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만 감아도-나성균 목사
페이지 정보

본문

나성균 목사(샬롯한인장로교회 원로)
창세기에 나오는 네 명의 족장 중에서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를 제일 닮았을까?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가운데, 아마도 야곱이라고 하여야 맞을 것 같다. 급하고 서두르고 욕심많고, 양보할 줄 모르고 축복을 누리기 위하여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하나님의 섭리까지도 거짓말로 사용하는 엄청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점에서 닮았다고 한다면, 억울할 수도 있겠으나 그 야곱을 선택하시고 연단하시어 마침내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로 삼으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자부심을 느끼어도 되지 않겠는가?
창세기 28:10-15에 보면, 야곱이 얼마나 다급하였는가를 알 수가 있다. 아버지 이삭의 축복마저 가로채고 형을 속인 대가로 형의 복수 살인 위협을 온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던 야곱은 줄행랑을 치다시피 외갓집 하란으로 도망하는 중에, 한 곳 곧 베델에 이르러 피곤한 몸을 이끌고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성인이 하루를 걸으면 약 40 km 를 전진할 수 있었을 텐데, 이 때 야곱은 약 70km를 달려온 것으로 볼 수가 있다. 피곤하고 불편하고 불안하며,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강도의 위험과 사나운 들짐승의 공격을 예상할 수밖에 없는 처량한 신세에 처한 야곱을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와 너무도 닮았다. 그러나 야곱이 막 눈을 감고 잠들어 잠시 지나니, 꿈에 사닥다리가 땅에서 하늘까지 닿아있고, 하늘 위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고,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줄 것이며, 모든 민족이 네 자손 때문에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눈감기 전에는 세상의 가장 외로운 나그네와 같고, 버림받고 위험천만한 운명의 인생이었으나, 눈만 감으니 갑자기 자기와 후손들이 이 땅의 주인이요, 복의 근원이 된 것이다.
세상에 이런 반전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혹시 우리는 그렇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이 땅의 주인으로 삼으신 것을 이렇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믿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 너무나 문제가 많고, 그 문제 속에서 낙심하며 한탄하며 살기 쉽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우리 생활에 적용하여 보니, 한탄할 일이 아니고 감사하며, 낙심할 일이 아니고, 이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주인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주장하시는 우리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문제를 나와 함께 상의하시고 이끌어 나가기 원하신다는 확신이 있을진대 왜 누구를 원망할 것이며, 낙심할 것이며, 두려워하여야 할 것인가?
그날 이후에 야곱의 발걸음이 확신에 차고 자신만만한 삶으로 살아갈 수가 있었다면,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말이다. 우리에게 주님과 동역자라는 확신만 있다면, 아니 온 우주의 일들도, 우리 삶의 지극히 세밀한 일들도 완벽하게 하나님의 섭리로 이끌리어 나간다는 확신이 있다면, 오히려 우리는 그렇게 우리를 높여주시고 동역자 삼아주심에 감사하며, 최선과 확신으로 매일의 삶을 뜨거운 감사로 영위하여 나가야 하겠다. 우리의 앞길이 감사로 확신으로 선하신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의지하며 동역하며 기쁘게만 살아야 하리라!!
특히 15절 말씀은 지금 야곱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허락하시는 놀라운 말씀이다. 너와 동행하고 어디를 가든지 너를 지켜주고,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며,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지금 우리에게 적용하여 볼 때, 하나님의 동행하심, 어디서나 지켜주심, 이 땅의 주인이 되도록 다시 돌아오게 하심, 허락하신 사명을 다 이룰 때까지 떠나지 않으심을 온전히 복으로 선포하시는 말씀이다. 우리 인생치고 어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사명으로 주신 바를 이루고자 할 때에 지치지 않는 사람이 또한 누가 있겠는가?
심지어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경제적으로 앞길이 불투명하며, 미래의 삶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은 약속하시기를 같이 하여주시고, 지켜주시고, 떠나지 않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온전히 의지할 때에 그분의 약속을 온몸으로 의지하며 확신으로 전진할 때에 두려움이 불필요하고, 미적거림이 필요치 않으며, 오히려 내가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적진을 뛰어넘는 연습과 실천과 체험만이 필요한 것이다. 시편 18편 29절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고 하시는 말씀이 날마다의 삶에서 우리에게 경험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야곱의 삶은 우리의 거울이다. 자신을 연단하시려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훈련이 때로는 이해도 가지 않고, 상상하기조차 두려울 수 있었으나 그는 이 모든 과정을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 매달리어 해결하는 기회로 삼아서 욕심을 다 내려놓고, 내 고집을 꺾어 하나님의 자비와 섭리에 과감하게 맡겨버리니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 베델을 떠날 때 약속하셨던 바를 참으로 구체적으로 다 이룸 받았던 것이다. 두려웠던 형님 에서도 기쁘게 화해로 만날 수 있었고, 잃었던 요셉도 찾았고, 베냐민도 잃어버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무서운 기근의 시절에도 영광스럽고 풍성한 삶, 위대한 대 지도자의 부친으로서의 삶을 누리며 심지어 대 제국의 최고지도자 바로에게까지 축복을 베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삶을 누리었다.
해가 바뀐지 꽤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삶, 미국과 세계에 흩어진 이민자들로서의 우리의 삶은 결코 녹녹치 않다. 언제 어느 때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불안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전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자비하신 손길에 달려있고, 그 하나님 아버지의 찬란하고 확실한 약속이 우리와 함께 하는 한,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다. 오히려 그렇게 힘들게 느껴질수록, 하나님의 불러주심과 아버지 되심을 구세주 예수님까지 보내셔서 우리를 구속하여 자녀삼아 주시고 일군 삼아주시며, 동역으로 세계를 구원하시고 세계를 사랑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됨을 믿고 철저히 그분을 따를 때 우리의 두려움은 평안으로 슬픔은 기쁨으로,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야곱의 최후의 삶과 장례를 통해서까지도 영광을 맛보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자비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의 확실성을 깨닫고 다시 보무도 당당하게 매일의 삶을 힘차게 내딛게 되는 것이다. 영광 있으라, 선택자 곧 하나님의 동역자들의 삶이여!
<카이로스타임즈>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