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회복, 은혜의 기억”의 추수감사절기 I 노재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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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화 목사(전 성결대 학장, 사회학/목회학 박사
11월이 되면 교회마다 추수감사절 장식으로 풍성한 과일과 곡식이 놓이고, 가정에서는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따뜻한 식탁을 함께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감사의 날을 지키는 것’보다 ‘감사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일 것이다. 더욱이 오늘날의 현실에서는 추수감사절은 풍성한 식탁과 세일의 날로 여겨지지만, 정작 감사의 근원되신 하나님은 잊히는 경우가 많음도 부인 못할 것이다. 여기서 핵심 질문은 “우리는 무엇을, 누구에게, 왜 감사하는가?” 감사는 단순한 감정인가, 아니면 신앙의 고백인가?”를 묻고 싶다.
1. 추수감사절의 유래
“하나님께 드린 첫 감사” 추수감사절의 기원은 1621년 미국 플리머스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난 청교도들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첫 수확을 거둔 뒤 하나님께 드린 감사예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그 해에 풍토적 기후로 많은 동료를 잃었고, 식량도 부족했지만 살아남은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감사를 드렸을 것이다.
그들의 감사는 “풍요의 감사”가 아니라, 오히려 “생존의 감사”, 더 나아가 “믿음의 감사”였을 것이다. 이처럼 추수감사절은 단순히 수확을 축하하는 절기만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한 신앙고백의 날이었다. 그들의 감사는 인디언 이웃과 식탁을 나누는 사랑의 나눔으로 이어졌고, 그 후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어 링컨 대통령에 의해 국가적 감사일로 선포되었다.
2. 성경 속의 감사(성경적 근거)
감사는 범사에 드려야 한다.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6–18)고,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명령하고 있다. ‘범사’란 좋은 일뿐 아니라 어려운 일까지 포함한다. 신앙인의 감사는 환경이 아니라 관계(relationship)에 근거한다고 본다. 하나님이 여전히 나의 주이심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감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는 신앙의 시작이다. 감사는 환경이 좋을 때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전히 나의 주님이심을 믿는 믿음의 고백이어야 한다. 구약에서는 감사제물(레 7:11–15)을 통해 하나님께 드렸고, 신약에서는 성도들이 함께 떡을 떼며 하나님을 찬양했다(행2:46–47).
감사는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의 예배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서로 나누는 사랑의 표현이다. 시편 기자는 말하고 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시103:2). 감사는 곧 “은혜를 잊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이처럼 성경은 감사가 신앙의 중심임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풍요 속에 감사를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영적 빈곤이다. 로마서 1장21절에 “하나님을 알았으되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여기서 감사하지 않는 마음이 곧 하나님을 잊는 첫걸음이다. 신명기 8장 10절은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라...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을까 하노라....네 마음이 교만하여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인도하셨는지, 내 가정을 지키셨는지, 내 교회를 세우셨는지를 되새길 때 감사가 살아날 것이다.
감사의 회복은 은혜의 기억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감사는 사건이 아니라 ‘기억’이다. 감사는 풍요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을 잊지 않기 위한 신앙의 방패이다. 그리고 감사가 사라진 자리에는 불평, 비교, 욕심만이 자라난다. 즉, 감사는 “지금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훈련”(빌4:11–13)의 결과가 되어야 한다.
또한 감사는 공동체적 고백이어야 하며, 감사는 반드시 나눔으로 이어져야 한다. 구약의 감사제(todah)는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회중의 찬양으로 드려졌다(레7:11–15). 또한 신약의 교회도 공동체적으로 감사하며 떡을 떼었다(행2:46–47). 즉, 감사는 ‘나 혼자’의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합창이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이웃과 나누는 것이 진정한 감사의 완성이다. 히브리서에서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눔을 잊지 말라, 이런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13:16). 예로 미국 청교도들이 원주민과 함께 식탁을 나눈 이유도 감사의 나눔이었다.
또한 교회공동체의 감사 실천으로는 교회 차원의 구제헌금, 감사나눔 상자, 감사편지 쓰기, 선교 후원 등이 실천적 예배가 될 수 있다. 예배 후, 성도들이 돌아가며 “감사 간증”을 나누는 것은 공동체를 세우는 은혜의 시간이 되듯이 말이다.
3. 한국 교회와 감사의 신앙
한국 교회가 감사의 신앙으로 추수감사절을 지키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도입되었을 때부터이다. 그 당시 농경사회였던 한국은 실제 수확의 감사뿐 아니라, 가난과 고난 중에서도 “은혜를 먼저 고백하는 신앙”을 배움게 되었으며, 그 예로서는 평양대부흥(1907)은 물질적 풍요가 아닌 회개와 감사의 영성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었다.
감사는 믿음의 고백이요, 감사는 신앙의 열매이며 결과가 아니라 동시에 출발점이다. “감사하므로 기뻐하고, 감사하므로 소망하며, 감사하므로 섬긴다.” 감사는 상황이 아니라 관계에서 시작된다. 히브리서 13장 16절은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눔을 잊지 말라 이런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고 말씀하신다.
더욱이 가정에서의 감사 문화 회복도 중요한 덕목이다. 추수감사절 식탁에서 “가족 감사 릴레이” 각자가 지난 한 해 동안 하나님께 감사한 한 가지를 나누어 보자.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왜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산교육의 시간으로 삼을 수도 있다. 또한 함께 찬송가 <436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나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부르며 예배로 마무리해 본다. 이처럼 우리의 환경이 어떠하든, 하나님이 여전히 선하시다는 사실을 믿을 때 그 믿음이 감사로 피어나게 된다.
다가오는 추수감사절에, 우리의 감사가 단지 한 해의 결산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의 고백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감사는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하고, 교회를 세우며, 세상 속에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능력이 될 것이다.
“감사는 은혜의 기억이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1). 풍요로운 시대에 특히 감사의 영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감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동시에,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영적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기도하고 싶다. “은혜의 하나님, 한 해 동안 우리의 삶을 지키시고 공급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감사가 입술의 고백에 머물지 않고 나눔과 섬김으로 열매 맺게 하소서. 풍요 속에서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어려움 속에서도 은혜를 잊지 않게 하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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