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崗산책 (8) - 계절 그리고 사랑 | 신석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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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환 목사
쟈크 프레베르가 “날 만든 것은 사랑”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 날 만든 것은 사랑 /날 부순 것도 사랑 /날 버린 것도 사랑 /날 사랑했던 그대 /어디로 가 버렸나 -
미당은 자기 인생 8활은 바람이라고 술회했던 것을 기억한다. 바람은 무엇일까. 역시 사랑이 아닐까.
정녕 사랑은 영원한 인생의 화두(話頭)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도, 사랑을 아는 사람도 사실은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한다.
누가 사랑을 해봤다고 장담할 것인가. 삶의 여정에서 만나고 작별하고 아파하고 즐거워하는 모든 일상사가 결국은 사랑의 흔적들인 것을. 유난했던 24년 여름도 어느새 그 언덕에서 내려가는 시간이다. 무더움, 권태, 짜증을 여름의 전매특허쯤으로 여긴다면 역시 금년 여름도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그런 여름을 보내려니 여름이 지나치게 짧았다는 느낌과 함께 저만치 오는 가을이 두렵기 까지 하다. 현역에서 내려온 마련으론 무언가 하는 일도 없이, 이렇다 할 기억의 편린도 마련하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여름을 보냈는데 가을이 오면 또 무슨 사랑을 상실하며 세월을 보낼 것인가, 견고한 대문 앞에 선 느낌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사랑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모든 얼굴에 달려있는 입들이 무성한 말만했지 정작 사랑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리고 작정들을 한다. “봄에는 사랑을 할 거야” “이번 가을에는 사랑을 해 볼 거야”
그러나 그런 갸륵한 마음도 작심삼일이었음을 고백하지 않는가. 그래서 사랑의 자리에 미움을 채우고 증오가 판을 치고 더운 여름에도 싸우고 한 겨울에도 투쟁하고 심지어는 낙엽 지는 가을에도 이를 간다.
사랑. 참으로 지고지순한 단어이련만 낡은 교훈처럼 벽에 걸려있을 뿐이다. 날 만든 것도 날 부순 것도 사랑이라는 말은 정답이다. 나는 이제 다짐하지 않으련다. 사랑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라면 믿겠다던 그 경박함도 접으려 한다. 가을은 그냥 가을이 되어야 한다. 저 쯤 보이는 가을의 입구를 보며 그저 걸어 들어가면 된다. 사랑은 다짐으로 되는 게 아니라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그 내음을 맡는 것이다.
변변한 나이테 하나 만들지 못하고 그저 해마다 희미한 둥근 원만 남기며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정체가 분명치 못한 사랑의 그림자를 이끌고 갈뿐이다.
왜 사랑을 깼는지 분명치 않은 이가 해변 시니어아파트에 산다는 소식을 벌써 들었는데도 그나 나나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각자 붉게 타는 노을만 응시하며 살아간다. 내가 잠시 뉴욕을 떠날 때 두 손을 붙들고 차마 말을 잇지 못했던 이도 다시 뉴욕에 온지 십 수 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지척에서.
사랑, 정말 사랑은 그 말이 아름답다.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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