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리셋 I 제 3의 시선 - 김종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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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목사(뉴욕예일장로교회)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함께 살아가는 데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언어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어의 소통이 잘 되면 행복하게 살게 되고, 그것이 안 되면 상처와 불행이 가득한 삶을 살게 됩니다.
언어는 말하는 것과 그 말에 응답하는 것으로 구성됩니다. 또 응답에는 긍정적 반응인 '예'와 부정적 반응인 '아니오'가 있습니다. 절대적인 진리와 가치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는 상대적 가치에 대해서는 자기 기호에 따라 찬반이 나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적 가치를 절대적 가치처럼 고집하게 되면 거기에는 피할 수 없는 상처와 갈등이 남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합니다. 예수를 시험하려는 어떤 사람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께 "이 여자를 용서해야 합니까, 아니면 돌로 쳐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용서하라고 하면 모세의 율법을 어겼다고 고소할 참이요, 돌로 치라고 하면 지금까지 외친 사랑은 위선이라고 고발할 생각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습니다.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은 돌을 들고 둘러선 군중 사이에서 두려움과 수치로 떨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돌로 치든지 용서하든지 둘 중 하나의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라는 예상 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둘러선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 하나둘씩 돌을 놓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여자여 너를 치려는 자가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하는 자가 없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 여인은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가서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죄 용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운 인생의 새 출발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눈은 양자택일의 부족함을 비판하고 온전히 회복시키시는 제3의 시선이었습니다. 갈등을 잠잠케 하고, 수치와 두려움을 치료하는 창조적인 제3의 시선이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서로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한쪽만 보는 시선으로 서로를 정죄하면서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가정, 교회, 사회가 예수님의 제3의 시선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치료하고 새 출발을 하게 하는 예수님의 제3의 시선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변할 것입니다.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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