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를 위함이 아닌가’ I 노재화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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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화 박사(전 성결대학장, 사회학/목회학)
인간은 인류의 역사를 거치면서 생존을 위한 수많은 투쟁을 거듭해오고 있다. 한 역사가는 이를 두고 아(我)와 비아(非我)와의 투쟁의 역사라고 한다. 어떤 사학자들은 자연 상태에 있던 인간에게 사유재산을 인정하게 된 이후로부터 더 많이 소유하려는 욕심과 야욕의 산물이라고도 한다.
이미 이 땅에서는 5월 마지막 주 월요일을 메모리얼데이로 정하고 국가적 행사도 거행하였다. 지난 6월은 대한민국의 호국보훈의 달로 민족과 국가를 위하여 순국하신 선열들의 희생정신에 대한 감사와 보훈하기 위여 국가적 제일(祭日)로 정하고 그 분들의 넋을 기리었다. 서울 현충원에는 서울 원아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만든 국화를 헌화하는 모습이 기사화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이 뜨거웠다. 또한 늦은 감은 있지만 대한민국정부는 국가보훈처(차관급)에서 국가보훈부(장관급)으로 행정부 조직을 격상하여 호국보훈에 대한 충분한 예우를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에 찬사를 보낸다.
세계사에 보면 지금도 세계 200도처에서 민족과 종교의 분쟁이 그치지 않고 언제 터질지도 모른 긴장상태에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예로도 우리 가까이 대만과 중국의 국가간 긴장이 연속되고 있으며 군사력을 증강을 하고 있다.
또한 특히 21세기에 지구촌 한 구석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민족과 이데올로기로 전쟁을 하고 있으며 애꿎은 수많은 시민과 양국의 젊은이들이 총알받이가 되어 산화하는 모습이 매스컴을 통해서 연일 보도되고 있다. 한 국가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의 결과로는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는 피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금년에는 6.25 한국전쟁 발발 73주년과 휴전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돌이켜 보면 73년전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사주를 받고 남침을 감행한 김일성 집단 의해 저질러진 6.25전쟁은 낙동강까지 밀려서 사라질 나라의 운명이었다. 그러나 유엔 참전국의 도움으로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을 수복하여 압록강 전선까지 올라가 한반도의 통일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그러자 중국 인민국의 참전으로 다시 밀고 당기는 전투가 계속 되었다. 1957년 7월 휴전일까지 현대전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전쟁의 말로는 사상자 약200여만명에 달했고, 한국군은 말할 것도 없이 모르는 땅에 가서 전사한 미군만 5만명 이상에 달하였다. 미국을 위시한 유엔군이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한반도는 붉게 공산화로 물들어 인권과 자유는 박탈 당히고 기아로 허덕일 것이다. 유엔군의 참전으로 38선에서 휴전선으로 변경된 남쪽의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대국 7위, 군사강국 6위이며 산업화와 케이 컬쳐(K-Culture)가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가고 있다.
그러나 휴전된지 70여년이 된 지금 이 참상이 잊혀져가는 6.25전쟁이 되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오히려 사주한 러시아, 일으킨 북한 집단과 그리고 참전하여 한반도를 분단으로 고착해 버린 중국에 대하여 찬양하며 고무하고 읍소하는 넋 나간 일부 세력들과 국내외에서 같이 밥을 먹고 있다니 어처구니없으며 불안하기만 하다.
가끔 4인조 팝가수가 부르는 ‘Rivers of Babylon’(바빌론 강가에서)을 듣곤 하는데, 원래 이 노래는 바빌론에 나라를 빼앗기고 포로가 되어 바빌론 강가에서 돌아갈 기약이 없고 잃어버린 조국을 그리며 부르는 망국객의 서글픈 탄식의 노래이다. 또한 오페라 베르디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바빌론 강가에서 요단강을 그리워하며 나라 잃은 히브인들의 각양각색의 얼굴 몸 표정에서 슬픈 망국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역사는 과학이요,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북한 3대 세습 김씨 왕조는 인권과 자유는 사라지고 아사자가 대량으로 속출하는 상황에 아랑곳없이 남한을 무력 적화 통일하기 위하여 군비증강을 일삼고 있으며 한미일을 겨냥한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70여 차례나 실시했으며, 세계 4위의 120여만의 인민군을 보유하고 있다. 남한 또한 60만의 현역군과 수백만의 예비군과 신형무기로 무장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한반도가 21세기 최대의 화약고임에 틀림없을 지도 모른다.
어느 때보다도 우리에게는 국가와 민족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하는 기회가 되었다. 한민족의 5천년 역사중 약 1천여회의 외침이 있었다니 평균 5년에 1회는 개나리 봇짐을 싸고 피난살이를 하였고, 국가를 위하여 의분강개한 애국자들은 국민병과 의병으로 적과 싸워야 했으며 그들의 애국애족의 정신이 오늘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유지해온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난세에 영웅이 나듯이 국가가 어려움에 처하거나 위태로울 때에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국가를 건져내기 위하여 많은 헌신적인 애국 애족의 정신으로 무장한 백성들이 일어섰다.
우리는 지금은 어떠한가. 한국 국적의 남성 거의 대다수는 평상시 징병 의무 입대를 하여 훈련과 전술을 익히면서 의무복무기간을 마치고 전역을 하게 된 후에도 향토 예비군으로 편성되어 소정의 시간에 재훈련 받고 있다. 평상시에 군인들은 혹독한 훈련으로 체력을 단련하고 전술을 익히며 만일 주적과 전쟁이 일어날지 모를 만일의 ‘이 때를 위함이 아니겠는가’.
한민족 못지않게 세계 선민이라는 이스라엘 유대인 또한 고난과 피와 눈물의 역사로 이어오고 있다. 수많은 전쟁으로 나라를 잃거나 국가가 사라지는 비운의 역사 속에서도 이스라엘은 그때그때마다 민족을 이끄는 하나님의 지도자가 나타났기에 지금까지도 유대인은 존재해오고 있지 않는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바벨론 포로시대인 바사 왕 아하수에로의 왕후가 된 에스더가 애국자 모르드개와 유대민족을 구한 사건이다. 포로가 귀환 시기에 잔병으로 남아있던 수만의 유대인들을 아하수에로왕의 부하 하만이 계략을 꾸며 도륙하려는 순간이었다. 왕궁에 있던 에스더는 평안히 있을 수만은 없이 난감해 하고 있으면서 반응이 보이지 않자 사촌 오빠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고하기를 네가 왕후에 오른 것은 유대인을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너를 보내신 것은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에4:14)라고 촉구하였다.
여기서 성경에 나타난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신앙을 살펴보자. 하나님의 사람인 모르드개는 조카 에스더를 어려운 환경에서도 지혜롭고 아릿다운 용모의 처녀로 잘 길러내어 왕후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모르드개의 신앙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권세자들 앞에서는 당당하고 자기 민족을 위한 애민정신이 투철한 믿음의 사람이었다(에4:1-14). ‘별’의 뜻의 에스더는 사촌 오빠 밑에서 미모와 지혜를 갖춘 왕후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여인으로 자랐다. 그녀의 신앙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금식기도와 믿음 하에서 자기민족 유대인을 위한 순교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생명을 걸고 왕 앞에서 나가서 한판승부를 걸었다(에4:1-17). 지혜로운 에스더는 절체절명의 민족적 위기 앞에서 왕에게 호소와 간구로 악독한 하만의 음모를 제거하고 유대민족을 귀하게 되었다는 극적인 스토리이며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그녀의 애국 애민의 충정어린 합작품이었다. 이 처럼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신앙은 국가가 위기에 처해있을 ‘이 때를 위함이 아닌가’ 로 애국자들의 본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특히 하나님이 이스라엘민족을 모델로 택하셨고 이방인인 우리도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을 조롱하거나 우리의 신앙 활동과 믿음에 반하는 세력과는 맞서야 한다. 내 국가 내 민족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지 않는가.... 우리의 민족사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교훈을 던져주고 있는 두 믿음의 용사처럼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신 것도 ‘이 때를 위함이 아닌가’라는 신앙으로 무장하자! 호국 보훈의 달을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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