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 통하는 교회-(1)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의 상식이 된 교회 I 이홍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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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길 목사(메릴랜드 크리스찬교회)
2024년 교회 표어를 놓고 기도하면서 “상식이 통하는 교회”로 정했습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교회”의 모습에 대한 비판이 뉴스 기사화되는 현실이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아무 문제가 없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문제없는 교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완벽하지 않은 한사람 한사람이 모인 곳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잘 해결해야 합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상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풀면 상식적이라고 말하고 그렇지 않다면 “상식이 없다”고 말합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보통 사람으로서 으레 가지고 있을 일반적인 지식이나 판단력”을 상식이라고 정의합니다. 영어사전에 따르면, “어떤 문제에 대해 이해가 되는 결정(make sensible decisions)을 내리는 능력을 상식(common sense)”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상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행동이나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을 일컬어서 “상식이 없다”고 말합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상식이 통하는 교회”를 교회의 핵심가치로 정한 몇몇 교회들이 있습니다. 교인들의 반응이 긍정적이고 주변에서 이런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긍정적이었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교회”라는 표어가 인기가 있다는 말은 그만큼 상식이 통하지 않는 교회가 많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만약 모든 교회가 상식이 통하는 교회라면, 굳이 상식을 들먹일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이 상식적이지 못해서 교인들이나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되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며 상식이 통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고민을 2회에 걸쳐서 나누려고 합니다.
상식이 통하는 교회 1: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의 상식이 된 교회
“상식이 통하는 교회”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의 상식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할 때,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핍박이 너무 심해서 바울은 고린도까지 피신해야 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머물 때, 데살로니가에서 핍박 받는 교인들을 생각하며 기록한 서신이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1-3장에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설명하고 4-5장은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것을 권면했습니다. 특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가르쳤습니다.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살전4:1).
그리스도인이 사는 이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산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 배운 것을 지키며 살아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다음 절에서 바울은 설명을 계속했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1-2절을 정리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삶을 비춰서 어떻게 행동하며 살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 배운 대로 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마땅히 지켜야 할 삶의 모습을 배우고 배운 대로 살아내는 것이 성도의 삶이 되어야 하고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아주 상식적인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상식을 “보통 사람으로서 으레 가지고 있을 일반적인 지식이나 판단력”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정의를 교회에 적용하면, 교회의 상식은 “그리스도인이 으레 가지고 있을 하나님의 말씀이나 그에 근거한 판단력”입니다. 따라서 상식이 있는 그리스도인, 상식이 통하는 교회라면, 지금까지 배운 하나님의 말씀이 상식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모르거나 잘못 받아들일 때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배우고 그 말씀을 붙잡고 살려고 몸부림치면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가 상식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만약 교회가 상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결정을 내렸을 때, 세상이 그런 교회를 비판한다면 그 비판은 기쁘게 받아야 됩니다. 그러나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내팽개치면, 상식을 잃어버리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세상이 칭찬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그 칭찬은 교회에 저주입니다.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상식적인 행동을 할 때, 그 기준이 세상의 가르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의 기준보다 열등합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상식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상식이 통하는 교회”는 세상의 기준이나 세상의 상식에 맞춰진 교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가장 쉬운 예를 든다면, 이슬람 국가에서 교회 또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사회의 상식을 그대로 따를 수 없습니다.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을 핍박하거나 죽이는 것이 상식인 사회에서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상식을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책을 소유하거나 예배를 드리면 감옥에 갇히는 세상의 상식을 교회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비밀리에 말씀을 읽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 사회에서는 이로 인해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따라서 때때는 교회의 상식이 세상의 상식과 분명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회의 상식은 우리가 배운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된 판단력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상식이 통하는 교회”를 세우려고 세상의 시각으로 교회를 바꿔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교회가 지금까지 놓쳤거나 오해했던 성경의 가르침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지켜왔던 것이나 우리에게 익숙한 삶의 모습들을 돌아보면서 혹시 말씀에서 벗어난 모습은 없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이런 삶이 상식이 통하는 교회를 세우는 모습입니다.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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