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즈한인교회 주최 제 5회 신학세미나 I 강사 채경락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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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적 강해설교 작성법-로마서를 중심으로”
퀸즈한인교회가 주최한 제 5회 신학세미나가 6월 10일(월) 오전 9시부터 시작됐다.
담임 김바나바 목사는 참석자들을 환영하며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한 후 강사 채경락 목사(분당 샘물교회)를 소개했다. 채경락 목사는 고신대 설교학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샘물교회 담임목사로 재직하고 있다.
채 목사는 “목회적 강해설교 작성법-로마서를 중심으로” 주제의 강의를 통해 실제적 체험 중심의 강의를 진행하며, 강의의 1차 목표로, △제한된 시간 내에 성도들이 소화할 수 있는 △어느 정도 퀄리티를 갖는 설교작성법을 강의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1강은 목회적 강해설교 작성법 △2강은 로마서 설교구상 및 적용 I △3강은 로마서 설교구상 및 적용 II △4강은 로마서 설교구상 및 적용 III, 제목으로 강의했다.
다음은 1강을 간추린 것이며, 채경락 목사는 10일(월) 오전과 오후, 11일(화) 오전까지 로마서를 중심으로 설교구상을 적용하는 강의를 인도했다.
들어가며
20여 년 전 필자의 신대원 시절 학생들 사이에 떠도는 듣고 싶은 설교의 기준이 있었다. 당시 신대원생 들이 선호하는 설교가 있었다. 짧은 설교, 밥 주는 설교, 그리고 꾸짖지 않는 설교다. 가벼운 마음으로 주고받은 말이지만, 성도의 입장을 헤아려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추억이다.
짧은 설교, 밥 주는 설교, 꾸짖지 않는 설교, 신대원생들이 왜 그런 설교를 좋아했냐고 째러 보면 곤란하다. 신대원생도 인간이고, 이것은 인간의 본성에서 나온 기호다. 지금 우리의 설교를 듣고 있는 성도들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설교가 청중의 기호에 맞추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설교의 기준은 말씀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설교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성도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도 설교자의 지혜와 성숙이다.
1. 짧게 느껴지는 설교
청중이 짧은 설교를 좋아한다고 선포할 진리를 잘라낼 수는 없다. 전해야 하는 말씀이라면 시간이 지체되어도, 청중이 꾸벅꾸벅 졸아도 깨워가면서 밤을 새워서라도 전해야 한다. 그런데 지혜로운 설교자라면 청중을 위해 함께 느껴지도록 설교할 것이다.
두 가지 방법을 추천한다. 선명한 주제, 그리고 단단한 구조다. 먼저, 선명한 메시지가 쌓게 다가온다. 주제가 선명하면 긴 설교도 쉽게 느껴진다. 중구난방은 심리적 지루함을 더한다. 여기에 구조가 단단하면 더욱 짧게 느껴진다. 알고 가는 길이 모르고 가는 길보다 짧게 느껴진다.
2. 밥이 되는 설교
밥이 되는 설교가 어떤 설교일까? 세 가지 길에 주목하고자 한다. 먼저 적용된 메시지다. 설교는 해석을 넘어 적용이다. 설교 메시지가 성경 본문에서 나와야 함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설교의 정도다. 그런데 본문에서 나왔다고 무조건 좋은 설교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성도의 삶에 적용되어야 한다. 성도의 삶에 의미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밥이 된다.
둘째, 복음이다. 최고의 밥은 복음이다. 밥을 먹고 또 먹어야 하듯, 복음 역시 듣고 또 들어야 한다. 그리스도 중심적 메시지, 구속사적 설교가 이 범주 안에 들어온다. 사십일을 금식하신 주님이 찾으신 것은 밥보다 말씀이었다. 말씀이 우리에게 양식이 되기 때문이다. 가장 건강한 양식은 복음이다.
셋째, 변증적 메시지다. 변증적인 설교가 무엇일까? 상당수 현대인들은 부활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데, 우리로서는 아쉽지만 그들로서는 당연하다. 과학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변증 설교는 먼저 이들의 마음을 공감하는 데서 시작된다.
시세도난설, 기절설, 환상성 등 많은 가설이 세시되었지만 어떤 것도 이 놀라운 일들을 해명하지 못했다. 과학적인 가설이 모두 거절된 상황이라면, 비록 과학을 초월하지만 부활의 가능성을 향해 마음을 여는 것이 오히려 과학적 사고라고 주장할 수 있다.
주의할 것은, 설교에서 변증의 요소가 과도하게 자리 잡으면 설교가 건조해질 수 있다. 설교의 기조는 변증보다 믿음의 선포다. 그렇지만 적절한 자리에 변증의 요소를 가미할 때 성도들의 마음을 깊이 파고드는 밥 설교가 될 것이다.
3. 따뜻한 설교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설교하면서 마음 밭을 갈아야 한다고 많이들 선포하는데, 맞는 말이다. 듣는 이의 마음에 따라 복음의 씨앗이 열매를 맺기도 하고, 길가처럼 마음이 준비되지 못하면 찍이 트지도 못한 채 사그라지기도 한다. 그런데 어찌 청중에게만 그 책임을 물으랴, 설교자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
소위 '치는 설교'가 진정한 설교라고 여기는 이들이 더러 있다. 사람들 구미에 맞추는 설교가 아니라, 담대한 언어로 백성의 죄를 지적하는 선지자적 설교 말이다. 필자도 그런 설교를 많이 했었는데 그 날 이후 생각을 많이 바꿨다. 어느 주일인가 본문을 좋아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를 선포했는데, 은퇴 장로님 한 분이 다가오셨다. "목자님, 송구하지만 오늘 같은 설교를 많이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위로받고 싶어요" 뜨끔했다. 설교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하는 따뜻한 일침이었다.
따뜻해야 설교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이다. 꾸지람도 사랑의 발로이기에 꾸짖는 메시지를 선포할 때도 하나님의 따뜻함이 전파되어야 한다. 바위를 내리친 모세의 실수가 우리의 설교에 묻어나서는 안 된다.
4. 대지형 설교를 기본으로
실제적인 설교 준비에 관해 제언하고자 한다. 앞서 선명한 주제에 탄탄한 구조를 가진 설교가 짧게 느껴진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면 그런 설교를 준비할 수 있을까? 필자는 대지형 설교를 추천한다. 대지형 설교는 오래된 형식이지만, 단순하지만 선명하고, 선명하기에 청중의 마음을 여는 힘이 있다.
필자는 “쉬운 설교”(채경락 저)에서 "3대지는 죽은 격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물줄기“라고 주장했다. 대지 설교는 고정된 틀이 아니라 다양한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는 포괄적 틀이다. 설교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얼마든지 다양하게 담아낼 수 있다.
5. 빈칸 채우기를 통한 설교준비
설교자의 큰 부담 가운데 하나가 시간제한이다. 그래서 전략이 필요하다. 필자는 빈칸 채우기를 제언한다. 대지형 설교의 경우 아래 빈칸을 채우면 된다. 막연하게 본문 연구에 들어가기보다 빈칸을 채우겠다는 목표 의식을 갖고 연구하라는 말이다. 주제어는 오늘 설교의 중심 이슈를 말한다. 단일한 주제어를 확보하기 어렵다면, 생략하고 우산질문과 대지만 채워도 설교는 가능하다.
6. 다양한 설교의 기초
설교의 기초에 관해 필자는 선포형, 명명형, 기원형으로 구분한다. 기본은 직설법으로 진리를 선포하는 선포형 설교다. 여기에 성도의 삶을 규정하는 명령형도 가능하고, 기도의 언어로 대지를 채우는 기원형 설교도 가능하다. 앞서 소개한 설교는 대제로 선포형이다.
7. 정결한 통로가 되라
설교 준비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설교자 자신을 준비하는 것이다. 설교자로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현실이 있으니, 청중은 설교만 듣지 않고 설교자를 듣는다. 19세기 미국을 섬겼던 팀스 브룩스는 설교를 "인력을 관통하여 선포되는 진리(truth through personality)"라고 정의했다. 메시지와 메신저가 구분되기가 어려운 현실을 시식하고 있다. 이런 기준이라면 우리 중 누구도 강단에 올려서는 안 되겠지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오늘도 우리는 강단에 오른다. 성실하게 설교를 준비하지만, 동시에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를 준비함이 마땅하다.
<유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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