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채플린 이야기”- (끝)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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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숙 목사(제시브라운보훈병원 채플린)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많이 들어본 말이다. 무슨 일이든 시작이 중요하다는 말로,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잘하라는 의미이다. 그럼 도대체 천리 길은 얼마나 먼 길일까? 천리는 약 400km정도의 거리라고 한다. 이 거리를 완주하기 위해선 모든 한걸음 한걸음이 중요하다는 속담의 의미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차근차근 꾸준히 실천해 나가면 천리 길에 도달하듯이 꿈을 이뤄낼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 건물의 계단을 이용하다 보면 벽면에 붙여진 멋진 그림들과 마음에 잔잔한 감동과 용기를 주는 글들을 발견한다. 그중에 하나가 “A Journey of a thousand miles begins with a single step.” 우리말로 하면 “천마일의 여행은 한걸음으로부터 시작한다” 라는 뜻이다. 가장 길고 가장 어려운 모험에도 출발점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 출발점은 바로 첫걸음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채플린이 되기로 뜻을 정하고 길을 찾아 제시브라운 재향군인 병원 채플린인 전선희 목사님을 만난 것이 2016년 9월이었다. 그 후 뜻하지 않는 차량 접촉사고를 통해 호스피스 채플린을 하시는 장스데반 목사님을 만난 것은 그해 11월이었다. 이 두 분을 멘토로 모시고 2017년 8월부터 굿 사마리안 병원에서 1년간 인턴을 마쳤다. 인턴 초기에는 적응하지 못해 잘릴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무사히 고비를 넘기고 인턴과정을 마쳤다. 그 후 1년 반의 공백기를 거친 후 2019년 9월부터 콘델병원에서 레지던트를 9개월 동안 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수많은 어려움들이 있었고, 돕는 손길도 있었고, 고마운 분들도, 평생 잊지 못할 은인으로 남는 분들도 만날 수 있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채플린이 되는 꿈을 꾸지 않았더라면, 꿈만 꾸고 시도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경험할 수도 없는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평생 은인이 될 만한 사람들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기적 같은 일들과 변화를 간단히 떠올려보면 교통사고를 통해 채플린 멘토를 만났고, 병원에서 채플린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글로 쓰고 일간신문에 기고하는 것을 통해 문인회에 들어갔다. 또한 언젠가는 이때 쓴 글을 책으로 출간하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멘토 중의 한 분인 전선희 목사님과의 첫 만남에서 ‘10년이 걸리더라도 미 보훈병원 채플린이 되라’는 말씀에, 시민권 받을 자격이 되자마자 시민권 신청을 해서 받았다. 왜냐하면 시민권이 있어야만 재향군인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도 인터뷰하는 사람이 까칠하게 굴었고, 인종차별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해 ‘인터뷰에 떨어졌다’며 다시 인터뷰 날짜를 잡으라는 말을 들었다. 미국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도 받았고, 채플린 인턴도 1년을 한 내가 인터뷰에서 떨어졌다는 결과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꼬치꼬치 따지고 들었더니 결국 일주일 후에 합격했다는 편지를 받았다.
시민권을 받은 후 미 재향군인병원 채플린부서에서 주말마다 1년 반 동안 자원봉사를 했다. 그것을 통해 병원과 채플린 부서장과 동료들에게 좋은 인상과 능력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일은 제대군인들에게 ‘한글’과 한국 문화를 알리는 수업을 진행했고, 좀 더 규모가 커져 120명 정도가 참석한 ‘한국문화축제’를 펼쳤고, 12명 정도의 제대군인들을 대상으로 ‘일일 한국문화체험’을 실시했다.
2020년 펜데믹 상황으로 미 재향군인병원에서 은퇴한 채플린의 자리에 임시직으로 취직이 되어 1년 3개월간 근무하고 있다. 펜데믹 상황이 아니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정식으로 입사하는 과정을 거치면 거의 400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하고, 미국에서 군복무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우선순위에 밀려 합격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위기의 상황이 나에겐 기회였고, 또한 기적이었다.
요 근래에 경험한 또 하나의 기적은 임시직에서 정규직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작년 10월부터 연방정부의 정책이 바뀌어 정식 채플린이 되기 위해서는 BCC라고 자격증 있는 채플린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초 3개월 정도의 서류 준비과정을 거쳐 5월에 서류를 제출하고 인터뷰 날짜가 잡히기를 기다렸다.
3개월 후면 연락을 준다고 했는데,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 이메일을 여러 차례 보냈고, 전 목사님께서 담당자와 통화를 했다. “9월 말에 임시직이 끝나고 정식으로 지원하기 위해 서류 진행 중인데 이 자격증이 꼭 필요하니 인터뷰 날짜를 빨리 잡아달라”고. 오후 2시쯤 통화를 하고 퇴근하는 3시 반쯤에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다음날 오후 1시에 인터뷰가 가능하냐는 것이다. 결국 다음날 1시에 인터뷰를 했고, 감사하게도 편안한 분위기에서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3분후에 통과되었다며 축하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BCC 자격증을 이메일로 받았다. 그 다음날 정규직 지원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사람의 계획대로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고백한다. “오늘! 살아 있는 것도 기적이다. 그래서 날마다 기적을 경험하고 산다”고 말이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아니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지만, 예상하기로는 10월부터는 정식 채플린으로 사역하게 됐다. 긴 여정의 정점을 찍는 순간이다.
천리 길을 가기 위해 한 발짝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지 5년 만에 이룬 성취이다. 그럼에도 아직 천리 길의 끝점은 멀기만 하다. “인생의 의미는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아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 있다. 계속적인 활동을 통해서 천리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기대하며 가려고 한다. 그 여정 동안 경험할 수많은 만남, 도전, 위기, 실패, 그 실패를 통한 배움의 과정을 통해 일어날 수많은 기적들이 기대된다. 여러분들도 날마다 기적을 기대하며 체험하시기를 기도한다.
The meaning of life is like riding a bicycle is to keep balance you must keep moving.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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