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崗산책(1) - 일상(日常) 깨기 I 신석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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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환목사
우리는 삶을 살면서 일상적인 타성에 익숙해져 있다. 어딘가에 가기 위해서는 거리에 상관없이 차 열쇠 부터 찾는다. 차를 타면 자동적으로 *임재범도 아닌데 라디오를 켠다. (가수 임재범은 ‘크게 라디오를 켜고’라는 노래를 불렀다) 어느새 자정이 되면 “늦었구나.” 생각하고 잠 잘 차비를 차린다.
교회에 가면 시키지 않아도 자리에 앉자마자 눈을 감고 “하나님 아버지”를 찾는다. 별로 이렇다 할 주제도 없이 하나님을 불러 놓고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달 1일이면 달력을 뜯어낸다. 때가 되면 공복 여부와 별 상관없이 먹을 궁리를 한다. 라면에는 대개 계란을 넣는다. 그래서 “파 송송 계란 탁!”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사람을 만나면 용건 부터 묻고 비 오면 우산을 쓴다. 목사는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정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어머님말씀을 따라 일생을 살다가 이제 은퇴를 하고 비교적 자유로워져서 하나의 일상은 깨진 셈이다.
책을 사면 첫 장부터 읽어나가지만 나이가 더 해질수록 끝까지 읽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학생 때도 영어 참고서는 항상 명사 대명사 부분에서 밑줄은 멈추어져 있고 수학은 정수의 4칙과 인수분해를 가까스로 넘기고 깨끗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버릇임에도 성경을 끼고는 수십 년을 살고 있으니 대단한 깨기이다.
봄이다. 봄에는 일상을 깨기 쉬운 계절이다. 누군가는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일상이고 어떤 사람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도 일상이겠지만 그런 일상도 바꿔보는 게 어떨지.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 보는 것도 좋다. 우산 따위는 쓰지 말고 봄비를 즐기는 일도 괜찮은 일상 깨기이다. 그러나 내자는 한사코 말린다. 언듯 부는 바람에도 고뿔이 잘 드는 사람이 기분 내다가 큰일 당하면 골치 아프다는 것이다. 봄날에 단단히 입고 다니라는 경고가 자심하니 일상을 깨기는커녕 지키기에 바쁘다. 차를 타면 라디오를 켜지 말고 그냥 달리는 것도 좋다. 켜 봤자 5분의 4는 광고일 텐데 당신의 머리를 그 시간이나마 비우는 게 더 낫지 않은가.
교회에 와서 먼저 입을 열어 기도하지 말고 그냥 눈을 감든 뜨든 앉아서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말씀을 먼저 듣는 연습을 하자. 테레사가 그랬던가. “저는 기도할 때 말을 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도 제게 말씀을 하고 싶으실 테니까요.” 한 박자나 두 박자 쯤 쉰 후에 기도를 해도 늦지 않다. 교회 안에 들어오자마자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허겁지겁 앉자마자 눈 감고 목 빼고 입을 열지 말기 바란다. 자리에 좌정한 후, 단상 정면을 보고 호흡을 고른 후 하나님을 향한 집중의 마음을 만드는 것, 그 자세가 우선 좋을 것 같다.
라면에 계란이나 파를 넣지 말고 끓여먹자. 책은 뒤나 중간에서 부터 읽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뒤를 읽다가 궁금하면 앞으로 가고. 대학 입시 때 수학을 뒤에서부터 공부한 경험이 있다. 공교롭게도 좋은 결과를 얻었다. 윤대통령도 사법시험 과목 중 형사소송법을 공부할 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뒷 부분에 집중했는데 그게 적중했었다는 일화도 있다.
지금도 독서법은 거의 뒤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떤 경우에는 중간부터 읽고 처음과 나중으로 간다. 소소한 일상 깨기가 재미있다.
매월 1일에 달력을 뜯지 말자. 3일이나 10일에 뜯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어느 때는 미리 두 달 정도 당겨서 뜯거나 한 달 정도는 그냥 놔두는 것도 괜찮다. 한 달 내내 지난달을 보고 사는 것도 재미있다. 이런 일상 깨기도 은퇴했으니 가능하지만.
사회의 통념중 하나가 장로 집사 중 위선자가 많고 교인 사기꾼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목사를 향해서도 심한 말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리 서운해 하지는 말자. 존경받는 목사도 생각보다 많고 위선자 아닌 장로 집사가 훨씬 많지 않은가. 어쩌다가 교인이 사기를 치지만 복잡다단한 이 사회에, 그리고 전보다 많아진 인구와 교인수를 생각하면 그리 실망할 일만은 아니다. 그런 통념의 일상을 깨야한다.
목사는 항상 정장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버리고 밥을 먹을 때는 김치가 반드시 있어야한다는 공식도 깨자. 밥을 먹을 때 늘 아내가 옆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버리고, 광천 김이나 어리굴젓 한 가지하고 밥을 먹어도 스스로를 비하 하지말자.
하나님께 은혜를 받으려고만 하지 말자. 내가 그 하나님을 웃길 수는 없는가. “갑자기” 찬송가도 한 두어 장 부르고 구약 뒤 쪽에 있는 스가랴나 말라기, 또는 신약 어느 한 장을 소리 내 읽어보라. 내 존재의 가벼움을 보시고 기가 차서 웃으시겠지만, 그 웃음이 아주 작은 하나님의 기쁨이 아니시겠는가. 이 봄날에는 일상의 틀을 깨고 요만큼 성장하는 신앙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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