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선물
페이지 정보

본문

영국 더럼 대학교의 세계적인 신약학자 존 M. G. 바클레이(John M. G. Barclay) 교수의 역작인 『바울과 선물』은 오랫동안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바울 신학의 ‘옛 관점’과 ‘새 관점’의 대립을 뛰어넘는 이정표적인 저서다. 저자는 기독교의 핵심 개념이면서도 당연하게 여겨져 깊이 고찰되지 못했던 사도 바울의 ‘은혜(은사/선물)’ 신학을 고대 인류학적·사회학적 맥락에서 새롭게 조명한다. 이를 위해 제2성전기 유대교 문헌과 바울의 핵심 서신인 갈라디아서, 로마서를 방대하고 철저하게 주석해 나감으로써 현대 신약학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학문적 기여는 고대 사회에서 ‘선물’이 가졌던 복합적인 의미를 밝히고, 은혜의 개념을 초충만성·단일성·우선성·비상응성·유효성·비순환성이라는 6가지 가치로 명쾌하게 정리했다는 점이다. 현대인들은 흔히 선물을 '아무런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값없이 주는 것(비순환성)'으로 생각하지만, 고대 세계에서 선물은 강력한 호혜적 관계와 보답의 기대를 수반하는 결속의 도구였다. 저자는 바울 신학의 진정한 독창성이 바로 ‘비상응성(Incongruity)’에 있다고 논증하며, 하나님의 ‘그리스도-선물’이 받는 이의 자격, 민족, 종교적 가치와 전혀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주어졌음을 강조한다.
나아가 바클레이는 이 '비상응적인 은혜'가 단순히 관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인종적·문화적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전혀 새로운 대안적 혁신 공동체를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물은 신자에게 단순한 수동성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자발적인 답례로서 새로운 삶의 방식과 도덕적 실천(새로운 습속/아비투스)을 이끌어낸다. 『바울과 선물』은 왜곡되고 파편화되었던 은혜의 개념을 본래의 역동적인 모습으로 복원함으로써, 오늘날 기독교 신학과 교회가 회복해야 할 변혁적 능력과 윤리적 책임을 일깨워주는 신학계의 위대한 고전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