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河 에세이(4)▮현세적 자아(自我)의 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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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록 목사(선교사, 수필가)
속이 빈 고목나무는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
신앙계승이 없는 가문은 속 빈 나무와 다를 바 없다.
인생은 대물림되기에 현재의 자기 모습은 책임성이 따른다.
인생은 유한하다. 지금은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그것도 유구한 역사 가운데 한 찰나(刹那)에 불과하다. 우리가 이 땅에서 생을 마감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인가? 그렇지 않다. 부모의 육체적, 사상적DNA를 유전 받은 자녀들이 삶을 계승한다. 이러한 혈맥을 통해 가문이 탄생한다. 따라서 1세대 부모들은 자녀교육에 대한 부담이 크다.
생각해보자. 부모세대들이 당대에 사업이 아무리 번창하고 사회적 명성이 있다 해도 자녀들이 앞 가름을 못하고 처져 있을 때 그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반대로 부모가 세상에서 광(光)을 못 내고 어렵게 산다 할지라도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인생을 멋지게 개척해가면 이것처럼 기쁜 일이 없다. 늘 든든하다. 어떻게 하면 다음 세대들을 잘 기를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유사 이래로 영원한 숙제가 아닐 수 없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부모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맡은 일에 성실히 살아가면 된다. 특히 교회에서 거룩한 모습이 집에서도 일관성 있게 나타나야 한다. 자녀들은 부모의 1거수 1투족을 예리하게 바라보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 가운데는 좋은 사례가 있다. 미국의 교육가 알버트 윈쉽lbert E. Winship)은 1900년 출판 된 그의 책 “쥬크 가문-에드워드 가문(Jukes-Edwards)” 에서 두 집안 후손들을 비교하며 소개했다. 그 내용인즉, 사회학자이자 뉴욕 주 형무소 위원이었던 리차드 덕데일(Richard Louis Dugdale)이 연구한 맥스 쥬크(Max Juke) 가문을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의 가문과 대조한 것이다.
쥬크는 1720년경에 뉴욕 주에서 태어난 네덜란드계 미국인이었다. 그는 믿음이 없었고 현재만을 생각하며 자유 분방하게 살았다. 이러한 그의 삶의 철학과 방식은 자식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쥬크(Juke)의 후손은 5대에 걸쳐 약 1,200명 이었다. 그들 중에서 300명은 유아시절에 죽었다. 400명은 퇴폐한 생활습관으로 인해 몸이 망가지고 병약하게 살았다. 310명이 극빈자, 130명은 범죄자, 60명은 절도범, 7명은 살인자였다. 50명은 창녀, 단 20명만이 직업기술을 배웠는데 그중 10명은 교도소에서 배웠다.
이에 반해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가 있었다. 그는 1703년 출생했으며 신앙과 교육을 중시하는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는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23살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목사, 신학자, 사상가로서1740년대 영적 대 각성 운동의 주역이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세상을 떠난 지 약 140년이 지난 후 그의 일가는 1,400명 이상이 되었다. 그의 후손들 중에는 부통령 1명, 상원의원 3명, 하원의원 다수, 외교관 다수, 주지사 3명, 시장 3명, 대학총장 13명, 교수65명, 판사30명, 변호사100명, 군대장교 75명, 작가 60여명, 철도회사 책임자 50명, 금융기관장 여러 명, 광산주 여러 명 그리고100여 명의 영적 지도자(목회자, 신학자, 선교사)가 나왔다.
위의 두 가계(家系) 후손들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충격적이다. 어떻게 이리 다를 수 있단 말인가? 한 쪽은 명예로운 지위와 신분인 반면 다른 쪽은 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대변하는 듯하다. 추측컨대 당연히 저들 모두가 누렸던 행복지수도 달랐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양 가문의 조상이다. 쥬크와 에드워드는 각각 1사람이었다. 헌데 쥬크는 원칙 없이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았다. 이에 비해 에드워드는 하나님 말씀을 따라 성결하게 살았다. 하지만 저 둘의 육체적, 사상적, 습관적 DNA는 당대로 끝나지 않고 후대로 전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맥스 쥬크(Max Jukes)와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 가문! 당신은 어느 것을 원하는가?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그러려면 그 책임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지금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 부모세대들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음세대들을 위해서 인생을 좀 더 진중(鎭重)하게 살아야 한다. 최선의 방법은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은사와 소명을 따라 행복을 누리며 그리스도의 광체가 드러나게 사는 것이다. 그러면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성령께서 우리 자녀들 심령도 만지실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잠14:27).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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