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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崗산책 (6) 이해와 오해 사이, 몇 개의 落穗 I 신석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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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카이로스타임즈
댓글 0건 작성일 24-01-22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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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용철이 쓴 글 몇 줄이 생각난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잘한다고 하는데 그는 내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나는 사랑하고 있는데 그는 나의 사랑을 까마득히 모를 수도 있겠구나/ 나는 고마워하고 있는데 그는 은혜를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유명 철학자도 이런 말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책을 읽고 이해하지 않았다. 단 한 사람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역시 오해하고 있었다.”


생각을 공유하기란 이렇게 어렵다. 사랑에 불타는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한다. 그러나 결혼 이후 그들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며 사는가. 그리고 연애하던 시절의 이해란 참으로 허망한 오해였음을 뒤늦게 깨닫지 않는가. 


*주님도 제자들과의 견해차이로 허탈해 하셨을 때가 많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그렇게 애를 쓰시다가 결국은 목숨을 걸어야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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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들은 목사의 설교가 늘 새롭기를 기대한다. 정말 무모한 기대이다. 자신은 1년 내내 구태의연한 모습으로 앉아있으면서 목사의 설교는 번번이 눈물도 주고 감동도 주기를 원하니 어찌하여 해아래 새것은 없다는 진리를 잊고 있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설교자는 제발 고비를 넘기지 마라.


보통 아이들의 집중력은 5분이 고비라고 한다. 어른들이 애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애들은 상상력이 별로 없어 5분이 지나면 몸을 뒤 튼다. 그나마 어른들은 생각도 많고 공상도 많아 그 긴 시간을 처절하게 인내할 뿐이다. 설교자가 자신의 설교가 변화의 온전한 동력이라 생각한다면 참으로 순진한 오해임을 명심하라.


*고전에 증참이 사람을 죽이다라는 말이 있다. 증참은 공자의 제자 중에서도 손꼽히는 인격자였고 특히 이름난 효자였다. 그런데 증참이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다. 그러나 증참이 사람을 죽였다는 소문이 어머니 귀에 들어가자,이 어머니도 아들이 무서워 도망갔다는 얘기다.


어머니도 소문만 믿고 효자인 아들을 믿지 못했다는 고사다. 그 소문이 사실인지 가짜뉴스인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믿어버렸다. 그때 아들인 증참은 소문만 믿고 도망 간 어머니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참으로 가짜뉴스는 살인에 못지않은 무서운 흉기다.

 

*그런 뜻으로 오늘날 살상무기는 가짜뉴스다. 말하자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허황된 이간질이다. 믿음과 신뢰의 근거인 교회에서도 서로가 잘 믿지 못하고 많은 교회가 풍비박산이 되는 일도 그 근본이 설화(舌禍)에서 출발한다. 교회에 다니다가 상처를 받았다면 그 상처의 원인은 대부분 가짜뉴스요 한마디 툭 던진 말이 침소봉대(針小棒大)되어 칼춤처럼 돌아다닌다. 더 웃기는 일은 상처 받았다고 거품을 물고 대드는 그 사람이 남의 가슴에 더 아물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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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외모를 본다. 더러 사람도 중심을 보고 외모를 보지 않을 수 있다는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터무니없다. 문 앞을 나서는 순간부터 내가 입고 있는 옷차림을 통해 타인들은 무수한 편견과 이해와 오해 사이를 넘나든다.


동전을 바꾸려 가게에 들어갔을 때도 정장차림의 말쑥한 신사는 쉽게 바꾸지만 허름한 점퍼차림은 거절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중심의 타락과 추함을 양복이나 넥타이 색깔로 위장하려는 속셈을 이미 간파하신다.


오래전 채만식은 탁류(濁流)에서 헌신하는 아내를 외보살(外菩薩) 내야차(內夜叉)로 직관하여 낙양의 지가(紙價)를 올리기도 했지만 인간의 표리(表裏)는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오해의 극치다.


*목사는 늘 사람과 만나는 직업이다. 그래서 목사는 외롭다. 그러면 또 신령한 목사님은 목사가 외로울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위선 섞인 비난을 마지않는다. 그러나 외로운 목사를 하나님은 더 가까이 하신다는 놀라운 진리를 깨달아야한다. 그러므로 탈피하지 마라. 그 처절한 고독의 성채(城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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