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리셋 I 그라운드 제로 - 김종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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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목사(뉴욕예일장로교회)
그라운드 제로
‘그라운드 제로’라는 말은 폭탄 맞은 후의 황폐한 자리를 의미합니다. 미국에서는 2001년 9.11사태 이후의 세계무역센터(WTC)가 있던 자리를 ‘그라운드 제로’라고 부릅니다. 107층이었던 쌍둥이 빌딩이 테러로 무너지고, 지금은 그 자리에 희생자들의 슬픔을 상징하는 두 개의 인공 눈물 폭포가 있습니다. 끊임없이 떨어지는 눈물 폭포 둘레로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그 이름들과 눈물 폭포의 의미가 마음을 숙연하게 합니다.
그러나 슬픔과 상처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인공 폭포 주변으로 새롭게 세운 7개의 고층 빌딩과 날아가는 새의 날개 모양으로 만든 흰 빌딩이 고난에 굴하지 않고 다시 비상하는 미국의 정신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그라운드 제로가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는 모습이 나옵니다. 어부 출신들이었지만 그날은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날이 새어갈 때 부활하신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서 제자들에게 고기가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없다고 하지 예수님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십니다. 그랬더니 물고기가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잡혔습니다. 모두 153마리였습니다.
그 사이 예수님은 숯불을 피워놓고 생선과 떡을 아침식사로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이 숯불이 단순히 몸을 녹이고 생선과 떡을 굽는 의미 이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장담한 그가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 숯불 가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데도 실패하고, 고기 잡는 데도 실패한 베드로의 심정은 그야말로 그라운드 제로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패한 제자를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를 찾아와 하신 말씀은 과거의 아픈 상처를 캐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사랑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을 세 번이나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분명히 예수님을 사랑하지만 인간의 연약함으로 선생님을 부인하며 저주까지 했던 자신이 얼마나 부끄럽고 원망스러웠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부끄러운 사랑이었지만, 부족한 사랑이었지만 그 사랑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곧 예수님의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인생의 그라운드 제로는 이민 초기였습니다.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일하다 이민을 왔습니다. 처음 하게 된 일은 식당에서 접시를 닦는 것이었습니다. 열심히 접시를 닦았지만 체력이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여주인의 잔소리가 그런 말을 듣지 않고 자란 사람에게는 육신의 고단함보다 더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접시를 다 닦고 청소까지 마치면 자정이 넘어갔습니다. 새벽 1시경 전철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낯설고 물선 이 땅에서 누가 나를 납치해가면 감쪽같이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손을 잡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하나님과 단독으로 만나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 사람들에게 인정도 못 받고, 존재 자체도 쉽사리 사라질 수 있는 이곳에서도 저와 함께 계십니까?” 그때 마음속에 들려주시는 주님의 따스한 음성이 있었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갑자기 물밀 듯 기쁨이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미래에 대한 염려도 사라졌습니다. 그냥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만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만 가득 찼습니다. 그곳이 장차 주의 종 된 길을 가게 되는 사명의 장소가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인생의 그라운드 제로에 처했을 때 어떻게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보십시오. 그리고 당신에게 주님을 사랑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쑥스럽고 부족한 사랑이지만 다시 한번 당신의 사랑을 고백해 보십시오.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폐허의 자리가 사명의 자리로 변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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