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지켜내는 품격 I 최광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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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희 목사(신학박사)
SNS의 발달로 요즘은 모든 개인이 언론이며 누구나 기자인 시대가 되었다. 이 ‘자체 언론’을 통해 누구나 소소한 일상을 불특정 다수와 나눌 수 있고, 사회 전반의 현상들에 대해 느낌과 평론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자기 노출은 때로 자기 계발의 동기가 되기도 하고 멀리 있는 사람들과의 친밀감을 회복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 노출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지나친 사생활 공개는 때로 자신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낳는다. 드러낸 말은 되돌릴 수 없고,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소비되기도 한다. 사생활 공개는 ‘자기 브랜드 관리’ 수단이라는 면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오해와 왜곡이 난무하는 시대에는 좋은 뜻으로 한 말조차 조롱거리로 전락할 수 있고, 결국 그 전략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그러므로 때로는 말하는 것보다 침묵이 중요한 덕목이다.
얼마 전에 한 유명 여배우는 자기 아들이 동성애자이며 외국에서 생물학적 남성과 결혼한 사실을 공개하였다. 그러면서 이제는 사위를 더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댓글에는 민감한 개인 정보를 굳이 공개할 필요가 있느냐, 상식 이하의 내용을 기사로 올리지 말라,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기사는 내려라 등 다수의 불쾌한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 그녀는 대중이 물어보지도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내용을 굳이 공개해서 그동안 쌓았던 좋은 이미지를 상당히 깎아 먹고 말았다.
또 최근 한 유명 여배우가 자신의 SNS에서 이혼 후 냉동 배아를 통해 임신했다는 사실을 고백한 일이 있다. 생명에 대한 책임 있는 결단이라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는 이들이 많고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고백은 곧바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곧바로 대중의 관심이 쏠리면서, 그녀가 첫째 아이는 결혼 전에 임신했다는 사실이 주목받게 되었다. 첫째는 혼전 임신이고 둘째는 이혼 후 임신이었으니 결국 그녀는 혼인 중에는 임신한 적이 없다는 말로 조롱의 소재가 되었고 그녀를 응원하던 팬들조차 변호하기 곤란한 상황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논란이 외부의 폭로가 아닌 본인의 공개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그녀의 첫째 임신 이야기는 언론을 통해 공개했고 둘째 임신 이야기는 SNS를 통해 공개했다. 연예인이든 일반인이든 개인적인 삶을 공유할 자유는 있다. 하지만 그 공유가 대중의 판단과 해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SNS는 진심마저 가십(gossip)으로 바꾸는 힘을 가졌고, 한 번 던진 말은 다시 거둘 수가 없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사회가 ‘말하는 자유’에 매몰된 나머지, ‘말하지 않는 절제’와 ‘침묵의 지혜’를 놓치고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널리 알려진 일화에 따르면, 다윗상을 조각한 미켈란젤로에게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조각한 비결을 묻자, 그는 “그저 돌에서 다윗이 아닌 부분을 깎아냈을 뿐”이라고 답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훌륭한 작품은 무엇을 더하는가보다 무엇을 덜어내는가로 결정된다는 말이다. 같은 논리로 사진작가는 어떤 장면을 담을 것인가보다 무엇을 배제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훌륭한 강사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말하지 않을 것인가를 더 깊이 고민한다는 말도 있다.
이처럼 ‘덜어내는 것’과 ‘배제하는 것’의 힘을 아는 것은 결국 더 깊은 가치를 만들어 낸다. 이 원리는 언론에도 그대로 적용되며 개인 역시 마찬가지이다. 무엇을 보도할 것인가보다 무엇에 침묵할 것인가를 판단할 줄 아는 태도가 품격 있는 언론을 만든다. 언론이 남보다 먼저 특종을 터뜨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개인의 삶에서도 진정한 품격은 ‘무엇에 침묵할 줄 아는가’에 달려 있다.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을 떠벌이거나 남보다 먼저 아는 것을 모두 공개하는 것으로 사람의 품격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대화에서 무엇을 말하지 않을 것인가를 분별할 줄 안다면, 그것이 곧 인격과 품격으로 연결된다. 침묵이란 단순히 감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고, 자신을 보호하며, 조화를 이루는 힘이다. 특히 무한 공유의 유혹을 받는 SNS 시대에 침묵의 가치를 지키는 일은 더욱 소중한 덕목이 되었다.
누구나 언론이고 모두가 기자인 오늘날 우리는 ‘말하는 자유’만이 아니라 ‘침묵하는 지혜’도 함께 지켜야 한다. SNS는 표현하는 자유를 넓혔지만, 그 자유에 따르는 책임도 그만큼 커졌다. 침묵은 감추는 것이 아니라 품격 있는 자기 보호이다. 감추어야 할 것에 대해 침묵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사람이 된다. 결국 SNS 시대의 진정한 품격은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무엇에 침묵할 줄 아는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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