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하지 말라(1) I 이홍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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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길 목사(한인동산장로교회)
“생명은 소중한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듯이, 다른 사람의 생명 또한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도리이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입니다.
그래서 이 약속을 깨고 사람을 죽이는 살인 행위를 사회적으로 가장 무겁게 다룹니다. 살인범에게는 엄중한 처벌이 내려집니다. 미국에서 1급 살인자에게 사형이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선고되고 한국에서도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 내려집니다.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살인은 가장 큰 죄악으로 여겨집니다. 살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분명합니다. “살인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죄다."
하나님도 살인을 단호하게 금하셨습니다. 여섯 번째 계명,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도 단 두 단어 “로 티르차흐(לֹא תִּרְצָח)”, 아주 간결하고 단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의미가 분명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계명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나는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고 생각하며, 이 계명은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여기고 안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단순히 육체적인 살인으로 제한하지 않고 마음의 분노와 미움까지 포함한 깊은 차원의 명령임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계명은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가벼운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계명을 통해 우리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게 하고, 진정한 이웃 사랑이 무엇인지를 묻는 매우 도전적인 명령입니다. 무엇보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 율법의 핵심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모든 생명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보시기에 매우 좋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당연히 하나님에게 매우 소중한 존재입니다.
또한 시편 기자는 생명의 원천이 하나님에게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36:9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고난을 당하던 욥 또한 이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모든 생물의 생명과 모든 사람의 육신의 목숨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느니라"(욥12:10). 이처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을 의도적으로 해치는 살인행위를 강하게 금지시켰습니다.
그런데 십계명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으로서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을 주신 이유는 생명의 소중함이 살인을 당한 당사자를 넘어서 그 가족과 이웃에게로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의 6계명부터는 이웃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를 다루는 첫 계명으로 “살인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몸처럼 사랑해야 하는 이웃과의 관계를 가장 참혹하게 망칠 수 있는 죄가 “살인”이기 때문입니다.
살인으로 인해 죽은 사람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친족, 친구, 이웃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살인을 행한 사람을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살인은 가장 큰 죄입니다. 살해를 당한 피해자의 가족과 친구들이 큰 충격을 받고 평생 그 트라우마로 고통을 당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국가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처해서 살인자를 피해자와 사회로부터 격리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인자를 사형시키거나 종신형에 처한다고 해도 가족을 잃은 슬픔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의 가족과 친구들은 죽을 때까지 평생 그 아픔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웃을 사랑한다면 절대 살인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고 단호히 명령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이 계명을 잘 지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누군가를 실제로 죽이지 않았다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잘 지킨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살인의 범위를 훨씬 더 깊고 넓게 해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리스도인에게 남아 있는 도전이며 큰 숙제입니다. 다음 칼럼에서 이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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