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손님-나성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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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균 목사(샬롯한인장로교회 원로)
밤손님하면 얼른 성매매자들이나, 도둑을 떠 올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들이 선도되는 과정을 아는 우리는 그들을 통하여도 배우는 바가 많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친히 오셔서, 이 땅의 불우한 창기들까지도 그들의 진심을 따라, 용서받게 하시고, 훌륭한 제자로 삼으신 것을 보고 감동과 충격을 받는다. 때로는 별 볼일 없는 여인들, 불우하고 버림받은 많은 여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새 삶을 힘있게 사는 데서 한번 더 감동을 받게 해 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도 요한 이외의 모든 제자들을 포함한 모든 인류에게 버림받으시고, 외롭고 쓸쓸하게 죽으실 때에, 마지막 시신을 모시는 노력에도 앞장설 뿐만 아니라 부활 후에도 부활하신 사실을 모른 채, 시신이라도 다시 잘 모시려는 자세로 예수님을 가장 사랑한 사람들 중에 최초로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되는 축복을 누린 사람이 누구이었던가? 바로 막달라 마리아가 아니었던가? 더러운 귀신이 일곱이나 들려있던 형편없는 삶을 살았던 여인이었으나 고침 받고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하였던 사람,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던 것처럼, 많이 사랑을 받은 자가 예수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하는 증거를 보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나의 죄가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많이 용서를 받았는가에 대한 체험과 감사가 깊을수록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마음과 영혼의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도둑들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옛 고사에서도 보여주듯이, 후한말에, 진식이라는 사람이 학식이 높고 청렴하여 존경받는 지방 관리, 태구현의 현령으로 있을 때, 심한 흉년을 견디지 못하고, 감히 현령의 집에 도둑으로 들어와 양상 곧 대들보 위에 숨어 있을 때, 그 사실을 알고도 모르는 척, 자식들과 손자들을 불러 모아 “사람은 본래부터 나쁜 사람은 없으나, 잘못된 습관이 계속되면 큰 도둑이 된다. 바로, 이 위의 양상에 군자와 같이 된다”라고 할 때 놀라서 내려와 넙죽 절하며, 한 번만 살려 달라는 그를 오히려 비단 두 필을 하사하며 그 어려움을 헤아려 주니, 다시는 못된 짓을 하지 않았다는 일화가 우리에게 감동과 충격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하물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를 깊이 통찰하도록 하자. 우리는 도둑들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진실한 구원을 베푸신 주님을 더욱 바라보아야 한다. 진리와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작은 키를 극복하면서까지, 체면을 불구하고 뽕나무 위에 올라간 삭개오를 올려다보고 사랑하시며 만나주시고 오늘 이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말씀하시던 예수님을 다시 발견하도록 하자.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진실을 알아주시고, 그의 마음으로 예수님을 사모하며, 예수님을 만나 구원 받고 전혀 새로운 삶, 철저하게 회개하며, 새 출발하는 삶은 어느 유대인 지도자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없는 모습인 것을 아시고, 알아주시고, 칭찬하시며, 나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왔다고 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여야만 하겠다. 현재의 삶이 문제가 아니고, 예수님을 만난 이후의 철저한 회개와 새로운 삶을 보이는 참 회개의 열매가 가득한 삶은 우리가 날마다 추구해야 하는 참된 삶인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또 한 사람의 밤손님을 우리는 만나게 된다.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 그는 세상적으로 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었다. 재물과 명예와 지위를 모두 얻었던 보기 드문 지도자이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항상 공허하였다. 참된 진리를 찾고자 애를 쓰는 구도자의 삶은 예수님께 향하게 되었다. 마침 나타나신 인간 예수님, 혜성처럼 나타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다루시는 그분 앞에 속히 달려 나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낮에 떳떳하게 공개적으로 나가기는 무언가 꺼려지는 것이 있었지 않았을까? 그의 체면, 황당한 모험, 만에 하나라도 잘못되면, 큰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위험부담... 이런 것들이 그를 망설이게 만들었음에 틀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에 대한 애모심이 이 모든 것을 이기게 하고, 비록 밤이었으나 담대히 찾아와서,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이런 표적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최소한 나타난 표적들로 볼 때 당신은 틀림없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대 스승이십니다. 무언가 내가 고민하고 있는 바를 해결하여 주실 분이심을 믿습니다 하는 자세로 찾아온 것이다. 바로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사람이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있다고 하시며 거듭남의 비밀을 가르쳐 주시고, 그를 거듭나 새롭게 하실 뿐만 아니라 참된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어 주시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가장 중요한 성경의 핵심적인 가르침이 이렇게 밤중에라도 진리에 대한 애모심으로, 도저히 참된 진리 되시는 예수님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담대하게 찾아 나섰던 그를 통하여 세상에 널리 전파되게 된 것이다.
한 사람 밤손님, 니고데모, 그의 간절한 애모심, 담대한 실천력, 꿰뚫어주시는 예수님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겸손과 결단, 그것이 놀랍게도 그의 인생을 바꾸었으며, 한 사람도 따를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던 바리새인 서기관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예수를 믿는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그는 계속되는 바리새인들 사이에서의 토론 가운데에서도,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요7:51)고 하면서 예수님을 두둔하였으나,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모든 악조건을 뒤로 한 채 오직 예수님만 따르는 참된 제자로서, 특히 서슬이 시퍼런 십자가 사건에서 담대히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진실한 신자로서 사명을 다하였다. 무서우리만큼 처절하였던 순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순간에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 백 근 쯤 가지고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향품 처리하여 드렸던 것은 누구보다 진실한 제자로서의 삶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사건이 된 것이다. 그때 그가 들고 갔던 향품 백 근은 당시의 임금님들에게 드리던 양이었다. 그는 끝없이 예수님을 만왕의 왕으로 모시어 향품 처리하여 드렸던 것이다.
당시 바리새인 지도자로서 거의 유일하게 예수님을 따르며, 끝까지 예수님을 버리지 않았던 니고데모, 그 후의 삶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많은 고난과 핍박 속에서 힘들게 살았을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충격을 주며,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의 모범이 되었으며, 누구라도 예수를 믿으려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렇게 변함이 없어야 함을 웅변적인 삶으로 나타내 주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 당시의 밤손님들처럼 살아야 하지 않을까? 형편없이 버림받은 삶 같으나 깊이 주님을 만나 주 안에서 새롭게 누리게 된 행복과 기쁨 그리고 감격과 확신과 실천으로 온 세상에 희망을 주고, 사회적인 비난의 삶에서 자유와 확신과 베풂으로 관심과 신선한 주목을 받는 삶으로 새 바람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괴리감과 실망만 주는 형식적인 영적 지도자가 아니요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 전혀 새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참 진리의 삶을 온 몸으로 살아내는 이 시대의 참된 제자로 세상을 안아주는 사람이요, 세인들이 새롭게 그 품을 그립게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겠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의미를 이 시대에 가장 맞게 풀어내는 방법이리라.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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