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채플린 이야기”-(4)뒤통수가 간지러워! > 기타(2)

본문 바로가기

기타(2)

“좌충우돌 채플린 이야기”-(4)뒤통수가 간지러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카이로스타임즈
댓글 0건 작성일 23-09-13 08:23

본문

dd8b5ed1f17a533f7c837273bf06b18b_1694607751_2153.png 

최영숙 목사(제시브라운보훈병원 채플린)

 

반복된 ‘I am sorry’...그때를 회상하니 반면교사

 

On-Call을 위해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설렘과 두려움이 묻어있다. 이 큰 병원에 나홀로 채플린이다. 병원 예배실에 소리 없는 신음 같은 기도가 천사들의 손에 들려 부지런히 하늘로 배달된다.

"하나님, 제발 오늘은 아무 일도, 응급상황도 발생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그리 아니 하실 거라면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사무실로 돌아와 "무엇을 해야 하지?" 하며 CPE 교재(Student Handbook)를 펼쳐 읽다가, "어제 밤 긴급 상황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노트(Hand over Book)를 살피고 있는데, 파트타임 채플린 Kim(Registry)이 왔다. 그녀는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토종 미국인으로 오늘 나를 돕고 가르쳐주기 위해 나타난 천사 같았다. 나를 위한 슈퍼바이저의 배려였다. 그녀는 훌륭한 멘토로 기초적인 사실들을 꼼꼼하고 정확하게 가르쳐주었다.

 

오리엔테이션 동안 뜬구름을 잡았는데, 뭔가 그림이 그려졌다. 그녀는 다른 병원에서도 근무를 하는데, On-Call Pager가 오면 가야 한다고 했다. Pager가 오지 않기를 바랬지만, 무심한 pager10시가 되자 울렸다. 그녀는 다녀오겠다며 내가 방문해야 할 환자의 명단과 그녀의 연락처를 남겨둔 채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그녀의 친절함이라니, 감동이다."

채플린 Kim이 떠난 후 혼자서 CCU(Clinical Care Unit) 병실 환자 방문을 갔는데, 간호사가 환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싸. 그래, 지금은 적당한 시간이 아니냐. 다음에 다시 오는 거야." 환자 방문을 주저하는 무의식에 대한 스스로의 설득이리라.

 

고개를 숙인 채 방문 환자 리스트에 상황을 기록하며 걷다가 무심코 출입문을 열었는데,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로 큰 알람이 울렸다. "아니, 무슨 소리지? 내가 뭔 짓을 한 거야?" 상황 파악은 몇 초 만으로도 충분했다. 출입문(EXIT)을 연다는 것이 옆에 있는 비상탈출구(Emergency Exit Door)를 열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하지?” 당황스러웠다.

그 때 여러 명의 간호사 중 한 명이 난감을 표정을 지으며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비상 알람이 울린 것 때문이리라.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처음은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이 스치며 내심 위로가 되었다. 나 때문에 생긴 일이기에 간호사들을 향해 유창한 영어로 "미안합니다(I am sorry)"라고 말했다. 그런데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내 목소리가 너무 작았나?” 나는 전화하는 간호사에게 가까이 다가가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아무 대꾸 없이 나의 시선을 피했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나의 얼굴이 사과 색깔로 바뀌어갔다. 병원시설이 잘 되어 있기도 하지만, 아직 건물 구조를 모두 파악하지 못해 쥐구멍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것이 한스러웠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한 선택은 "I am so sorry"를 다시 한번 외치고 병동을 탈출하는 것이었다. “첫날부터 추억 만들기라니...” 병동을 도망치듯 나온 후 간호사들끼리 어떤 대화가 오갔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뒤통수에 손이 갔다. "아이, 왜 이렇게 뒤통수가 간지럽지." 미안하다고 여러 번 말했음에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은 간호사들의 무심함이 나의 여린 마음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때를 회상하니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이 떠오른다. ‘부정적인 면에서 가르침이나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이다. 누군가 실수를 하고 잘못을 인정할 때,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주고 생명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해주는 넉넉함이 있으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실수를 후회하며 힘들어하고 불안해하는 사람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주면 그 사람은 어떤 느낌을 갖게 될까?

 

칼릴 지브란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나는 수다쟁이로부터 침묵을, 편협한 이로부터 관용을, 불친절한 이로부터 친절을 배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스승들에게 고맙지 않다.” 지금 같으면 전화한 간호사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제가 문제를 만들어 환자들과 당신을 번거롭게 해서 미안합니다. 저를 대신해 문제해결을 위해 전화하는 수고를 해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당신에게 있기를"라고....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58건 4 페이지

검색


카이로스타임즈 TEL : 917-733-8682 Email : kairostimes23@gmail.com Name : Wonjung Yu
Copyright(C) 2023 카이로스타임즈.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