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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崗산책 (9) 불황을 호황으로 | 신석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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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카이로스타임즈
댓글 0건 작성일 24-09-1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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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원리 중에 불황을 호황으로 만들라.”는 경구가 있다. 남들이 다 겪는 불황을 잘만 이용하면 호황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전략 지침이다. 남들이 장사가 안 된다고 아우성일 때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바로 그 사람이 경영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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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이 시대는 팬데믹이 있어서 불황의 변명이 그런대로 통한다. 뭐든지 팬데믹을 둘러대면 어지간한 상황은 넘어가 준다. 그 한 예가 교회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팬데믹 전에도 힘들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교인이 몇 없었던 상황은 오십 보 백보다. 그러나 분위기와 대세라는 것이 있다. 시대적 상황이 팬데믹 이후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교회에 불어대는 불황은 더욱 심각하다.

 

일단 교인들이 교회를 찾지 않는데 익숙해졌다. 팬데믹 전 교세로 회복되는 조짐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 시대의 흐름 자체가 교회에 대한 인식을 엄청난 속도로 바꿔버렸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신앙의 척도라는 자체가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큰 교회 건 작은 교회건 입 있는 목사마다 설교 영상을 올려 설교가 넘쳐흐른다는 것도 교회를 멀리하는 데 일조한다. 하여 믿거나 말거나 집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드려요라는 대답이 일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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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불황의 시대에 어떻게 해야 된단 말인가? 어떻게 해야 교회가 부흥되고 성장된다는 것인가.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가. 있는 목사도 소화가 잘 안되는데 별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신학교는 계속 신입생을 받고 계속 졸업생을 배출하고 계속 목사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신학교마다 교회의 성장 방법, 시대가 요구하는 목회자상에 대한 구체적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하지만 결국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불황 속에서 호황을 누리는 교회가 되려면 최소한 목사부터 변화 되어 실사구시(實事求是)하기를 바란다. 교회가 외치는 여러 가지 구호가 사람들 가슴을 울려야 되겠지만 그렇게 울려질 가슴이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바꿔진 패러다임을 직시해야 한다. 목쉰 소리로 성령 받아라, 기도하라, 안수 받아라 외치던 부흥사 스타일이나 주여 삼창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제목만 바꾼 채 똑같은 설교를 찍어내는 목사님들은 이제 그 방법을 달리해야 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컴맹이 제일 많은 분야가 목사라는 우스개도 있지만 마냥 조크가 아니다. 시대와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구각을 깨뜨리고 목사도 교회도 세련된 느낌을 주려고 애를 써야한다. 시대에 맞춰 메시지도 신선해야 되고 반드시 원고 설교를 하기 바란다. 성경만 달랑 들고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말씀을 전하겠다는 오만한 생각을 버려라. 원고가 없으니 설교가 마냥 길어지고 중언부언 한소리 또 하다가 겨우 결론에 도달하는 패턴을 언제쯤 끝낼 것인가. 그 시간에 교인들은 주리를 틀며 앉아있는 현상을 아는가 모르는가. 제발 설교 좀 짧게 하자. 요즘은 유튜브도 숏 폼이 유행이다. 그리고 교회의 기능이 다변화 되었다. 교회가 문화공간으로 그 역할을 분배하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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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가 어떤 한 가지에 치중되면 안 되듯이 예배시간에 기도 순서가 너무 많아도 식상한다. 또한 예배 시에 드리는 기도는 그 본질에 충실하자. 대표기도는 그날의 예배를 위해, 헌금기도는 헌금의 봉헌만을 위해, 축도는 설교의 축소판이 아닌 축도만을 하자. 요즘 예배 시작 전 찬양이 유행처럼 번져 혼신을 다하는 모양은 좋은데, 자칫 교인들을 지치게 만든다. 설교를 중심으로 모든 순서가 역동적으로 그러나 짜임새 있이 구성되어야 한다.


비바람이 거세게 불면 그 비바람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일단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세미한 음성으로 갈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계기판을 주의 깊게 보아야한다. 내가 부르는 찬송은 어떤 찬송이며 내가 외치는 설교는 어떤 설교인지 철저한 자아비판이 있어야한다.


이런 말을 기억하는가. “바람이 불 때는 바람을 맞고 비가 올 때는 비를 맞아라.”흐름을 거역하지 말고 함께 가라는 뜻이다. 어떤 이는 누구에게 부탁할 일이 있으면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몹시 부는 악천후의 날을 택한다고 한다. 그럴 때 찾아가면 반가움도 더하고 그 만남이 각별할 수도 있다는 숨은 뜻이 있다. 전도나 심방도 화창한 날보다 다소 일기가 불순한 날이 괜찮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내 사정을 아뢰는 일도 조금 추운 날, 비바람이 부는 날이 더 좋을 수 있다. 악천후를 뚫고 새로운 전환과 전기(轉機)를 허락하시는 우리 주님의 사랑을 믿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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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목회자들이여! 영적인 불황인 오늘, 당신의 분발을 촉구한다. 필자는 벌써 은퇴를 했고 황혼을 걸어가지만 지금도 목회라는 단어 앞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 시대는 과연 어떤 모세가 필요할 것인가. 어떤 설교를 해야 무딘 마음을 깨뜨려 광야를 통과시킬 것인가. 어떻게 작전을 짜야 사단의 요새를 무너뜨릴 것인가.


이 해도 벌써 다 가는 길목에 들어섰는데 당신의 교회는 불황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거기 서 있는가.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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