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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의존사색(33) 선교의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 정관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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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카이로스타임즈
댓글 0건 작성일 25-12-2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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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호 목사(뉴욕만나교회 원로)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8:18-20).


저는 뉴욕만나교회에서 1996년 2월부터 2024년 5월까지 28년 3개월을 담임목사로서 사역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사역을 마감하고 은퇴를 하였습니다. 부임하던 첫해인 1996년에 저는 교회의 표어로 “삶을 함께 나누며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1.진리의 공동체 2.사랑의 공동체 3.선교의 공동체”를 내세우고 목회사역을 지속해 나갔습니다. 진리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주일예배 및 수요예배 등에 성경 각 권을 강해설교 형태로 설교했으며, 개혁주의와 장로교회의 핵심교리를 가장 잘 표명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가운데 소요리문답 등을 수년에 걸쳐서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성도들 사이의 참된 연합과 실천을 위해 구역예배에 성경공부와 성도교제하는 시간을 적절하게 잘 배정하여 진행하였습니다. 선교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때에 따라서 마트나 거리에 나가 노방전도를 하였으며, 또 해외선교를 위해 니카라과 등에 단기선교팀을 파송하고 후원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선교단체와 협력관계를 가지며 후원하였습니다.


오늘은 복음전도와 선교를 주제로 교회의 사명을 다루고자 합니다. 사실 복음전도와 선교라는 용어는 때로는 동의어로 혼용하여 사용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선교라는 용어는 지금도 그렇게 사용하기도 하지만 과거에는 주롱 해외선교라는 용어와 같은 뜻으로 썼습니다. 그러나 선교는 해외선교보다 훨씬 더 폭 넓은 개념입니다. 또한 선교라는 말은 전도 또는 복음전도보다도 더 폭넓은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선교라는 용어는 해외선교나 복음전도 이상의 넓은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아주 오래 전에 신학교에 다니면서 나름대로 정립했던 선교에 대한 개념과 정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선교는 복음전도와 사회참여(봉사)를 둘 다 포용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우선 복음전도의 우선성입니다. 복음전도는 사회참여(봉사)보다 더 중요하고 더 시급합니다. 그렇다고 사회참여나 사회봉사를 무시하거나 그 중요성을 폄훼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사회정의나 사회참여는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세상에 살아가면서 실천에 옮겨가야 할 사명입니다. 그러나 사회참여가 복음전도보다 우선할 수는 없습니다. 복음전도의 시급성은 영혼구원이라는 우리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지상최대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최근에 미동부국제기아대책기구에 관심을 갖고 참여의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그 기관은 ‘떡(빵)과 복음의 두 날개’라는 표어를 내세우며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과 후원, 그리고 그들에 대한 복음전도에 힘쓰고 있는 아주 좋은 기독교 기관입니다. 아 두 가지가 동시에 시행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을 때는 우선 영혼구원을 위한 복음전도부터 힘써야 합니다. 그 후에 사회봉사 차원의 떡(빵)을 제공해야 그 순서가 옳습니다. 물론 떡(빵)을 제공하는 일을 단순히 영혼을 구원하는 수단으로만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영혼구원 이전에 가난한 이웃에게 순수하게 육체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일이 필요한 경우도 얼마든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회참여나 사회봉사를 복음전도와 동일한 수준으로 놓는다든지, 더 나아가 그 일을 사회구원이라는 용어로 대체하여 영혼구원 하는 일과 동일시하는 것은 참으로 성경과 선교에 대한 커다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사회구원이란 용어를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복음전도 하는 일에 우선적으로 힘써야 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상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큰 일인 이 복음을 전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 대상이나 장소가 그 누구이든지, 그 어느 곳이든 상관없이 가난한 이웃에게 복음전도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와 교회에 속해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 각자가 어떻게 복음을 제대로 잘 전도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을 만나 그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건을 통해 몇 가지 구체적인 전도 방법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전도하기 위해서 전도 대상자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 불릴 정도로 소외된 자들, 잃어버린 자들, 병자들, 외로운 자들, 문제와 고통거리가 있는 자들에게 친구가 되어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과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 교인이나 그리스도인들이기에 그냥 무심코 지내기 쉽습니다. 또 그렇게 지내다 보면 그 일이 매우 편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주변 환경에 익숙해지다 보면 전도 대상자를 찾지 못하고 전도를 제대로 한 번도 해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제 주변에 있는 불신자들 또는 교회생활이나 신앙생활 이탈자를 찾아 나서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이 아닌 자들이 들어 있는 또는 불신자들이 섞여 있는 그런 모임이나 동아리를 찾아 나서십시오. 그들과 대화하고, 그들과 친구가 되어 주고, 그들을 도우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십시오. 필요하면 영어회화 모임에도 나가고, 컴퓨터를 배우러 나가고, 그림 그리기, 음악 감상하는 모임에도 나가십시오. 불신자들에게 접근하여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나타내 보이면서 그들에게 질문도 하고, 질문도 받고 서로 대화하면서 복음을 전하십시오.


둘째, 일상적인 대화만 나누지 말고 복음을 말로 표현하고 전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생활로만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만을 나타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활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직접 복음을 말로써 드러내야 합니다. 전도 대상자인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지난 과거의 죄악 된 삶을 돌이켜 회개로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 당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주와 구주가 되심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된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로만 인생의 복된 삶, 풍성한 삶, 영원한 삶을 살 수 있음을 강조하십시오. 그리고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결단을 촉구하십시오. 그리고 교회로 인도하십시오.


우리는 노방전도도 힘써야 하지만, 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들과 좋은 친구관계를 맺어가면서 관계 전도에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을 통한 복된 삶, 풍성한 삶, 위로와 기쁨이 넘치는 삶, 사랑과 거룩이 넘치는 삶이 있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전도는 일종의 영적 전쟁입니다. 마귀와 세상나라에 속한 자를 복음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 놓는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와의 싸움」입니다. 그리 쉽지 않습니다. 전쟁이고 전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주변에 있는 여러 사람들-불신자들과 신앙생활 이탈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교회로 인도하기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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