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열리고 I 나성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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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균 목사(샬롯한인장로교회 원로)
예부터 하늘이 열리는 일은 신비한 일이요 하나님의 직접 개입을 표현하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첫 사역을 시작하시던 날, 첫 제자들을 모으시던 날, 나다나엘에게 주신 말씀 중에 나온 말씀이다.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너를 보았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이스라엘의 임금이십니다.”, “네가 이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텐데,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부터 성취되었다고 할 수가 있다. 계속되는 사역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과 자주 교제하시고 힘을 주시고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수없이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특별히 변화산에서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 사역을 마치시는 중에 십자가를 지시려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하시고, 천사들이 그 피땀 흘리는 고통을 위로하고 돕게 하시었다.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가?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는 고통과 기도는 우리와 너무도 똑같은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으로서 너무도 벅찰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제까지 인류가 존재한 이래에 최고 최대의 영적 대회전이 그때 2000년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사탄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면, 자기 생명이 끝나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십자가를 지지 못하게 하려고 최대로 도전하였을 것이다.
히브리서 5장 7절은 말씀하시기를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하셨다. 그런데 그렇게 죽을힘을 다하여 간구하실 때 무어라고 하셨는가? “아버지여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하시었다. 얼마나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이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었을까? 깊이 묵상을 하여보니 세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 같다.
첫째, 내일 십자가를 지실 때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끌고 갈 로마병정들이 얼마나 얼마나 잔인한가를 잘 아시었다. 그들은 채찍 끝에 짐승의 뼈나 쇠붙이를 달아서 몸에 붙었다가 떨어져 다음 채찍을 맡게 될 때는 몸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서 맞고 또 맞고 채찍질이 계속되면 나중에는 온몸이 너덜너덜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잔인한 상처투성이가 되는 것이다.
둘째, 의인으로서 단 일 분이라도 죄인으로 취급되는 것이 어떻게 견딜 수 있는 일인가? 그런데, 일 분도 아니고 한 시간도 아니고, 거의 하루 종일 이런 일을 당하실 것을 생각하면 어떻게 견딜 수가 있다는 말인가?
셋째로, 특별히 내일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세 시간이나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께 버림받을 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히기 짝이 없지 않았을까? 사랑하셔서 단 일분, 일초도 헤어질 수 없는 삼위 하나님께서 특히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류의 무서운 죄를 지고 계실 아드님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비참한 현실이 닥쳐올 때에 어떻게 무슨 수로 견딜 수가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왔던 십자가 사건을 깊이 묵상하지 못하고 대할 수가 얼마든지 있지만 그렇게 깊이 묵상하면 상상할 수 없는 깊이를 깨닫지 않을 수가 없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처절한 영적투쟁 속에서 피땀 흘리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로 마침내 승리하시고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오직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처절한 자기 부인 속에서 이루어진 이 위대한 십자가의 승리로 우리의 구속을 완성하신 것이다. 십자가의 구속과 부활로 구속을 완성하시고 40일을 이 땅에 계시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부활을 증거하시고 다시 하늘이 열리고 그곳으로 올라가셨다.
같은 하늘이 계속 열리었으나 어떤 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또 어떤 때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처절하게 부르짖으실 때에 돕기 위하여, 또 어떤 때는 사역을 마치시고 하늘로 올라가실 때, 그렇게 하늘은 그때마다 하나님의 사역을 보여주는 기회가 되었다. 우리에게 열리는 하늘은 어떤 하늘인가? 우리가 언제나 우러러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도, 우리가 고통 받을 때 가장 가까이에서 언제나 돕는 하늘로도, 사역을 다 마치고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기 위하여도 열리는 하늘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늘이 열리는 것을 사모하며 사는 우리에게 영원한 위로와 힘이 되리라 확신한다.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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