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이 임하는 소리(2) I 정재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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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호 목사(C&MA감독)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열왕기상19:18).
내년이면 ‘평양대부흥’이 일어난 지 꼭 120년이 된다. 하나님께서 한민족을 사랑하셔서 하늘 문을 여시고 한반도에 성령의 불, 부흥의 불을 내려주셨다. 한민족에게 엄청난 축복이 임한 참으로 복된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적인 눈으로 당시 조선의 상황을 바라보면 그때보다 더 절박한 때도 없었다. 나라는 서서히 목을 조여 오는 일제의 침탈 앞에서 몸부림치고 있었고,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 중 하나를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가장 암울했던 그때, 가장 놀라운 하늘의 축복이 한민족에게 임했다. 그렇다. 가장 암울한 때에 가장 놀라운 부흥이 임했다.
1. 7학년 큰언니의 이야기
2주 전, 70세의 한 여성 전도사님이 ‘Consecration’을 받았다. C&MA 교단은 몇 년 전부터 여성에게도 목사안수를 허용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남성 사역자는 안수(Ordination)를, 여성 사역자는 성별(Consecration)을 받았다. 한국 기독교 정서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사역자가 된다는 것은 대체로 ‘안수’를 받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따라서 ‘성별’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그리 익숙한 개념이 아니다. 더군다나 ‘목사’ 하면 으레 ‘안수’를 떠올리는 한인 기독교계에서 안수와 성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역자는 안수를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작년 고시 인터뷰에서 이번에 Consecration을 받은 전도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저는 이제 70이 되어 가는데, 안수나 Consecration이나 이런 타이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목사라고 불리는 것 자체가 사실 큰 부담입니다. 저는 Consecration 고시를 택하겠습니다.”
70이면 이제 인생을 정리할 때가 아닌가! 그동안 남편과 함께 그 어렵다는 이민교회를 개척하여 섬겼고, 주변의 사모들을 챙겼으며, 수많은 교인들을 섬겼다. 이제 남은 시간만큼은 조금 편안하게 보내고 싶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런데 굳이 왜 70의 나이에 Consecration을 받는단 말인가? 전도사님의 Consecration 예식을 집례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분의 가슴속에는 아직도 선교지의 젊은 영혼들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살아 있었다.
전도사님은 Consecration을 받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는 젊어서 선교단체에서 훈련받았습니다. 그리고 간호사로 사우디에 파송되었습니다. 사우디에서 후배 간호사들에게 전도하고 그들을 모아 제자양육을 했습니다. 그 그룹들을 통해 많은 헌신자들이 배출되었습니다. 이제 남은여생을 중미의 벨리즈와 과테말라에 사는 젊은이들을 양육하고 섬기는 데 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제 인생의 마지막 꿈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타이틀로, 7학년 큰언니는 ‘선교사’를 선택했다. 이민교회들이 어렵다고 한다. 교회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고 한다. 모두가 미래를 걱정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도 여전히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들이 남아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아니, 희망을 넘어 부흥에 대한 확신이 있다!
2. 3학년 동생들의 이야기
지난 주일에는 창립 20주년을 맞은 뉴저지의 한 교회를 방문했다. 여느 이민교회처럼 규모는 아담하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담임목사님은 70대 중반이신데, 교회의 주축은 30-40대의 젊은이들이었다. 교회 분위기와 예배에는 젊은이들의 열정이 가득했다. 그 가운데 네 명이 한인총회 신학교인 ATI에 등록하여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예배를 마친 후 친교 시간에 그 네 청년들과 잠시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물었다. “앞으로 인생에서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어떤 비전을 품고 있습니까?” 두 청년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선교사로 파송 받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세 번째 청년은 선교와 관련하여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라면서 결국 자신도 선교사의 길을 갈 것이라고 했다. 네 번째 청년도 자신의 전공을 살려 언젠가는 선교를 위해 쓰임 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뜨거워졌다. 30대의 젊은이들이 한 세상 남부럽지 않게 잘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땅끝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섬기는 것을 인생의 이유로 삼고 있다니! 참으로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아닌가!
3. 그렇다, 가장 암울한 때에 가장 놀라운 부흥이 임한다
나는 지난 2주 동안 매우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났다. 한쪽에서는 70세의 ‘7학년 큰언니’가 인생의 마지막 꿈으로 선교사를 선택하고 있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30대의 ‘3학년 동생들’이 인생의 첫 꿈으로 선교사를 선택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인생의 황혼에서 말한다. “남은 생애를 선교에 드리겠습니다.” 젊은이들은 인생의 아침에 말한다. “우리의 앞날을 선교에 드리고 싶습니다.” 한 사람은 인생의 황혼에서, 다른 이들은 인생의 아침에서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나이는 달라도 꿈은 같았다. 살아온 세월은 달라도 가슴속에 품은 사명은 같았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깨닫는다. 부흥은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아직 부흥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1907년 평양대부흥도 가장 좋은 시대에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나라의 앞날이 보이지 않았고,
희망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바로 그때 하늘 문이 열렸다. 그러므로 오늘 교회의 현실이 어둡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역사는 우리에게 말해 준다. “가장 어두울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을 남겨 두셨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들.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 자신의 편안함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 자신의 남은 생애를 기꺼이 주님께 드리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보았다. 70세의 큰언니에게서 보았다. 30대의 동생들에게서 보았다. 그래서 나는 확신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아니, 희망을 넘어 부흥에 대한 확신이 있다! 아직은 작은 불씨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그 불씨는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본다. 저 멀리서, 그러나 분명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부흥이 임하는 소리이다.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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