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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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보산 꼭대기에 선 모세의 눈앞에는 평생을 걸어온 길의 끝이 펼쳐져 있었다. 햇빛 아래 반짝이는 가나안의 들판, 멀리 이어지는 산맥, 젖과 꿀이 흐른다는 약속의 땅 그러나 그는 그곳을 볼 수는 있었지만 들어갈 수는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참으로 아픈 일이었을 것이다.
애굽의 벽돌 굽는 자리에서 울부짖던 백성들을 이끌어 냈고, 홍해를 건넜고, 광야의 수많은 불평과 반역을 견뎌냈다. 목이 마르다고 원망하는 백성들 사이에서 홀로 하나님 앞에 엎드렸고, 금송아지 앞에서는 민족 전체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놓겠다고 기도했던 사람이 모세였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이 정도 헌신했으면 들어가게 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아마 우리라면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억울함도 있었을 것이다. 광야에서의 긴 세월이 파도처럼 밀려오며 마음 깊은 곳에 설명할 수 없는 허전함이 차올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경은 모세가 하나님께 대들거나 원망했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조용히 산 위에 서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마치 자기의 꿈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크다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배웠으리라.
그렇다!
어쩌면 모세의 가장 위대한 모습은 홍해를 가른 순간이 아니라, “들어가지 못함”을 받아들인 순간인지도 모른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느보산의 시간이 찾아온다.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끝내 손에 넣지 못한 것들, 눈앞까지 왔는데 마지막 문턱에서 멈춰 서야 하는 일들, 내가 뿌린 열매를 다른 사람이 거두는 장면을 바라보아야 하는 순간들, 젊은 날에는 믿음이란 언제나 “성취”라고 생각했다. 기도하면 이루어지고, 순종하면 반드시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하나님은 때때로 “도착”보다 “순종”을 더 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모세는 가나안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실패한 인생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동행했던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는 땅을 얻지 못했으나 하나님 자신을 얻은 사람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신앙도 비슷하다. 우리는 늘 결과를 붙들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과정을 통해 우리를 빚으신다. 우리는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가”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하나님은 “네가 끝까지 나를 신뢰했는가”를 물으신다.
어쩌면 믿음의 성숙이란, 내 손에 원하는 것이 들어오는 순간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내려놓아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가는 것인지 모른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는 발을 디디지 못했지만, 하나님 나라의 더 깊은 약속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삶은 오늘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너는 결과가 없어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느냐.”
느보산 위에 선 노인의 뒷모습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그는 비록 땅의 가나안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들어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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