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河 에세이(21) - 영혼의 창(窓)인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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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록 목사(선교사, 수필가)
얼굴에는 사람의 사유(思惟)와 성품이 묻어 있다.
얼굴이란 내면의 “얼”이 형상을 뜻하는 “꼴”로 드러나는 곳이다.
링컨은 “인간이 40세에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의 만남은 첫 순간에 갈린다. 초면의 인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학자의 이론에 의하면 상대방에게 인각된 자기 얼굴을 바꾸기 위해서는 처음보다 200배 이상의 강렬한 인상을 주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얼굴이란 무엇인가? 이는 단순한 외형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세계의 깊이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얼의 꼴”이라 했다. 얼굴은 마음의 결을 품으며, 눈빛은 영혼의 방향을 비추고, 표정은 내면의 진실을 드러낸다. 우리는 매일 자기 얼굴을 새기며 산다. 그것은 생각, 욕망, 신앙에 의해 자기도 모르게 조각된다. 세상에 얼굴은 많지만,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 앞과 이웃들 사이에서 어떤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가?
1. 얼굴의 어원과 특징
얼굴의 어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뜻은 대부분 비슷하다. 얼굴이란 “얼의 꼴”이란 말에서 파생되었다. 얼은 영혼, 정신, 마음, 내면이다. 꼴은 골상, 틀, 상, 형, 모양, 그릇, 형상이다. 결국 얼굴이란 내면의 “얼”이 모습이나 형상을 뜻하는 “꼴”로 드러나는 것이다. 요즘엔 꼴이란 말이 안 좋게 사용되지만 예전엔 그냥 모습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꼴값한다”도 인물값을 한다는 의미이다. 얼굴은 안면(顔面), “낯” 이외에 “쪽”이라는 은어(隱語)도 있다. 주로 “팔리다”와 어울려 “쪽팔리다”는 형식으로 쓰이는데 이 단어는 “낯이 깎이다, 얼굴이 깎이다”라는 뜻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신체 전문가는 말하기를 “사람의 얼굴은 80개의 근육으로 발달되어 있으며 이는 시시때때로 바뀌는 감정변화에 따라 7천 가지 이상의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고 한다. 아무튼 얼굴은 그 사람을 대변한다. 이는 신체의 감각 운동을 주도하는 입, 코, 눈 등을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잣대가 된다.
2. 하늘아래 수많은 얼굴들
세상에는 수많은 얼굴들이 있다. 밝은 얼굴과 그늘진 얼굴, 선한 얼굴과 악한 얼굴, 기쁜 얼굴과 슬픈 얼굴, 편안한 얼굴과 긴장된 얼굴, 행복한 얼굴과 찌푸린 얼굴, 온유한 얼굴과 분노의 얼굴, 청빈한 얼굴과 탐욕의 얼굴, 소망 찬 얼굴과 낙심 된 얼굴, 생기발랄한 얼굴과 무표정한 얼굴, 자애로운 얼굴과 냉기어린 얼굴, 사랑스러운 얼굴과 미움이 가득 찬 얼굴, 여유로운 얼굴과 피골이 상접한 얼굴, 부드러운 얼굴과 인상 쓴 얼굴, 혼인집 다녀온 얼굴과 초상집 다녀온 얼굴, 세상 짐을 나 홀로 지고 가는 얼굴과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얼굴 등 여러 양태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소에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링컨은 “사람은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깊이 생각하고 음미해 볼 말이다.
3. 얼굴과 마음의 상관관계
얼굴은 각 사람의 인격을 대변한다. 사람을 알려거든 그 얼굴을 살피면 된다. 주름 결은 성품을 나타낸다. 근육의 방향은 지금 기분을 표현한다. 얼굴색은 건강상태를 암시한다. 눈빛은 희망을 가늠한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얼굴과 마음은 하나로 통일되어야 한다. 사기꾼은 얼굴과 마음이 다르다. 얼굴을 포장하면 양심이 마비되어 못할 일이 없다. 사람이 악의를 품으면 벌써 얼굴에 그 생각이 새겨진다. 우리의 얼굴 근육은 마음의 포로이다. 뇌가 다양한 세포를 작동시켜 몸과 얼굴을 바꾸지만 근본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이다. 건강하고 멋진 얼굴을 기대한다면 먼저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과거에 대한 미련과 미래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현재를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오늘 이 순간 행복을 만끽하지 못하면 내일의 행복도 없다. 진실한 마음을 가지면 얼굴이 그만큼 선해지는 것이요, 거짓된 마음을 품으면 얼굴이 그만큼 흉한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4. 그리스도를 닮아야 할 얼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들이다. 이는 우리가 주님을 향해 성화되어 갈 때 고결한 모습으로 변모된다는 것이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늘의 섭리를 거역하고 땅에 집착할 때 동물처럼 변해가기 쉽다. 우리는 한계적이어서 늘 보는 대로 닮는다. 부부가 닮는 것은 한평생 마르고 닳도록 마주보기 때문이다. 청교도 작가인 나다니엘 호손 (Nathaniel Hawthorne)이 1850년에 “큰 바위 얼굴(Great Stone Face)”이란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그 주제는 닮음에 관한 것이다. 주인공인 어니스트는 어린 시절부터 얼굴 모양의 바위산을 보고 자랐다. 결국 그가 큰 바위 얼굴과 같이 인자하고 흔들림 없는 성자로 변모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매일 성경을 읽으며 주님을 생각한다. 헌데 우리는 그 주님을 닮아가고 있는가? 우리의 눈빛과 얼굴에서 그리스도의 광채가 나고 있는가?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맺음 말
얼굴은 하루아침에 빚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날마다 의식과 무의식의 생각을 얼굴에 새기며 살아간다. 우리의 얼굴은 결국 우리 삶의 고백이다. 우리가 무엇을 사랑했고, 무엇을 붙들며 살아왔는지를 말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얼굴들이 있다. 하지만 진실하고 자애로운 얼굴은 드물다. 우리가 아무리 분칠을 하고 외형은 꾸민다 해도 내면은 숨길 수 없다. 그러므로 얼굴을 바꾸려면 마음을 먼저 밝혀야 한다. 마음의 결이 쌓여 표정이 되고, 영혼의 방향이 모여 눈빛이 된다. 정직은 주름을 편안하게 하고, 감사는 눈동자에 빛을 더한다. 사랑은 입가를 부드럽게 만들고, 믿음은 전체 표정을 은혜의 색으로 물들인다. 오늘 거울 앞의 자화상(自畵像) 속에 나타난 우리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만일 자기 얼굴에 대한 만족함이 없다면 뭔가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6:25-26).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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