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상처의 출발점인가! 축복의 통로인가! – 가정의 달에 다시 세우는 성경적 가정 - 노재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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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화 목사(전 성결대 학장, 사회학/목회학 박사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 다양한 가정 관련 기념일들이 줄줄이 이어지며, 정부와 사회는 ‘가정의 중요성’을 재확인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정은 더 이상 ‘사랑의 보금자리’, ‘행복의 터전’으로만 기능하지 않는 것 같다. 많은 이들이 “가정이 가장 힘든 곳”, “가족보다 남이 편하고”, 결혼까지 기피한다는 말을 종종 듣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에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지금 우리 가정은 건강한가? 대화는 살아 있는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솔직히 답하며, 각자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가정의 회복을 위한 첫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이혼율은 지속적으로 높고, 청소년의 가출 이유 중 1위는 가정불화이며, 아동학대의 80% 이상이 보호자인 부모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노인 방임, 부부 간 폭력, 자녀와의 단절, 경제적 무관심 등은 가정을 ‘축복의 통로’가 아니라, 무너진 울타리로서 ‘상처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가정은 천국의 축소판일 수도 있고, 지옥의 전초기지일 수도 있다. 그것은 어떤 건물에 사느냐가 아니라, 어떤 관계를 이루며 사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가족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랑과 책임, 배려와 용서, 대화와 연대의 정신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가정은 어떤 모습이며, 우리는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이 칼럼에서는 성경을 기준으로 현대 가정의 붕괴 현상을 조명하고, 회복의 방향을 신앙적으로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현대 가정의 붕괴 징후들
가정폭력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사랑이 식고 배우자에 대한 언어적 폭언, 아동에 대한 체벌, 경제적 통제, 노인을 향한 무관심까지 가정 내 갈등은 정서적 학대에서 점점 더 폭력적인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사랑은 온유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고전13:4-5). 이 말씀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폭력을 정당화하는 모든 변명을 무너뜨린다. 참된 사랑은 통제하거나 해치지 않는다. 사랑은 섬기며 보호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다음은 대화의 실종과 마음의 단절로 말이 멈춘 지 오래이다. 스마트폰과 미디어의 발달은 가정의 대화를 앗아갔다. 부모는 자녀에게 “공부해라”는 말만 하고, 자녀는 “됐어요”로 단절한다. 부부는 아이 이야기 외엔 말이 없고, 노부모는 TV 앞에만 앉아 있다. 대화가 없는 가정은 정서적으로 죽어가는 공동체다. 상대방의 경청은 사랑의 시작이며, 이러한 대화는 가정을 살리는 호흡이다. 말이 끊기면 마음도 멈춘다. 하나님은 우리와 늘 대화하시는 분이시며, 인간도 그분을 닮은 존재로 지음 받았다.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1:19).
세 번째로 이혼, 재혼, 한부모 가정, 독거노인, 청년의 결혼 기피는 가정의 전통적 구조를 허물고 있다. 구조의 변화 자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 안에 돌봄과 헌신, 책임이 사라졌다는 데 있다. 즉, 결손과 해체로 가정의 구조가 무너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 “만일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고 말씀하신다. 가정은 먼저 돌보고 책임져야 할 사랑의 현장이다. 부양과 돌봄은 선택이 아니라 신앙의 실천과정이다.
2. 성경적 가정의 본질과 기능
하나님은 세상 모든 피조물 중에서 에덴의 가정을 가장 먼저 만드셨다. 교회보다, 나라도, 제사장 제도보다 앞서 창조된 공동체가 가정이다. “그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 즉, 가정은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통해 하나 되어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는 창조 질서의 첫 출발점이다. 이 질서 안에서 인간은 사랑과 책임, 자녀 양육의 의미를 배우게 된다.
또한 가정은 단지 의무를 다하는 곳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삶의 자리이며, 사랑과 섬김의 현장이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5:25). 또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이 말씀들은 단순한 권면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가정은 자기중심이 아닌,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는 훈련장이 되어야 한다.
3. 가정 회복을 위한 성경적 대안
첫째로 우선 하나님은 자녀에게 믿음을 전수하라고 명령하신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문설주에 기록할지니라”(신6:4-9). 가정은 신앙 교육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며, 부모의 삶이 곧 자녀를 위한 교과서다. 가정에서 믿음이 끊기면, 다음 세대는 교회로 가지 않는다. 가정은 세대를 잇는 신앙 전수의 장이며, 신앙의 유산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둘째로 이를 위해서 경청과 용서의 대화로부터 시작하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고 하신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모든 가정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회복은 ‘먼저 용서하고, 먼저 사과하며, 먼저 들으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가족의 말 속에 담긴 진심을 들으려 할 때, 비로소 상처는 아물기 시작한다.
셋째로 말씀이 있는 가정은 흔들리지 않는다.
하루 10분이라도 함께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시간을 가지고, 말씀 중심의 가정예배부터 회복하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가정은 나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출발점이다.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이 말씀으로 가정은 전도의 현장이 될 수 있고, 선교의 전진기지가 될 수 있다. 이기적 만족이 아니라, 사명적 책임으로 가정을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정 예배의 회복이다. 가정예배는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영혼의 중심을 세우는 일이다. 하나님 중심의 가정은 위기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넷째로 고통 받는 가정을 위한 공동체적 돌봄으로 교회와 이웃은 상처 입은 가정을 품어야 한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고 말씀하신다.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 경제적 어려움 속의 가정이 소외되지 않도록 교회는 구체적인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공동체적 치유와 회복은 하나님 나라의 가장 실제적인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가정은 회복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자.
많은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은 깨어진 공동체를 회복하시는 분이시며, 가정 또한 그분의 회복 대상이다. “내가 너를 고쳐 주고 네 상처를 고쳐 주리라”(렘30:17). 이 말씀은 개인뿐만 아니라, 병든 가정에도 주어진 약속이다.
행복한 가정은 우연이나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노력과 희생, 그리고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만들어진다. 5월, 사랑을 다시 시작하자. 가정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기에. 가정은 서로를 위한 자기희생과 용서, 섬김의 훈련장이며,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다. 세상이 아무리 흔들려도 가정이 신앙 안에서 굳건히 설 때, 다음 세대와 사회는 건강해질 수 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가정의 원형’을 회복하는 것이다. 상처의 출발점에서 회개와 순종, 경청과 사랑, 말씀과 기도의 회복을 통하여 가정은 다시 축복의 통로가 되도록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며 노력하자.
올해 5월, 우리의 가정이 그 출발점이 되기를 소망한다. 고통을 이겨내고, 대화를 회복하며, 믿음의 유산을 잇는 ‘행복한 가정’으로 다시 ‘사랑의 집’으로 거듭나자.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빛이 흘러가기를 소망하자. 아멘! 할렐루야!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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