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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이 중헌디?” I 정재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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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카이로스타임즈
댓글 0건 작성일 26-01-0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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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호 목사(C&MA감독)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4:23).

Jesus went throughout Galilee, teaching in their synagogues, proclaiming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and healing every disease and sickness among the people(Matthew4:23).


“뭣이 중헌디?” 핵심이 뭐냐는 물음일 겁니다. 핵심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말일 겁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셨습니다. 소위 주님의 3대 사역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인 우리도, 특히 사역자들이라면, 이 땅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야 할 핵심은 바로 이 3대 사역일 겁니다. 그러나 우리의 심각한 고민은, 바로 이 3대 핵심 사역이 우리의 삶 가운데 그리고 우리의 사역 현장에서 심각할 정도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가르치시고

마가복음 1장 21-22절에는 주님의 가르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이었고 가버나움 지역에 위치한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치시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다 놀랐습니다. 그 분의 가르치심에는 권위가 있었고, 가르치시는 말씀에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주님의 가르치심에는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21세기를 사는 내가 내 사역의 현장에서 가르치려 할 때, 정작 나에게 돌아오는 무언 속의 메시지는 어느 영화의 명대사는 아닌가 반문해 봅니다. “너나 잘하세요!” 나의 가르침에도 과연 권위가 있는가? 나의 가르침에도 과연 생명이 들어있는가? 나의 가르침에도 과연 사람을 바꾸는 능력이 들어 있는가? 아니, 나의 가르침을 통하여 나 자신이 먼저 바뀌어가고 있는가? 세상은 나를 향하여 ‘아니요’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2)고치시고

마가복음 1장 23-27절에는 주님의 고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치신 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귀신을 꾸짖자 그 더러운 귀신은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는 큰 소리를 지르며 내쫓겨 나옵니다. 치유에 관한 주님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저물어 해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앎으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막1:32-34). 과연 주님은 치유의 주님이십니다! 할렐루야!


21세기를 사는 내가 내 사역의 현장에서 일어난 치유의 사건들을 되돌아봅니다. 선교현장에서 치유의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목회의 자리에서도 치유의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나의 치유 사역은 너무도 미미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역자들이 나처럼 치유의 능력이 미약했는가? 절대 그렇지는 않습니다. 스미스 위글스워스(Smith Wigglesworth) 목사님과 같은 놀라운 신유의 능력으로 평생 사역하신 목사님도 계십니다. 그러나 스미스 위글스워스 목사님과 같은 분이 계셨다는 사실이, 나의 고민은 더욱 깊어집니다.

 

3)전파하셨다

주님은 온 갈릴리로 두루 다니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막1:38). 주님은 전도하러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에 목숨을 건 사람의 이야기가 사도행전 1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돌로 심하게 맞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시외로 끌어다가 버려버렸습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그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그 성안으로 찾아 들어갔습니다. 또 다시 전도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가히 전도에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21세기를 사는 내가 내 사역의 현장에서 얼마나 많이 복음을 나누었는가 되돌아봅니다. 가장 많이 복음을 나눈 것은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평신도 시절이었습니다. 목회자가 되고 나사는 목회 초창기에 사영리를 가지고 노방전도를 오래했습니다. 선교지의 대학 청년들을 향한 캠퍼스 전도도 꽤 오래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감독으로 섬기고 있는 지난 5년 동안 불신자에게 다가가 일대일로 복음을 전한 기억이 없습니다. 5년이면 반 십년입니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감독이 뭐하는 건디?” “뭣이 중헌디?”


4)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2026년 한 해도 그냥 그렇게 뭔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면 되는 것일까요?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그냥 열심히 내지르는 것과 주님의 3대 사역을 이루는 것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올해에는 우리 자신들에게 좀 더 솔직해져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더 이상 허공치기에 바쁜 사역은 그만 마침표를 찍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2026년 새해를 우리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5)하나님이 나로 인하여 기뻐하시는가?

해결방안은 간단합니다. 다음 질문이 핵심입니다. “하나님이 나로 인하여 기뻐하시는가?” 세례(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는 예수님을 향해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 나의 현재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반전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그 무엇이 나 안에, 내 삶 가운데, 내 사역 가운데 있다면, 2026년 새해를 시작하는 지금 결단가운데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이는 내 기뻐하는 자라” 이 확신으로 내 안은 가득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기뻐하시면, 우리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까요? 세례(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는 예수님에게 일어난 사건이 새해를 맞는 우리에게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께서 세례(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라)”(마3:16). 성령의 충만하심과 기름 부으심! 이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비밀이 모든 것의 열쇠입니다!


“뭣이 중헌디?” “가르치고 고치고 전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뭣이 중헌디?” “하나님이 과연 나로 인하여 기뻐하시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뭣이 중헌디?” “성령의 충만하심과 기름 부으심!” 이것이 중요합니다.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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