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河에세이(24)-인간사회를 읽는 4가지 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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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록(선교사, 시인, 칼럼니스트)
너 죽고 나 살자
너 살고 나 살자
너 죽고 나 죽자
너 살고 나 죽자
인간 사회는 이념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삶의 문법이 있다. 타자를 보는 시선이 곧 현상을 결정한다. 관계는 구조가 아니라 선택이다. 사회는 그 선택의 얼굴이다. 인간의 길은 몇 갈래로 나뉜다.
경쟁. 공존. 파괴. 희생. 이 네 방향은 정치와 경제를 지나 문명과 신앙의 깊은 층을 스친다. 결국 역사는 사건의 관계방식의 변천사이다. 그 변화는 인간존재의 높낮이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첫째, 너 죽고 나 살자
이는 가장 오래된 생존본능의 문법이다. 동물세계는 이 원리가 작동한다. 인간 사회에도 타자를 위협으로 본 경우가 많다. 제국의 확장과 권력투쟁은 이 논리의 반복이었다. 이는 집단뿐만 아니라 개체들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흔한 예는 고스톱이나 정치판이다. 1등이 싹쓸이한다. 2등, 3등에게는 국물도 없다. 사울도 왕권을 지키기 위해 다윗을 호시탐탐(虎視耽耽) 엿보며 죽이려했다. 왜 그러한가. “너를 밟아야만 내가 서는” 세상문화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경쟁은 발전을 촉진하지만 관계를 소모시킨다. 이 방식은 문명을 성장시키지만 동시에 불안을 키운다. 힘은 질서를 세우고 사회는 풍요로워지지만 공존의 신뢰는 쌓일 수가 없다. 결국 이는 인간이 결핍을 두려워할 때 선택하는 방어적 질서이다. 번영 속에서도 평온을 얻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둘째, 너 살고 나 살자
이는 균형과공존의 문법이다. 이성이 만들어낸 현실적 지혜라 할 수 있다. 서로의 취약성을 인정할 때 협력이 시작된다. 제도와 계약, 법과 신뢰는 이 선택의 결과다. 근대 사회의 안정은 바로 이 균형 위에 세워졌다. 유럽연합(EU)이 대표적이다. 그간 저들 27개 나라들은 치열한 경쟁과 전쟁 속에서 피차간에 쓴맛을 봐왔다. 이런 배경 위에 경제와 제도를 공유함으로써 충돌의 가능성을 줄이고 함께 사는 틀을 만들었다. 이는 공동체를 지속시키는 가장 실용적인 방향이다. 타자를 제거의 대상이 아닌 협력의 상대로 본다. 하지만 윈윈(Win Win) 구조라 할지라도 갈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삶의 깊은 의미까지 채울 수는 없다. 이해타산의 조정에 기반한 평화이기 때문이다. 공존은 질서를 보장하지만 존재의 궁극적 질문에는 여전히 여백을 남긴다.
셋째, 너 죽고 나 죽자
이는 가장 무서운 파괴의 문법이다. 주로 미움이나 절망이 극단으로 기울 때 나타난다. 역사 속 수많은 전쟁과 폭력은 이 어두운 선택의 흔적이다. 타자를 향한 분노는 결국 자신을 향한다. 문명은 단단해 보이지만 그 기초는 의외로 얇다. 이성이 흔들리면 질서도 무너진다. 2001년 9월 11일, 영화에서나 볼법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슬람극단주의 테러조직 알카에다(Al-Qaeda) 대원 19명이 미국 내 민간항공기 4대를 납치하여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했다. 그 결과 NY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 110층의 쌍둥이 빌딩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이 사건은 증오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그리고 문명이 얼마나 쉽게 상처 입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표지로 남았다. 이렇듯 파괴는 밖으로 향하지만 결국 안으로 돌아온다. 승자가 없다는 것이다. 남는 것은 상실과 깊어진 상처뿐이다.
넷째, 너 살고 나 죽자
이는 자기초월의 문법이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평이다. 생존본능을 넘어 타자의 생명을 우선하는 선택이다. 계산을 넘는 결단 속에서 의미가 탄생한다. 역사에서 깊은 울림을 남긴 순간들은 대부분 이 영역에 속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 문법의 결정적 상징이다. 주님은 자신을 내어주어 타인을 살리는 길을 택했다. 죽음을 통해 생명이 드러났고 사랑의 원리가 역사의 중심에 놓였다. 자식에 대한 부모사랑도 여기에 해당된다. 한 알의 밀이 썩어지지 않고 어떻게 새싹을 돋울 수 있는가. 이렇듯 희생은 상실이 아니라 존재의 확장이다. 타인을 살리는 행위는 가장 이타적이며 삶의 무게를 바꾼다. 이는 인간이 단순한 만물의 영장(靈長)을 넘어 가치 지향적 존재임을 보여준다. 관계는 여기서 비로소 목적이 되고, 삶은 방향을 얻는다.
맺음말
경쟁, 공존, 파괴, 희생! 이 네 문법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과 한 사회 안에서 교차한다. 어떤 시대는 경쟁이 지배하고 어느 순간은 희생이 역사를 바꾼다.
문명의 높이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의 깊이다. 미래는 선택의 방향에 달려 있다. 가장 오래 남는 힘은 하나다. 누군가를 살리려는 결단. 그 선택이 인간을 숭고(崇高)하게 한다.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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