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河 에세이(26)-효(孝)사상을 회복해야 할 현대인의 가정
페이지 정보

본문
송종록(선교사, 시인, 칼럼니스트)
효는 대인관계를 향한 첫 계명이다(출20:12).
기독교의 효는 윤리적인 면에 영적 의미가 더해져 있다.
교회는 제5계명을 실천하는 가정들이 되도록 사역적 힘을 다해야 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헌데 우리 가정들은 어떠한가? 오늘 시대는 눈부신 문명의 발전 속에서도 가정들이 파괴되고 있다. 물질은 풍요로워졌으나 부모와 자녀 사이의 대화는 줄고 마음의 거리는 멀어져만 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시니어들을 존경하기는커녕 돌봄의 대상으로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성경은 이 문제를 일찍부터 경고해왔다. 하나님께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20:12)는 계명을 통해 인간공동체의 질서를 세우셨다. 따라서 효는 동양적 미덕이나 전통적 예절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생명의 흐름 속에 심어 놓으신 영적 원리다. 제 5계명은 단순히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다. 무너진 시대를 다시 세우는 출발점이다. 효 사상에 대한 이해와 방안을 살펴보자.
1. 제 5계명의 성경적 의미
제 5계명은 인간관계의 질서를 세우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 말씀은 부모를 통해 생명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영적 선언이다. 그 안에는 존중, 감사, 책임, 돌봄의 뜻이 함께 담겨 있다. 눈에 보이는 부모를 공경치 않는 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기는 어렵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녀는 생명의 흐름을 존중한다. 반대로 부모를 업신여기는 문화는 결국 자신도 존중 받지 못하는 사회를 만든다. 효는 지난 세대를 향한 감사다. 오늘 세대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 다음 세대에 남겨줄 삶의 유산이다 그래서 효 사상은 단순한 윤리 차원을 넘어선다. 이는 신앙의 기초이며 인격형성의 뿌리이고 나아가 인간공동체를 지탱하는 영적 기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 계명을 “약속 있는 첫 계명”(엡 6:2)이라 했다.
2. 효가 무너질 때 나타나는 가정의 위기
효의 상실은 단순한 세대 갈등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관계의 근본이 흔들리는 위기다.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사라질 때 가정은 사랑의 공동체가 아니라 이해관계로 묶이게 된다. 존경 대신 계산이 자리 잡는다. 희생보다 권리가 앞선다. 오늘 노인 경시는 사회 전체를 차갑게 만들고 있다. 그 결과 부모세대는 외로움 속에 고통 받고 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효 사상이 무너지면 신앙계승이 잘 될 수 없으며 가정은 훼파되기 싶고 결국 사회불안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역하는 것이며 언젠가는 자기 자신도 후손들로부터 버림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3. 성경 속 효의 모범과 반면교사
성경은 효의 모범과 실패를 함께 기록하며 인간이 걸어야 할 길을 보여준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된 뒤에도 부모를 잊지 않았다. 권력의 정상에 올랐으나 가문의 책임을 외면하지 않았다. 기근 속에서 아버지 야곱과 자기를 노예로 판 형제들까지도 용서하며 보살폈다. 룻 또한 혈연을 넘어선 효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끝까지 떠나지 않았다. 낯선 땅의 가난과 불확실함 속에서도 사랑과 책임을 선택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효의 절정을 드러낸다.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셨다(요19:26-27). 반면 함은 아버지 노아의 수치를 조롱했다. 부모 존중을 잃은 태도는 결국 가문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이렇듯 참된 효는 조건이 아니라 어떤 상황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지켜내야 할 사랑의 의무다. 인륜의 첫 계명을 무시한 자 치고 이 세상에서도 결코 잘 될 수 없다.
4. 정통파 유대인의 효 실천 방법
저들의 효 사상은 도덕규범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일부로 이해한다. 부모는 생명을 전해준 존재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다. 그 실천방안의 핵심은 안식일 식탁예배에 있다. 저들에게서 안식일은 휴식의 날이 아니다. 하나님과 가정이 다시 연결되는 거룩한 시간이다. 이 식탁은 일반 식사자리가 아니다. 사랑과 존중, 신앙과 전통을 계승하는 작은 성소다. 온 가족이 금요일 해질 무렵부터 24시간 세상 모든 수평문화를 차단하고 한 자리에 둘러앉는다. 촛불을 켠다. 식탁에는 빵과 포도주가 놓인다. 저들은 떡을 떼며 가장의 인도 하에 식탁교제를 한다. 부모는 강압적 훈계나 진부한 설교를 하지 않는다. 찬양, 축복기도와 더불어 하부르타(Havruta)식으로 말씀을 묻고 서로 토론한다. 주된 내용은 토라(תּוֹרָה:Torah)와 탈무드(ַּלְמוּד:Talmud)이다. 이밖에 조상들의 역사와 고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반복해 이야기된다. 이렇듯 안식일 식탁에서는 자녀들이 부모를 통해 신앙과 가치, 삶의 방식을 배운다. 저들에게서 효 사상은 말이나 강압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연적으로 몸에 배고 문화로 자리 잡는다.
5. 제 5계명을 회복하는 가정의 방향
효 사상은 하루아침에 회복되지 않는다. 이는 말로만 가르치는 윤리가 아니라 삶으로 전해지는 인격 교육이어야 한다. 가정은 효 교육의 첫 장소이다. 부모는 먼저 자신의 부모를 공경하는 모습을 삶으로 보여야 한다. 자녀는 설교보다 부모의 행실을 통해 배운다. 작은 존중이 중요하다. 함께 식사하는 시간. 부모의 수고에 감사하는 태도. 아픈 부모를 돌보는 책임감. 이런 일상이 효를 자라게 한다. 무엇보다 가정예배가 중요하다. 주 1회 정도라도 온 가족이 잔치하듯 개방되고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케 해야 한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예배형식을 탈피해야 한다. 우리는 정통파 유대인의 안식일 식탁의 좋은 점을 모방할 필요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그간 기독교 교회는 자체 부흥을 위해 가정들을 희생시키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제 교회는 과오를 인정하고 가정을 살리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그 방안으로 가정에서 부모를 통해 자녀들에게 신앙이 전수되도록 사역을 적극 개발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건강한 가정이 없이는 교회도 속이 텅 빈 고목같이 될 수밖에 수 없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맺음말
“한 부모는 열 자녀를 길러내지만, 열 자녀는 한 부모를 온전히 섬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오늘 시대의 현실을 보여주는 탄식이다. 효 사상은 점차 낡은 윤리처럼 밀려나고 있다. 그러나 효는 고유한 전통이나 미풍양속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공동체 위에 세우신 생명의 질서다.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존재의 뿌리를 기억하는 신앙의 행위요, 신앙전수의 지름길이다. 효가 무너진 사회는 가정, 교회는 물론 공동체의 근간까지 흔들리게 된다. 그러므로 이 땅의 부모된 자들은 지금이라도 자녀들의 신앙을 교회에만 맡기지 말고 언행으로 효(孝)의 본을 보여야 한다. 또한 교회는 제 5계명이 살아 있는 교회 같은 가정들이 하나, 둘 씩 세워져 갈 수 있도록 사역을 개발하고 적극 지원해야 한다.
PS: 참고문헌: 현용수 교수의 효 신학 노하우 1, 2, 3권
<카이로스타임즈>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