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구원의 하나님” (12)코로나 시기에 닥쳐온 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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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애 목사(강남임마누엘교회 담임)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그동안 사무실로 성도들과 함께 옮겨 다니면서 몇 년을 예배를 인도하다가 정식으로 설립예배를 2019년 10월에 드리게 되었다. 어머니가 소천하시기 전 3일전에 계약을 하였다. 30년 넘은 교회자리는 아주 아담하고 기도가 쌓인 자리라 마음이 평안했다. 교단 총회장이신 박조준 목사님을 모시고 주님께 정식 강남임마누엘교회 설립예배를 드렸다. 죄인 되었던 한사람을 주의 종으로 세우기까지 주님도 나도 울고 웃으면 긴 세월을 함께 하면서 나를 가르쳐주시고 훈련시키신 주님께 마음으로 감사를 드렸다. 사랑과 인내로 기다려주시고 영적 리더로 세워주신 주님의 은혜가 가장 큰 감동으로 와 닿았다.
그리고 또한 선물도 주셨다. 여러 번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갈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여러 가지 상황들이 여의치 않아 가지를 못 갔는데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에서 갈수 있도록 기회를 주셔서 설립예배 후 바로 성지순례를 가게 되었다. 이스라엘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했을 때 유럽 여러 나라를 다닐 때보다 더한 기쁨을 옆 공동체에게 들킬세라 억지로 참느라 애를 썼다. 예수님의 사역하던 곳곳을 둘러보면서 그 옛날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이 백성들을 훈련하기에 딱 좋은 곳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모든 게 너무 가깝게 있었다. 시내와 너무나 가까운 곳에 사막이 있었고 사해 같은 물과 바다가 있었다. 우리나라 강원도보다 조금 큰 이스라엘 땅,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여행은 거리마저도 안성맞춤인 듯 했다.
그중에 갈릴리 호숫가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아무도 없는 호숫가를 거닐면서 요한복음 마지막 21장 15-17절 예수님과 시몬 베드로의 대화의 장면을 묵상하게 되었다. 예수님을 만나기전에 어부 베드로는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구원과 영생의 길을 전혀 몰랐던 뱃사람이었다. 이런 베드로가 수제자가 되는 과정에서 주님과 세 번의 질문과 대답 대화는 모든 목회자들에게 묵상해야 될 말씀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세 번째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 숙연하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세 번째 질문에 베드로의 고백과 주님의 요청은 남편이 살아있을 때 사역을 기도하면서 같이 묵상했던 성경말씀이다.
사막에 바람에 밀려 떠다니는 가시덤불은 손가락 세 마디 크기의 날카로운 가시였다. 말로만 들었던 가시는 생각보다 너무 길고 날카로웠다. 안내하시는 선교사님은 잎사귀가 사막에서 살아 남기위해 수분을 유지하기 위해 돌돌 말려서 끝내는 이렇게 가시로 자기 몸을 똘똘 말린 것이란다. 죄 없는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해 우리의 죄를 위해 인류의 죄를 위해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쓰신 것이다. 갈보리 언덕위로 올라가는 길에는 늦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비아돌로 로사 그 길에 사람들은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처럼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붐볐다. 육신의 삶에 갈급함이 가득한 그곳에 영혼의 목마름 갈급함은 알고 있는지 질문하며 주님의 죽으심을 묵상하며 그 길을 묵묵히 걸었다. 구약의 예수님탄생 베들레헴의 모습, 신약의 공생애사역의 현장들을 뒤로하고 성지순례를 감사함으로 삼성동 도심공항에 도착하였다. 5분 거리에 있는 교회로 다시 돌아왔다. 몸과 마음을 바쳐 목회에 최선을 다하리라 결심과 함께 몇 주를 예배를 드리고 나자 찾아온 코로나 사태는 급물살처럼 세균이 번지기 시작했다.
길게 써도 3개월만 쓸 것 같았던 마스크를 3년 이상 쓰게 되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아팠던 사연들을 어찌 다 말로 일일이 쓸 수 있을까? 예배드린다고 정부에서는 매주 감시가 나오고 성경책도 못 만지게 하고.... 이로 인해 공포 그 자체였다. 그래도 할 수만 있으면 최선을 다해 예배를 드리는데 집중했다. 전도는 아예 금지 상태였다. 나는 코로나 검사를 두 번이나 했어도 감사하게도 코로나에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영적 면역력 근력에 집중했다. 성도들도 모두 긴장하는 것은 당연했다. 정부에서 교회를 질타하고 핍박할 때 우리는 기도에 집중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 시간을 보냈는지 생각만 해도 전쟁이 따로 없었다. 주변에 교회 두 군데가 문을 닫았다. 우리처럼 세를 내는 교회가 아니라 자체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힘들다고 교회 문을 닫았다. 여기저기서 선후배 동료목사님들을 통해 교회를 부동산에 내놓았느니 교회를 팔았다는 소식 등은 너무나 힘들게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교회도 말로 할 수 없는 힘듬이 있었다. 문을 열고 있는 자체가 은혜였고 기적이었다. 나는 교회를 지키려 집을 떠나 가능한 교회를 지키며 교회 유아실에서 잠을 자며 1년을 지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시기에 어느 날 교회 입구에 노숙자 한분이 서계셨다. 나는 그때 밥과 김치가 전부였다. 선교지에서 오랜 시간 보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영양실조 까지 걸렸으니까, 그런데 이런 교회에 노숙자 이분이 오시다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커먼 천을 두르고 얼굴은 핍절한 모습이었다. 나를 대뜸 보자마자 어려워서 왔다고 하였다. 나는 듣자마자 “코로나 때문에 다 힘든데 이렇게 찾아오면 어떻게 하냐”고 “저도 힘듭니다.” 원망 반 짜증을 나도 모르게 나왔다. 말하면서 내 자신도 놀랐다. 그러자 그분은 시커먼 천을 다시 두르더니 슬픈 기색으로 가버렸다. 나는 성전에 들어와 한동안 멍하니 십자가만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주님이 보낸 천사를 대접하지 못한 것 같은 마음에 회개기도를 드렸다. 이 부족한 종을 용서하여 달라고 한없이 내 자신을 십자가에 내려놓았다. 코로나시기에 겪었던 고통 중에 가장 아픈 기억이다. 주님 이 부족한 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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