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河 에세이(8) I 빼레그레나찌오 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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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록 목사(선교사, 수필가)
“빼레그레나찌오”란 켈트족 중 선교사로 부름 받은 자의 서약이다.
그것은 사역을 위해 가족과 조국과 미래의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오늘의 시대정신은 100마디 말보다 저들처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이다.
당신의 손에 언제나 할 일이 있기를/ 당신의 지갑에 언제나 한 두 개의 동전이 남아 있기를/ 당신 발 앞에 언제나 길이 나타나기를/ 바람은 언제나 당신의 등 뒤에서 불고 당신의 얼굴에는 해가 비치기를/ 이따금 당신의 길에 비가 내리더라도 곧 무지개가 뜨기를/ 불행에서는 가난하고 축복에서는 부자가 되기를/ 적을 만드는 데는 느리고 친구를 만드는 데는 빠르기를/ 이웃은 당신을 존중하고 불행은 당신을 아는 체도 하지 않기를/ 당신이 죽은 것을 악마가 알기 30분 전에 이미 당신이 천국에 가 있기를/ 앞으로 겪을 가장 슬픈 날이 지금까지의 가장 행복한 날보다 더 나은 날이기를/ 그리고 신이 늘 당신 곁에 있기를!
위 내용은 아일랜드 켈트족(Celts)의 축복 기도문이다. 역사적 자료에 의하면 5-7세기 경 켈트족 수도사들은 유럽대륙에 기독교 전파를 가져온 해외선교의 선두주자였다. 그들은 선교사로 떠날 때 “빼레그레나찌오”라는 서약을 했다. 그러면 마치 프랑스 국기와 모양이 비슷한 3가지 색으로 된 조그만 깃발을 달아주었다. 그것은 자기 인생 가운데 3가지를 포기하겠다는 결의문이다. 내용인즉, “첫째 나의 사랑하는 가족을 포기한다. 둘째 나에게 익숙한 고국/문화/환경을 포기한다. 셋째 나에게 편안한 모든 미래를 포기한다.” 한마디로 십자가의 희생정신으로 무장한다는 것이다. 켈트족 선교사들은 주님 나라와 의를 위해 자기를 산화(散華)하는 하나의 심지 역할을 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헌신을 받으셔서 놀랍게 사용하셨다. 바로 독일과 벨기에 등 유럽의 북서쪽에 복음이 전파된 것이었다. “빼레그레나찌오” 서약의 놀라운 위력이었다.
지난 2천 년간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면 선교는 철저히 대가를 요구했다. 성령의 역사는 그저 아무데서나 일어나지 않았다. 거기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된 권세를 포기하고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인간을 구속하셨다.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라고 교부 터툴리안(Turtulian)이 말한 것처럼 초대교회의 부흥 성장은 사도들의 희생 위에서 세워졌다. 근세 이름 있는 선교사들 역시 모두가 썩어지는 밀알처럼 땅 끝에서 소임을 다했다. 일제 통치하에서 우리민족의 선각자들은 조국 광복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기 자신을 초개(草芥)같이 바쳤다. 이러한 내력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 진리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십자가 고난 없는 부활이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 크리스천들은 초대교회 성도들보다 성경지식이 많다. 각종 부흥회나 세미나도 앞다투어 열린다. 신앙성장을 위해 수많은 문서들과 영상자료 및 기자재도 홍수를 이룬다. 헌데 왜 켈트족 수도사들처럼 생명 받쳐 헌신하겠다는 자들이 흔치 않는가? 주님의 교회가 원색적인 복음에서 멀어지고 “대 계명(The Great Commandment)”(마22:37-40)과 “대 사명(The Great Commission)”(마28:18-20)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히게(마5:13) 되듯 오늘의 교회가 세상에 밟히고 있다. 주일날 단정한 옷차림으로 예배하는 성도들을 보면 모두가 천사 같다. 하지만 저들 중 일상에서 산 제물된 삶을 추구하는 신도는 얼마나 될까? 교회가 전투함 되기를 거부하고 유람선처럼 변해가고 있는 것이 문제다. 강도의 굴혈된 성전을 뒤엎으신 주님(막11:15-17)께서 21세기 교회에 찾아오신다면 어떻게 반응하실까?
빼레그레나찌오 서약의 근간은 십자가이다. 예수 십자가는 결코 인간들의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이 십자가는 자기희생이며 포기이다. 신앙인의 좌표이며 모든 영역의 중심이다. 그러기에 십자가는 우리가 증거할 주제이며 자랑할 대상이다. 20세기 상반기에 “강해설교의 제왕”으로 평가받은 영국의 캄벨 몰간(Campbell Morgan)은 “십자가를 전할 수 있는 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다”라고 했다. 그렇다. 옛 자아(自我)가 죽지 않고는 십자가에 대해서 가타부타 말해서는 아니 된다. 모름지기 구도자는 순전(純全)해야 한다. 청빈해야 한다. 단순해야 한다.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켈트족 수도사들이 그러했다.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신앙고백과 삶이 하나 된 저들의 축복기도문이 가슴에 다가온다.
“바람은 언제나 당신의 등 뒤에서 불고 당신의 얼굴에는 해가 비치기를/ 이따금 당신의 길에 비가 내리더라도 곧 무지개가 뜨기를/ 그리고 신이 늘 당신 곁에 있기를!”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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