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구원의 하나님” (10 )푯대를 향하여 부르심의 상을 받기 위하여 전심전력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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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애 목사(강남임마누엘교회 담임)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노라”(빌3:14).
언제나 그렇듯이 주님 앞에 서면 늘 부끄럽고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든다. 열심히 한다고 했고 또한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를 시원하게 섬기지 못하는 부족함 연약함 때문에 늘 죄송스런 마음이다. 때로는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때도 있고 소리 내어 흐느껴 울기도 한다. 십자가의 사랑, 죄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나를 내 죄를 담당하시고 영원한 천국을 예비하신 주님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눈시울이 뜨겁다. 죄악된 세상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천국백성이 되다니... 이런 놀라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기적 중에 기적이다. 어렵고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나의 힘의 원천은 여기에서 나온다. 성격이 좋아서도 아니고 환경이 좋아서도 아니고 뭐를 알아서도 아니고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영원한 사랑이 나를 지지치 않게 하는 산 소망이다.
교회개척은 선교사 출신인 내겐 버겁고 힘든 일이었다. 대개 선교사님들이 본국에서 교회를 개척하는 건 거의 본적이 없다. 은퇴 후에도 단체 활동을 많이들 하신다. 해외에서 10년 넘게 활동하다 오면 일단 협력할 사람이 없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도 하는데 나도 겨우 1년 넘어서야 환경에 적응하며 사역을 하는 게 자연스러워져 갔다. 무엇보다 기도 동역자가 내겐 거의 없었다. 나는 동료목회자나 선후배 목회자들이 부모가 형제자매가 누가 중보기도해서 이렇게 축복받았다고 하는 말이 제일 부러웠다. 나는 우리 집안 식구 중에 처음 예수 믿는 사람이었다. 부모님 전도하고 할머니 전도해서 모두들 교회를 나가셨지만 나를 위해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친정어머니가 척추협착증으로 오랜 시간 아프셨다가 이제 걷지도 못하게 되어 병원과 후에 요양원에 모셨다. 이런 어머니를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모셔야 된다는 생각에 나름 최선을 다했다. 개척교회하면서 바쁜 와중에도 매일 찾아가 기도해드리고 천국에 들어가실 수 있도록 말씀도 가르쳐 드렸지만 그러나 친정어머니는 차츰 병세가 악화되어 갔다. 한국근대사를 지나며 10남매를 낳고 얼마나 마음고생이며 여러 가지로 힘든 인생이었나를 생각하니 늘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나는 4년 넘게 거의 매일 매주 찾아뵙고 예배 인도를 하게 되었다. 한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와 인내가 필요한지... 한 영혼 한 영혼이 천국가는 것 이것이 목회목적이 아닌가. 그래서 하루도 빠짐없이 한주도 빠짐없이 거의 심방을 가고 이웃 어르신들도 함께 어머니와 같이 부족하지만 섬겼다. 이기적이고 쌀쌀한 내가 이렇게 목회자가 되어 섬기는 나를 보고 놀라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면 큰아들 왔다고 좋아하셨다. 전에 교회 다닐 때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있어서 시쿤둥한 어머니가 점점 기도와 말씀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 많은 증거를 보여주셨다. 어머니는 피부병이 생기셨는데 몇 달 며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긁으셨다. 다리에는 뼈가 보이도록 손톱으로 긁으셔서 아침이면 침대커버가 피로 범벅이 될 정도였다. 심지어 간호하는 분들도 가까이 하기를 꺼려하는 눈치였다. 원장 되시는 권사님도 지극정성으로 병원에서 약도 타오시고 병원도 모시고 갔지만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나는 어머니 몸에 손을 대고 계속 갈 때마다 기도하였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들이나 주변 어르신은 인상을 찌푸렸다. “예수보혈의 피로 이 악한 피부병은 떠나갈지어다. 깨끗하게 될지어다. 모든 세포는 정상적으로 회복될지어다.”
얼마 지났을까. 우리 동생 권사가 7시 이른 아침에 전화가 왔다. 어젯밤 꿈에 엄마 몸에 팔뚝만한 벌레가 막 기어 들어가는데 갑자기 언니 목사님이 나타나서 가위로 싹뚝싹뚝 자르더라는 꿈 얘기를 하였다. 그 순간 나는 엄마가 고침을 받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어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 요양원에 가보니 언제 그렸냐는 듯 깨끗하게 되어 어머니께서 밝게 맞이해 주시는 게 아닌가 할렐루야! 요양원 기족들 모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구동성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했다.
매주 드리는 예배에 어르신들과 보호자들, 요양선생님들이 함께 했다. 서해안에 지는 노을이 요양원 거실을 환하게 비출 때면 “여러분!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 저 밝고 환한 햇빛보다 더 밝은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 믿고 다함께 천국에 들어가자”로 설교내용이 갑자기 바뀌기도 하였다. 하루는 원장님이 아침에 급하게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어머니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입맛도 없으시고 기운도 없으시다고 했다. 병원에 모셔다가 진찰을 받아보니 피가 하루에 3팩 정도가 빠져 나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기도 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도를 드렸다. “주님, 어머니가 이병을 통해 다시 한번 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얼마 있다가 다시 급하게 연락이 왔다.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셔야 돼서 지금 중환자실에 계시다는 것이었다. 나는 병원을 찾아 보호자로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중환자실에는 나이 드신 어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기부터 젊은 청년, 중년, 모두 섞여 있어서 겨우 숨만 쉬며 어두움만이 충만한 절망의 장소였다. 어머나는 나를 보자마자 자식도 딸도 아닌 이 부족한 목사를 쳐다보셨다. 어머니는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시더니 “목사님, 목사님이 기도해주시면 내가 나을 거 같아요. 목사님 기도해주세요.” 나는 순간 예수님께서 38년 동안 걸어 본적이 없는 앉은뱅이와의 장면이 떠올랐다.
절망가운데 있는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하느냐? 하시던 주님의 물음에 낫고자 간절히 청하는 어머니의 눈빛은 앉은뱅이처럼 그저 주님만을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때 어머니 머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드렸다. “예수님, 어머니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보혈의 피로 정결하게 씻어주옵소서, 일어나 걸을지어다.” 기적은 일어났다. 오백원 동전만한 크기의 천공 뚫어진 것이 막혀진 것이다. 의사들도 놀랐다. 어머니는 이런 저런 일로 내심 나를 의지하셨다. 그러나 이 땅을 정리하고 저 천국에 가야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어느 여름날 나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모시고 밝은 태양이 비추는 밖으로 나갔다. 철쭉꽃 해바라기꽃 백일홍 호박꽃 강아지풀 그리고 고추 상추 쑥.... 어머니는 평생을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셔서 자연을 너무 좋아하셨다. 나는 꽃을 꺾고 풀을 뜯어 어머니 품에 안겨드렸다. 그리고 인증샷도 찍었다. 우리는 그렇게 소리 없이 미소를 주고받으며 비록 작고 초라한 한 모퉁이 길에서 모녀간 사랑을 나눴다. 그리고 햇빛이 내리쬐는 평화롭고 환한 한복판에 어머니를 훨체어에 앉혀놓고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 지금 행복하세요.?” 엄마는 “그래”라고 대답하셨다. 그러나 어쩜 매정할지 몰라도 “이제 얼마 후면 지금 이렇게 행복한 것보다 더 밝고도 환한 천국에 들어가실 텐데요. 준비가 되셨나요?”
어머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시더니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목사님, 기도해주세요.” 어머니는 진심으로 간절하시고 진지하셨다. 나는 어머니 머리에 손을 얹고 예수이름으로 기도를 드렸다.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나를 육신의 자식이 아닌 영적 부모인 목회자로 대하고 계셨다. 후일에야 안 사실이지만 어머니는 병중에 요양원에서 하루 종일 이 못난 목회자를 위해 기도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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