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2-우상을 만들지 말라 : 하나님을 향한 일편단심(3) I 이홍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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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길 목사(메릴랜드 크리스찬교회)
예전에 신문 기사를 읽다가 마음이 너무 착잡하고 실망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지역의 점쟁이가 그 지역에 있는 교회의 상황을 완전히 꿰뚫고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점쟁이가 어떻게 성도들의 삶과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조리 알 수 있을까요? 그 교회 교인들이 점쟁이를 찾아와서 별의 별 얘기를 다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시는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무당을 찾는다고 하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우상을 섬기는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실제로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아다니며 의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을 의지하는 것 역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을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우상을 만들어서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코람데오 신앙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제 1계명은 하나님을 일편단심으로 사랑하며 믿고 섬기라는 명령입니다. 이어서 두 번째 계명은 우상의 형상을 만드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이 역시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출20:4-5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신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어떤 모양이라도 신의 형상을 만들지 말 것과 만들어진 신상에게 절하거나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만 섬기라고 하는 첫째 계명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은데, 두 번째 계명 역시 어려운 명령이었습니다. 고대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의 형상을 만들고 그 신상에게 절을 하며 신을 섬겼습니다. 물론 신상 자체를 신으로 섬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상은 신이 머문 공간이고 신의 집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왜 신의 형상을 만들었을까요? 고대인들에게 신은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무소부재의 신이 아니었습니다. 각각의 신은 자신이 다스리는 특정한 지역이나 공간에 머물며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믿었습니다. 하늘을 다스리는 신, 땅을 주관하는 신, 바다를 다스리는 신 등 신들은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에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한다고 믿었습니다.
이처럼 각각의 신들은 존재하는 지역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영향력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산의 신은 산에 갈 때 필요하고 바다로 나갈 때는 바다의 신이 필요합니다. 고대인들은 무소부재한 절대적인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신을 섬겨야 그만큼 더 많은 혜택과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처럼 많은 신들을 섬길 때, 고민이 있었습니다. 하늘에 살고 있는 하늘 신은 너무 멀리 있으니 자신의 상황을 알 수도 없고 도움을 줄 수도 없겠지요. 그래서 신상을 만들면 신이 그 신상에게 들어와서 신의 영향력이 신상이 있는 지역까지 확대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하늘 신의 형상을 만들면 하늘에 살고 있는 신이 그 신상에 들어오겠지요. 그러면 땅에 살고 있는 자신들이 하늘 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을 입구나 집은 물론이고 작은 신상을 만들어서 휴대하고 다니면 어디에서나 신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자그마치 400년을 살았으니 애굽 사람들처럼 여러 종류의 신을 섬기는 다신론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애굽의 다신론에 완전히 빠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산에 올라가서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자 호렙산 밑에 머물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에게 우리를 지키고 인도할 신상을 만들라고 요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산 위에서 모세를 만나고 있을 테니, 산 아래 있는 자기들은 누가 지켜주나 생각하니 불안하고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면 산꼭대기에 계신 하나님이 산 밑에 있는 자신들을 지켜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저 멀리 산꼭대기에서 모세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 금송아지 형상에 임하셔서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앞에 제사를 드리고 춤을 추며 기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고대 근동의 다른 우상들과는 달리 신상 따위를 만들 필요도 없이 어디에나 계시고 언제나 함께 하실 수 있는 무소부재의 절대적인 하나님 아니십니까? 애굽이나 가나안 땅과 같은 특정 지역에서만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만물을 친히 다스리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아직 이 놀라운 사실을 모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두 번째 계명을 주시면서 어떤 종류의 신상도 만들지 말고 섬기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감사하게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미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고 그분의 보호를 받기 위해 신상 따위를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쉽지만은 않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 사실이 얼마나 우리에게 격려와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십계명의 제 2계명은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언제 어디에서나 어떤 상황 속에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얼마나 확신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힘든 일을 만나면 제일 먼저 하게 되는 생각이 있지요. “하나님이 살아계신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가? 하나님은 이 문제까지도 해결해주실 수 있으신가?”
무엇이라도 확실한 것을 붙잡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간절하지요. 이럴 때 이스라엘 백성은 신상을 만들어서 하나님이 함께 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니 굳이 신상을 만들고 “하나님, 여기 임하셔서 우리를 도와주세요!”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그 자녀들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함께 하십니다.
시편139:7-10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우리가 지옥같이 어렵고 힘든 상황에 있어도 바다 끝에 가서 숨어 있어도 하나님은 그곳까지 우리를 찾아오시고 그 오른손으로 지키시고 인도하십니다! 아멘!! 불안한 마음에 신상을 만들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곳에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리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해서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며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의심하며 살고 있을 뿐입니다.
힘겨웠던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그때는 정말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힘들었는데 이제 와서 돌아보니 그때도 역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고 나를 지키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않습니까? 무슨 일이 닥쳤을 때, 우리는 그 힘든 일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십계명의 제 이 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코람데오, 언제나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시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크고 작은 일들을 당할 때도,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이 하나님 앞에 다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신상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미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 살고 있다는 코람데오의 신앙을 붙들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상환, 『신들과 함께』 참고. 고대 근동의 신상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제공하고 있다.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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