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노재화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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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화 박사(전 성결대학장, 사회학/목회학)
사람은 자신의 삶의 목적과 가치관에 따라 무엇을 위하여 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에 종종 직면하게 된다. 물론 이 문제는 인류의 시작부터 많은 철학자들의 물음이기도 하였고, 아직도 이 문제를 풀지 못한 소피스트들은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다. 공자는 아예 ‘사는 것 자체도 모른다고...했다. 영국의 경영사상가인 핸디(Charles B. Handy)는 서간문 저서 <삶은 언제나 같은 질문을 던진다>(인플루앤셜, 2022)에서 언제나 변화하는 삶 속에서 “기술혁명이 들불처럼 일어나도 삶이 던지는 근원적인 질문은 달라지지 않았다”며,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인생의 미래의 막막함과 새로운 물결에 대한 도전앞에 ‘무엇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과제를 던지고 있다.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레프 니콜라에비치 톨스토이)는 제정 러시아 말기에 작가이며 기독교 사상가인 그가 죽을 때까지(1910년) 기독교적 소설로 <유년시절>,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등 주옥같은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종교적으로도 <교의신학 비판>, <참회록>, <나의 신앙> 등을 통해 기독교 사상을 체계화한 것으로 이를 학자들은 ‘톨스토이주의’라고 한다.
그의 대표적 단편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1885>에서 기독교적 사랑을 담아내고 있다. 이 소설은 제정러시아 말기의 사회는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사회 분위기는 새로운 혁명이라도 일어날 듯 한 시대적 배경과 민담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 세묜은 어려운 가정 형편이지만 아내와 아이들과 열심히 노력하며 착실하게 살아가는 구두 수선공이다. 셰몬이 추운 어느 날 구두 수선을 해준 외상값을 받고 그 돈으로 보드카를 한 잔을 마시고 취기로 돌아오는 길에서 교회 앞에서 떨고 있는 알몸의 미하일을 만나게 된다. 집으로 데려온 후에 가난한 살림에 저녁 식사를 차린 부인 마트료나를 바라보고 미하일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미하일은 세묜의 구두 수선공으로 일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기골이 장대한 신사와 하인이 함께 와서 가죽 장화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미하일은 뒤에서 갑가기 빙긋 웃으면서 얼굴을 환하게 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실수가 없었던 미하일이 주문한 장화를 잘못하여 슬리퍼를 만들어 버렸다. 세묜과 미하일은 실수로 떨고 있던 차에 하인이 구두를 찾으러 와서 슬리퍼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 신사가 돌아가는 길에 마차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것이다. 또한 미하일이 세묜의 집에 온지 어느 덧 6년이 지날 때 쯤에 한 부인이 두 여자 아이를 데리고 오고 있었다. 한 아이는 생모가 낳고 기력이 없어 그 아이를 깔고 앉아서 절름발이가 되었고, 또 한 아이는 정상으로 낳은 후에 생모가 죽었으며, 그 아이들의 아빠도 벌목공으로 일하다가 나무에 깔려 죽었다는 것이다. 착한 동네 이웃들이 장례를 잘 치러주었으나 이 쌍둥이의 육아가 문제였다. 동네에서 착한 한 부인이 낳은지 8주밖에 안된 자기 아이와 이 쌍둥이와 같이 세 아이를 키우다가 자기 아이가 두 살 때에 죽고, 그 후에 아이를 낳지 못했다고 한다. 부인은 이 쌍둥이를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몇 년을 키웠다고 하니까, 아내 마트료나는 ‘부모 없이는 살아도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그 말이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이 모습을 본 미하일은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느 덧 세월이 흘러 세묜과 미하일이 작별할 시간이 되었다. 미하일은 하나님이 지상에 내려가 아이를 낳다 죽은 부인을 데리고 천상으로 올라오라 했는데 쌍둥이를 불쌍히 여겨서 반대하자 하나님이 심한 비와 광풍이 일어나 양팔을 부러뜨려서 하늘로 못 올라가고 지상으로 떨어져 교회 앞에 떨고 있었는데 세묜 당신이 날 구해주었다고 회상했다.
세묜이 세 번 미소를 지은 것을 미하일에게 물었다. 미하일은 첫 번째 미소는 굶주림과 추위에 떨던 미하일에게 무시무시했던 마트료나의 저녁상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보면서 지었던 미소였으며, 여기서 ‘인간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는가? 바로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두 번째로는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즉 허락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에게 자신에게 무엇인 필요한가를 아는 힘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골이 장대한 신사도 언제 죽을 지 한치 앞도 모른다는 계시를 알고 미소를 지었다고 했다. 세 번째로는 어머니가 죽은 쌍둥이 아이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동네 여인이 친 자식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자기 자식처럼 눈물과 감격, 사랑으로 젓을 먹이며 키운 양엄마의 모습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는 바로 사랑이었다는 것이다.
미하일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생명을 하사하시고 그들이 잘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홀로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는 것 같아서 인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능력을 주시지 않으셨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걱정하면서 살아 갈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일 뿐, 진실로 인간은 사랑에 의해 살아간다는 것,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 하나님의 속에 사는 사람이고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하일은 이 세 가지 깨달음을 통해서 죄를 용서 받고 세묜과 가족을 떠나 하늘로 올라갔다. 이상이 이 소설의 줄거리이며, 우리는 톨스토이의 작품을 통해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이 2천여 년전 우리에게 사랑의 실천을 몸소 보이시기 위하여 하신 인류사적 위대한 일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즉,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1:1), 하나님께로 난 자(요1:13)가 우리 가운데에 거하매(요1:14), ‘그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의 되는 권세를 주시고(요1:12),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그는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의 삶을 사랑의 실천으로 바꾸어 놓았다.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7-11).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고전13:),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위대성과 진정한 의미는 몸소 사랑의 화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톨스토이는 여기서 다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의 삶에 깊은 의미와 우선순위에 대한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첫째로 어느 때가 가장 중요한가? ‘지금 이 순간’이고, 둘째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이며, 셋째로 어떤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인가? ‘지금 이 순간에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지만 그리스도의 탄생과 사랑이 없었다면 2천년의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마냥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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