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 통하는 교회-(2) 상식 이상의 것을 바라보는 교회 I 이홍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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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길 목사(메릴랜드 크리스찬교회)
“상식이 통하는 교회는 상식 이상의 것을 바라보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 것을 권면했습니다. 그런데 살전4:1에서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라고 말하고 “(배운 말씀대로 행하며 사는 것을) 더욱 많이 힘쓰라”고 덧붙였습니다. “더욱 많이 힘쓰라”는 헬라어 단어는 “차고 넘치도록 풍성한 것”을 의미하는 동사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데, 어느 수준에서 만족하지 말고 더욱 더 차고 넘치도록 분발하며 살라는 의미입니다.
이 내용을 교회의 상식과 연결해서 설명해 보면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상식이 통한다”는 것은 합리적이고 서로 이해가 되는 의사결정이나 행동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결정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상식이 통하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식이 통하는 교회가 말씀에 따라서 어떤 결정을 내리면, 교인들이 이해하고 잘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상식은 최저기준(Bottom Line)입니다. 상식이 통하는 교회라면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말씀에서 떠난 행동들이 많기 때문에 교회가 상식이 없다고 비판을 받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상식이 통하는 교회는 상식을 지키는 것에 머무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상식은 교회의 최저기준(bottom line)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최저 기준이 되는 상식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는 세상의 상식을 훨씬 뛰어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상식이 세상의 상식보다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5:38-42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예수님 당시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는 것”이 세상의 상식이었습니다. 내가 피해를 입은 만큼 상대방에게 동일한 정도의 피해를 주는 것이 보편적인 상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른편 뺨을 치거든 너도 오른편 뺨을 치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왼편도 돌려서 때리면 맞으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속옷을 빼앗으려고 하면 겉옷도 주고 5리(1마일)을 가자고 청하면 10리(2마일)을 같이 동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상식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가르치는 상식은 그 이상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세상 수준의 상식이지만,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삶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상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세상의 상식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본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상식 수준을 뛰어넘어 더 적극적인 삶을 사는 것이 예수님의 권면입니다. 몇 가지 순종하고 상식적으로 판단했다고 만족하는 것이 끝이 아닙니다. 바울 역시 더욱더 힘써 말씀을 지켜서 상식이 통하는 삶을 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상식을 뛰어넘어서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상식에 근접한 삶을 사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 이상의 삶을 살라고 요구하면 모두 나자빠질 수 있습니다. 오른뺨을 치는 상대를 때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사실 대단히 훌륭한 삶이지요. 그런데 왼편까지 돌려대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우리 마음과 수준에서는 상식을 뛰어넘는 삶을 사는 것이 너무 힘이 들고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상식을 뛰어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주관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에 계속 순종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상식이 통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그 이상의 삶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죄성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그래야 상식이 통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내주하는 성령은 한분이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그런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따른다면, 교회가 얼마나 조화롭고 아름답게 세워질까요? 완벽한 교회는 없지만, 그래도 성령이 인도하셔서 아름답게 세워져가는 교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어느 한 사람이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한 마음으로 말씀에 따라 살아갈 때 이런 아름다운 교회를 세울 줄로 믿습니다.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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