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河 에세이(12) - 평강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Messiah) > 초대칼럼

본문 바로가기

초대칼럼

大河 에세이(12) - 평강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Messiah)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카이로스타임즈
댓글 0건 작성일 24-12-24 09:22

본문

cec76699f6b0f83b412e8b9a05ca366f_1735050086_7351.png
송종록 목사(선교사, 수필가)


인생들 중에는 유난히 밤이 길고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이 많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며 호흡하고 있는 한 결코 낙심할 필요가 없다.

크리스천은 평강의 왕 예수를 사망의 그늘에 있는 자들에게 전해야 한다.


2024 갑진년(甲辰年)이 저물어가고 있다. 금년에도 우리 인간들은 우왕좌왕하면서 힘겹게 살아 왔다. 성탄의 계절이지만 낭만이 없다. 설레임도 없다. 성탄트리를 보며 캐롤송을 들어도 느낌이 별로 없다. 상처 나고 지쳐 있는 심령들 위에 그 무엇인들 위로가 될까? 지금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는 포성이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2년 반 동안 사상자만 100만 명이 된다(미 월스트리는 저널: WSJ). 저 중동 땅은 어떠한가? 2023년 말 기준 전 세계 난민은 11,730만 명이다(UN HCR 보고). 여기저기서 집과 혈육들을 잃고 애통해 하는 사람들의 한이 하늘에 닿고 있다. 우리조국 대한민국도 지금 정치 이념적 대결로 난리이다. 문명발달과 상관없이 세상은 갈수록 사나워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성도들이 끼리끼리 예배당 안에 앉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시대를 불문하고 세류에 편승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통회하는 마음으로 평강의 왕을 앙망하며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간구해야 한다.

   

1, 메시아를 대망했던 이스라엘 백성


메시아(Messiah)란 단어는 구원자를 의미하는(מָשִׁיחַ: 마시아흐)라는 히브리어이다. 고대 헬라어는 (Μασσίας 맛시아스)로서 그리스도(Christos)를 지칭한다. 이 단어는 기름붓다(to anoint)라는 어근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특별한 사역을 위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존재라는 뜻이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 유대민족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상황적으로 저들은 강대국 사이에 끼어서 온갖 핍박과 고난을 겪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주된 이유는 지난 400년 간 하늘의 계시나 묵시(默示)를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인간은 아무리 어려워도 소망이 있으면 버틸 수 있다. 결국 유대 민족은 앞이 보이지 않는 속에서 봉기했다. , 마카비 혁명(Maccabean Revolt)을 통해 외세를 축출하고 잠시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했다. 불행하게도 그 혁명은(B.C.167~B.C.160) 오래가지 못했다. 이로서 저들 민족에게 유일한 희망은 메시아를 대망하는 것뿐이었다. 그것은 파워풀한 정치적 메시아였다. 그 꿈은 언젠가 주님께서 천군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내려와 모든 원수들을 처부시고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것이다(1:6-7).

 

2. 걸작 메시아를 작곡한 헨델


헨델(George Frideric Handel)은 독일 작센의 할레(Halle)에서 1685년에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외과의사 겸 이발사였다. 그는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나 곧장 음악으로 전환했다. 그는 고향을 떠나 이태리를 거쳐 대부분의 생을 영국에서 보냈다. 그는 1759년에 생을 마감한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이다. 그가 평생에 걸쳐 작곡했던 오라토리오는 모두 32곡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중 대부분의 곡은 중풍을 이겨낸 다음부터 작곡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대표작은 오라토리오 메시아이다. 이 곡은 1841822일부터 914일까지 24일 만에 작곡을 마쳤다고 한다. 이 걸작은 친구인 Charles Jenens가 성서를 바탕으로 아래의 내용으로 대본을 썼다.


1부는 예언과 탄생, 2부는 수난과 속죄, 3부는 부활과 영생으로 되어있다. 연주시간 2시간이 넘는 대곡을 이렇게 순식간에 작곡했다는 것은 성령의 감동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헨델은 이를 위해 거의 침식조차 잊은 채 작곡에 몰두했다고 한다. 초연은 1842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이뤄졌다. 런던에서는 그보다 8년 뒤인 1850년이었다. 당시 국왕 조지 2세가 할렐루야 합창이 연주되는 순간에 벌떡 일어났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요즘도 할렐루야 합창이 나올 때는 청중이 기립하는 전통이 남아 있다.


3. 성탄의 때 그리스도인의 생활자세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2:14). 여기 평화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자들에게 주어진다. 그들은 곧 메시아를 구주로 영접하고 경배하는 자들을 일컬음이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은 천박한 가치에 혼()을 팔아서는 아니 된다. 우리의 주된 관심은 산타나 외형적인 크리스마스 문화가 아니다. 인간 중심의 문화에 가려져 말구유에 나신 아기 예수가 안 보인 것은 문제이다. 우리는 차가운 지성 뜨거운 감성으로 평강의 왕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구세주가 없는 인간은 땅에서의 수고가 헛되다. 영원한 복락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를 떠난 유아가 어떻게 평안을 누릴 수 있는가?


또 한 해를 마감하는 세모에 우리는 먼저 모든 무거운 짐과 얽매인 죄를 털어버리고 주님의 영으로 충만해져야 한다. 나아가 시야를 돌려 주변의 불우한 이웃들을 보아야 한다. 이 땅에 소외되고 천대받은 사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배회하는 사람, 그늘진 곳에서 눈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누가 저들에게 참된 위로와 소망을 줄 수 있는가?

 

맺음 말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14:13). 이 말씀은 우리 인간의 실존을 잘 묘사해주고 있다. 지금은 말세라고들 한다.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도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쾌락을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고 있다(딤후3:1-5). 하지만 저들 내면에는 하늘의 평화가 없다. 아무리 부를 축척하며 세도를 부린다 해도 인간의 생노병사(生老病死)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자가 있는가? 그 누구도 인간은 죄와 사망의 올무로부터 해방될 수 없다.


그래서 구약의 선지자들은 한결같이 외쳤다. “패역한 이스라엘아!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오늘 현재 82억 인류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는 것만이 살 길이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재앙이 아니고 평안이다. 우리에게 소망 있는 미래를 주기위해 주님은 이 땅에 오셨다. 성탄의 복된 이 절기에 우리 크리스천들은 입술로만 헨델의 메시아를 찬양치 말아야 한다. 삶으로 복음이 실제가 되지 않는 한 그 노래는 위선이다. 메리 크리스마스(Merry X-Mas)!


<카이로스타임즈>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60건 1 페이지

검색


카이로스타임즈 TEL : 917-733-8682 Email : kairostimes23@gmail.com Name : Wonjung Yu
Copyright(C) 2023 카이로스타임즈.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