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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河 에세이(16)-소통이 주는 유쾌, 상쾌, 통쾌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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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카이로스타임즈
댓글 0건 작성일 25-04-27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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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록 목사(선교사, 수필가)


창조질서는 서로 통(通)하게 되어 있다.

통즉불통(通卽不痛): 통하면 고통이 없다.

불통즉통(不通卽痛): 통하지 않으면 고통이 있다.



“통즉불통 불통즉통”이란 무슨 뜻인가? 몸의 기혈이 통하면 아프지 않고, 몸의 기혈이 막히면 아프다는 뜻이다. 이는 허준의 동의보감 잡병편(雜病篇) 제 1권 용약(用藥)에 나오는 말이다. 한의학 용어인 이 내용은 비단 신체뿐만이 아니라 세상만사에 다 적용된다. 이를테면 공기는 통해야 신선해진고 물도 순환되어야 썩지 않는다. 만일 집의 오물이 흐를 수 없도록 하수구가 막힌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통하지 않으면 오해하기 쉽고 후에는 부딪치게 된다. 특별히 가까운 사람들끼리 관계가 파괴되면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소통의 문제는 개인을 넘어서 스포츠 팀의 감독과 선수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대원들, 군대의 지휘관과 군인들 등 모든 분야에 요구된다. 목회나 선교 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이로서 우리는 불통즉통(不通卽痛)인 삶의 현장을 통즉불통(通卽不痛)의 사회로 만들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인간 중심에서 보면 4가지 영역이 있다.

 

1. 대신관계(對神關係)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덧입은 “영적인 존재(Spiritual Being)”이다. 그 의미는 하나님과 소통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소통은 생명이고 불통은 죽음이다. 죽음이란 생명이신 하나님과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에덴동산은 하나님과 아담-하와가 함께 한 소통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저들이 절대적 말씀을 거역함으로 죄가 시작되었다. 그 죄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면전에 설 수 없게 했다. 이것은 관계 단절을 가져왔고 고통을 수반했다. 그 사례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나타났다. 바로 신, 구약의 중간기인 400년간이다. 그 때 이스라엘인들은 창조자의 계시와 묵시를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칠흑 같은 영적 암흑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는 속세가 아무리 힘들어도 뭔가 소망이 있으면 헤쳐 나갈 수 있다. 허나 앞이 안 보이면 좌절할 수밖에 없다. 신(神)과의 단절은 이처럼 무섭다. 공의의 하나님은 사랑이시기도 하다. 그래서 사망의 덫에 갇혀있던 인류를 구원키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10:11-12). 이로서 인간은 예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과 다시 통(通)하게 되었다. 하늘 문이 열린다는 것은 죄인들에게 최대의 축복이다.

 

2. 대인관계(對人關係)


불세출(不世出)의 철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 신학자이며 철학자인 마틴 부버(Martin Buber)는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다”라고 했다. 인생이란 “나와 너”와의 만남의 연속이란 뜻이다. 아기는 태어나 처음 대하는 엄마를 시작으로 살아가면서 수많은 이웃들을 만난다. 너로 인해 행복하기도 하며 때로는 상처받고 가슴 아파하기도 한다. 나는 너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나는 너로 인하여 비로소 나가 될 수 있다. 나와 너의 관계는 소통을 수단으로 한다.


오늘날 세상에는 마음이 흐르지 않아서 고통과 불행 속에서 사는 이들이 많다. 부부간, 부자간, 형제간, 친구간 등 그 양태는 다양하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관계가 단절되면 아픔은 배가 된다. 불통의 주된 원인은 이해와 관용과 사랑의 결핍이며 역지사지(易地思之)적 사고(思考)의 부재이기도 하다. 이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진솔한 대화(Dialogue)가 필수적이다. 심중을 드러낸 진심어린 만남은 그 어떤 담도 헐게 하며 서로 간에 아픈 생채기를 어루만져 원래 상태로 회복시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소한 일들을 훌훌 털고 늘 열린 자세로 이웃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소인(小人) 은 감성에 치우치나 대인(大人)은 감성을 다스린다. 

 

3. 대몸관계(對身關係)

BC 239년 중국 진나라의 재상인 여불위가 주도하여 편집한 백과사전인 “여씨춘추(呂氏春秋)”에는 이런 글이 있다. “무릇 사람은 삼백육십 개의 마디와 아홉 개의 구멍과 오장과 육부가 있다. 피부는 조밀하기를 바라고, 혈맥은 통하기를 바라며, 정기는 운행하기를 바란다. 이렇게 하면 병이 머물 곳이 없고, 추한 것이 생겨날 근거가 없게 된다. 병이 머물고 추한 것이 생겨나는 것은 정기가 막혔기 때문이다.”


우리가 병을 치료한다고 할 때의 “치(治)”는 물수변이 있다. 이는 물길을 다스린다는 “치수”라는 말에서 왔다. 무릇 생명에는 흐름이 있다. 이 흐름에 변화가 생겨 순조롭지 못할 때 병이 나는 것이다. 만일 흐름이 완전히 막히면 생명체는 죽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기혈(氣血)이 원활하게 흐르도록 체력관리를 잘해야 한다. 동양의학에서는 무병장수(無病長壽)의 첩경을 3쾌로 말한다. 그것은 쾌식(快食) 쾌면(快眠) 쾌변(快便)이다. 여기서 쾌(快)의 의미는 “쾌할 쾌, 빠를 쾌”로서 기쁨의 의미와 함께 막힘이 없이 빠르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한마디로 통즉불통(通卽不痛)을 강조함이다.

 

4. 대물관계(對物關係)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창3:17). 인간의 타락은 자연 세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세상의 생태환경은 서로 통하게 되어 있다. 예를 들면 물은 그 순환에 있어서 신비롭다. 물은 증발할 때 염분과 불순물이 제거된 후 기체로 변한다. 만약 물이 정제되지 않은 채 증발하여 비로 내린다면 지구에는 대재앙이 오고 말 것이다. 그것은 모든 생명체의 사멸을 의미한다.


이렇듯 피조세계는 보이지 않는 창조질서와 운행의 법칙이 있다. 하지만 인간이 물질의 순환과 흐름을 막고 역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며 집단이익을 위해 거침없이 행동하고 있다. 핵폭탄 등 가공할 무기 실험,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 산림의 무차별 벌목, 수많은 댐으로 인해 물의 흐름을 막는 등 지구촌 곳곳에 대자연의 탄식이 있다(롬8:22).


이제 우리 인간은 마음을 비우고 청지기적 신분으로서 우주만물을 잘 관리해야 한다. 그 한 방편은 생태계의 자연적 흐름과 순환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비록 물질세계라 할지라도 불통즉통(不通卽痛) 즉, 통하지 않으면 고통이 따르며 인간이 그 재해(災害)를 고스란히 덧입게 된다.

 

맺음 말

 

우리 인생은 나그네 길이다. 어떻게 경영해야 좀더 행복한 인생, 아름다운 세상이 될까?  소통(疏通)을 잘하는 것이다. 옷을 입을 때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중요하다. 크리스천들에게서 첫 단추란 대신관계이다. 늘 하늘을 향해 마음의 창이 열려있으면 문제될 것이 없다. 대인관계를 위해서 우리는 이웃과 속 깊은 만남들이 일상화되어야 한다. 능동적 만남은 피차간에 갈등을 줄이고 원활한 조직사회를 만들어준다.


대몸관계란 우리 몸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그 핵심은 기(氣)와 혈(血)이 잘 통(通)하게 하는 일이다. 대물관계에서 인간은 만물이 순리대로 잘 유통되도록 다스려야 한다. 눈앞의 이익 때문에 물질세계를 훼파하거나 함부로 다루면 대 재앙(災殃)을 맞을 수도 있다. 이렇듯 피조세계에서 불통(不通)은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된다. 그것은 진통을 낳게 되고 불행을 가져온다.


진정 우리는 유쾌, 상쾌, 통쾌한 삶을 기대하는가? 그 답은 통즉불통(通卽不痛)여하에 달려 있다. 그러면 창조주의 섭리대로 만물이 이치(理致)를 따라 조화로운 운행을 할 것이다. 낙원은 저 피안彼岸)의 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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