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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판에서 내 삶의 열매를 묻다" - 무엇을 심었으며, 무엇을 거두고 있는가 I 노재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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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카이로스타임즈
댓글 0건 작성일 26-10-1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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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화 목사(전 성결대 학장, 사회학/목회학 박사)
 

가을이 깊어간다. 높고 푸른 하늘 아래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에는 한 해 동안 농부가 흘린 땀과 수고가 알알이 영글어 있다. 봄에 뿌린 작은 씨앗이 여름의 뜨거운 햇볕과 모진 비바람을 견디고 마침내 풍성한 결실의 계절을 맞이한 것이다. 자연은 말없이 우리에게 인생의 깊은 진리를 가르쳐 준다. 심지 않고 거둘 수 없으며,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 거두는 열매도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고. 이 말씀은 단순한 농사의 법칙을 넘어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영적 원리이다. 우리의 생각과 말, 행동은 모두 인생이라는 밭에 뿌려지는 씨앗이다. 사랑을 심으면 화해와 평화의 열매를 기대할 수 있지만, 미움과 원망을 심으면 갈등과 상처가 자라나기 쉽다. 정직과 성실을 심으면 신뢰가 쌓이고, 이기심과 탐욕을 심으면 관계의 뿌리가 흔들리기 마련이다.

 

추수의 계절을 맞아 우리는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무엇을 심으며 살아왔는가? 가정에서는 이해와 용서를 심었는가, 아니면 불평과 무관심을 심었는가? 교회에서는 사랑과 섬김으로 공동체를 세웠는가, 아니면 시기와 경쟁심으로 형제자매의 마음에 상처를 남겼는가? 성경은 분명한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3:18)고...

 

오늘날 사회학자들은 우리 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인간관계는 오히려 메말라가고 있다는 분석을 종종 내놓고 있다. 즉, 세대 간의 갈등, 이웃 간의 불신, 교회 안의 분열 등이 우리를 안타깝게까지 하게한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경쟁 논리보다 사랑과 화평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라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는가.

 

특별히 인생의 가을을 살아가는 노년의 신앙인들에게 추수의 의미는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젊은 날에는 성공과 성취, 재물과 명예를 인생의 열매로 여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진정한 결실은 얼마나 많이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용서하며 섬겼느냐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한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시92:14). 이처럼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인생에는 은퇴가 있어도 영적 결실의 끝은 없다. 육체는 쇠약해지고 사회적 역할은 줄어들지라도 기도와 격려, 사랑과 나눔을 통해 아름다운 믿음의 열매를 계속 맺을 수 있다. 후손에게 물려줄 가장 귀한 유산도 재산이나 명예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과 정직한 삶의 모범이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더 깊이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인생의 열매는 반드시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름 없이 드린 기도, 어려운 이웃에게 건넸던 따뜻한 말 한마디, 상처받은 사람을 향한 용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의 작은 봉사, 역시 하나님 나라의 귀한 씨앗이다. 세상은 결과와 업적을 평가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과 충성을 살피고 계신다.

 

그러나 선을 행하고도 당장 열매가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외면당하고, 정직하게 살았지만 손해를 보며,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응답이 더디게 느껴지는 경우 말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낙심하기 쉽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고.

 

이 말씀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주시는 위로이자 약속이다. 선한 씨앗은 때로는 긴 기다림을 요구하기도 한다. 농부가 씨앗을 뿌린 다음 날 곧바로 수확하지 못하듯, 믿음의 열매에도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비록 이 땅에서 그 결실을 모두 확인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사랑과 헌신을 기억하고 계신다.

 

또한 우리는 추수의 계절에 감사의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 풍성한 수확은 농부의 수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햇빛과 비, 바람과 토양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기 작용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면 자신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은혜의 흔적이 수 없이 많은 곳에 남아 있다. 즉,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15:10) 말이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고...

 

그러므로 가을의 추수는 단순히 풍요를 즐기는 시간이 아니라 받은 은혜를 헤아리고 이웃과 나누는 감사의 절기여야 한다. 풍성한 열매를 홀로 쌓아 두는 삶보다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이제 가을 들판을 바라보며 다시 마음을 다짐한다. 남은 생애에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보다 더 많은 사랑을 심고, 원망보다 용서를, 경쟁보다 섬김을, 절망보다 소망을 선택하리라고... 지나간 날의 잘못은 회개하고, 아직 남아 있는 시간에는 믿음의 씨앗을 더욱 정성껏 뿌리리라고... 우리 인생의 마지막 수확이 세상의 성공이나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믿음과 사랑의 열매이기를 소망하면서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을은 단순히 곡식을 거두는 계절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삶의 열매를 돌아보고, 남은 날에 심어야 할 믿음의 씨앗을 새롭게 결단하는 은혜의 계절이다. 마침내 인생의 추수가 끝나는 날, 주님께서 말씀하신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25:21)라는 칭찬을 듣는 것이야말로 우리 신앙인이 소망해야 할 가장 영광스러운 결실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믿음이요 신앙이다.

 

황금빛 가을 들판 앞에서 다시 묻는다. 나는 무엇을 심었으며, 지금 무엇을 거두고 있는가? 그리고 남은 생애에는 어떤 믿음의 열매를 하나님께 드릴 것인가? 를 진지하게 말이다.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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