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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장의 캘린더와 하나님의 은혜 I 노재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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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카이로스타임즈
댓글 0건 작성일 25-12-0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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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재화 목사(전 성결대 학장, 사회학/목회학 박사

 

벌써 구세군의 구원의 자선남비 소리가 땡그랑 땡그랑 들리며, 가정마다, 상점과 빌딩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마지막으로 남은 달력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잔잔한 울림이 일어난다. 분명히 12개월이라는 동일한 시간의 흐름이었는데도, 마지막 한 장이 남아 있을 때 우리는 늘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게 되고, 나를 여기까지 이끄신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게 되며, 남은 인생의 시간을 다시 새롭게 세우게 된다. 신앙인의 눈에 마지막 캘린더는 단순한 날짜의 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이끄신 발자국들의 기록이며, 동시에 앞으로 걸어가야 할 은혜의 길을 보여주는 예언적 표지판과도 같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라고 명령한다. 바로 이 말씀 앞에 이 한 장의 마지막 캘린더를 펼쳐본다. 올 한 해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으며, 무엇을 깨달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떻게 은혜를 베푸셨는가? 올 해를 마감하면서 묵상기도를 드리고 영적인 것과 현실적인 산물들을 회상해본다.


첫째로, 한 해의 끝에서 비로소 보이는 하나님의 은혜는 처음부터 알지 못했다. 인생의 어느 한 가운데 있을 때는 지금 겪는 일이 은혜인지, 시련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해의 마지막 순간,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깨닫게 된다. “아,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걷는 동안에는 무겁기만 했던 짐들이 뒤돌아보니 내 믿음을 키우기 위한 훈련이었음을, 잠잠히 흘렸던 눈물이 사실은 내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주님의 손길이었음을, 생각지 못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나의 발걸음을 정교하게 인도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비로소 인정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고백한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12:9). 이 구절은 해마다 마지막 달력을 넘기며 되뇌게 되는 가장 큰 고백이다. 건강이 온전했든, 병상에 눕는 순간이 있었든, 일이 잘 풀렸든, 막히는 순간이 많았든, 결국 올해도 하나님의 은혜는 충분했다. 그 은혜가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둘째로, 회상(回想)은 영혼의 호흡이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깨닫는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기억하라(remember)”고 반복해서 명령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후, 만나를 먹으며 광야를 지나갈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셨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 너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기억하라”(신8:2). 회상은 시간의 회복이며, 영혼의 정화다. 한 해 동안 내가 겪었던 사건들을 주님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는 것이 바로 신앙인의 회상이다. 실수했던 날들을 통해 나는 겸손을 배웠다. 높아졌던 마음을 꺾으신 날들을 통해 나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배웠다. 누군가에게 상처받았던 날을 통해 나는 용서의 깊이를 배웠다. 예기치 않은 도움을 받았던 순간을 통해 나는 ‘은혜의 생태계’를 배웠다. 가장 어두웠던 밤을 지나 새벽을 맞으며 나는 하나님이 빛이심을 배웠다. 이렇게 보면 회상은 감사의 씨앗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되돌아보면 모든 순간에 의미가 있었고, 모든 날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다.

 

셋째로, 감사는 ‘감정’이 아니라 ‘신앙의 결단’이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고 말한다. 감사할 만한 일만 있을 때 감사하라는 뜻이 아니다. 감사는 영적인 면과 현실적인 면에서 생각해 본다. 감사는 선택이며, 결단이고, 신앙의 고백이다. 한 해 동안 감사할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①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이다. 하나님은 “네 호흡이 내 손에 있다”(욥12:10)고 하셨다. 숨 쉬는 이 시간조차 은혜다. ②보호하심에 대한 감사이다. 수많은 사고와 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남았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지키셨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키시는 이라… 나가는 것과 들어오는 것을 지키시리로다”(시121:5–8). ③공급하심에 대한 감사이다. 올 한 해 부족했던 것 같지만,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필요한 만큼 채우셨다. 때로는 사람을 통해, 때로는 뜻밖의 기회를 통해, 때로는 기도 제목이 변경되는 과정을 통해 채우셨다. ④사람에 대한 감사이다. 나를 격려해준 사람, 나의 손을 잡아준 사람, 함께 울어준 사람, 그리고 나를 힘들게 했지만 결국 나를 성숙하게 만든 사람들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래서 신앙인의 감사는 상황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한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변함없으시며,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렇기에 감사는 우리의 조건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가 된다.

 

넷째로, 마지막 캘린더가 주는 영적 메시지로서는 ①하나님 앞에서 시간은 ‘선물’이다. 마지막 남은 날짜들을 바라보면 문득 알게 된다.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선물이었다. ②인생은 유한하지만 은혜는 무한하다. 마지막 한 장의 달력은 말한다. “너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나의 은혜는 제한이 없다.” 시편 기자의 고백이 다시 떠오른다. “나의 시대가 주의 손에 있나이다”(시31:15). ③지나온 길을 기억하듯, 앞으로의 길도 은혜로 걸어가라.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셨다면, 내년에도 인도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을 홍해까지 데려온 하나님은 요단강도 건너게 하셨다. 신앙인은 과거의 은혜를 미래의 확신으로 바꿀 줄 아는 사람이다.


마지막 달력 앞에서 드리는 믿음의 고백으로 보는 마지막 캘린더는 우리에게 돼 묻는다. “올 한 해 너는 무엇을 붙들고 살았는가?” “하나님은 너를 어떻게 인도하셨는가?” 그 머나먼 스코틀랜드에서부터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Old long since)이 귓가에 들려온다. “새해에는 어떤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을 것인가?” 신앙인은 마지막 달력을 떼어내며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삼상7:12). “주님, 새해에도 제 삶을 주님께 맡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난 시간을 은혜로 채워주셨고, 앞으로의 시간도 같은 은혜로 채우실 것이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다(히13:8).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로 올해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두려움 없이 새해를 맞이할 것을 다짐한다.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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