운 이모가 집에서 일단 일만하라는 명령에 낮에 집에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교회에서 전도를 나온 것이다. 교회 목사님 사모님이셨다. 갇혀 있는 듯한 나는 반갑기도 했고 대충 내 상황을 말씀을 드리고 신발장에 숨겨둔 성경책부터 교회에 갖다놓으면 곧 나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사모님은 그렇게 하시겠다고 전화번호를 남기고 떠나셨다. 나는 그날 밤 모두가 잠든 사이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슬리퍼만 신은 채 그 집을 벗어났다, 밤이 늦은 시간에 공중전화박스에 떨리는 손으로 사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사모님, 저 성경책 맡긴 13동 노영애인데요, 제가 집을 나왔어요.” “그래, 그럼 교회로 오렴.”

 

나는 그렇게 개척교회에서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상가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교회는 몇 명 안 되는 교회지만 청년부도 있고 가족적인 분위기의 정감이 어찌 보면 20초반 세상 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저 천국을 향한 순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나는 이런 힘든 와중에도 목사님에게 매달 월간목회 책을 꼭 어김없이 사다 드렸고 밤이면 밤마다 문틈마다 차가운 바람이 살을 에는 바람이 들어오는 추운겨울에도 변함없이 기도로 밤을 새웠다. 이런 나를 목사님은 인간적으로 측은하게 여기시기도 하시면서 수양딸로 삼으시고 좋아하셨다.

 

1980년대 그때는 산 계곡마다 구국기도로 뜨거웠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 마음이 안타깝다. 나는 기도친구가 생겼다. 과일장사를 하시는 권사님이 산기도 가자고 하시면 두말없이 따라나섰다 그 추운겨울에도 비닐을 가지고 평창 감람산 기도원 계곡에 가서 허리까지 차오른 눈 속에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나라와 민족 복음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옆에 작은 소나무가 있으면 붙들고 흔들어가면서 기도했다. 한참 기도를 하고 나면 눈이 녹아 그나마 보이던 권사님 머리가 보이지 않아 서로 힐끗힐끗 확인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 그 기도의 능력이 신학공부 못지않게 오늘 목회를 가능케 하는 영적 에너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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