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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부활하셨다 - 마가복음 16:1-11 I 이지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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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카이로스타임즈
댓글 0건 작성일 23-08-3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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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용 목사(뉴욕겟세마네교회)


인간 세상에 죽음이라는 것이 들어온 이래로 죽음은 끝없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영웅호걸도 천하장사도 죽음이라는 상대방은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죽음 만치 인간을 원통하게 한 것도 없을 것이고 죽음 만치 인간을 공포로 떨게 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 가장 큰 두려움이라면 바로 죽음이요 가장 큰 슬픔도 죽음이요 가장 큰 절망도 죽음일 것입니다.

누가복은 711절 이하 보면 나인성에 죽음의 행렬이 있습니다. 젊은 아들을 앞세우고 있는 그 어머니, 일찍이 홀로 되어 그 아들 하나 믿고 수절하며 살아왔는데 그 아들이 죽었습니다. 그 죽음 앞에서 울고 있는, 관을 따라가며 그 앞길을 막고 있는 그 어머니, 그러나 그 어머니가 막아서기에는 죽음은 너무 세력이 강합니다. 창과 칼로도 막을 수 없었던 그 죽음의 길을 그 어머니가 무슨 재주로 막아설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러기에 여인은 우는 것으로 그 원통함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도, 아무도 그 어머니를 달랠 줄 수가 없습니다. 달래주기에는 너무도 큰 슬픔이었기에, 달래줄 사안이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그 여자와 동행하는 것으로 여인에게 격려와 힘을 준 것입니다.

 

이때 여인의 앞으로 나선 분이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가까이 가셔서 울지 말라고 위로하셨습니다. 죽음 앞에서 무슨 위로가 필요합니까? 누가 그 죽음의 행렬에 서 있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까?

그냥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것이 위로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위로하셨습니다. 그분은 죽음을 물리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위로할 자격이 있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관 앞으로 가셔서 관을 멈추시고 명령하셨습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잠든 아이에게 일어나라 아침이 되었다 라고 깨우듯이 주님에게는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인류의 영원한 숙제가 주님에게는 간단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청년은 살아났습니다. 살아난 청년은 다시 성안으로 들어옵니다. 죽음의 행렬이, 원통함과 비애와 통곡과 안타까움이 있었던 그 죽음의 행렬이 이제는 부활의 행렬이 되어 감격하며 기뻐 눈물 흘리며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들은 돌아서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 죽음을 거슬린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믿는 자는 산다!"고 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외아들의 죽음,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구슬피 울어대는 그 죽음만큼 가슴을 찢어놓는 절절한 눈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 종교의 교주들. *석가모니-자식을 잃은 어머니에게. "참으시오" 운명인 줄 알라는 체념을 말했습니다.

*공자-"땅의 일도 다 모르겠거늘 어찌 내세의 일을 알랴!"고 했습니다.

*죽어 가는 무수한 사람들을 살려주었던 고명한 의사들까지도 정작 자신에게 죽음이 찾아왔을 때는 저항하지 못하고 체념상태에서 그 죽음의 행렬 속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아직도 음울한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생명의 봄동산으로 저들을 이끌어 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이 민족을 변화시키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이 민족 위에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15:3-4).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 (보이시고)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 (보이시고)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15:5-8).

 

여러분의 삶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심령 깊은 곳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친히 찾아가시고 임재하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 마음의 문을 여시고 들어가 영생의 충만한 은혜를 가득 채워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창세로부터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수많은 영웅들이 있었고, 그들이 행한 위대한 사건과 업적은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인류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단 하나의 사건을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사건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지금까지 살아온 내 개인의 삶 속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귀한 사건이 있었다면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의 마음에 나타나신 일이라고 믿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의 삶에도 크고 작은 일이 많이 있었으며 앞으로도 여러분의 삶에 너무도 크고 중요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겠지만, 여러분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여러분의 삶을 그 토대부터 바꾸어 놓는 단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면, 바로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나타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구약시대부터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기록해 놓으시고,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고 선언하신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데리고 3년 간 사역하시면서 세 차례 자신의 부활을 예고하셨습니다. 그 중 한 예가 마가복음 831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리라.” 이렇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미래를 대해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미리 예언만 하지 않으셨어도 심적인 부담감이 훨씬 줄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자기가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을 이미 수차에 예언하셨기 때문에, 이 예언대로 예수님이 부활하시면 그 말씀이 진리로 판명되겠지만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분은 한낮 사기극을 벌이다가 형극의 길로 치닫게 된 존재로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은 죽으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기독교가 이 세상을 바꾸어놓진 못했을 것입니다. 정치계, 경제계, 문화계, 교육계가 바뀌고 예수의 이름이 들어가는 곳마다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을 근거로 우리는 기독교만이 참 구원의 종교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만이 참 구원의 진리라고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이런 기독교를 향해 오만하다. 고집스럽다. 독선적이다. 배타적이다. 영적인 독재다라고 하면서 갖가지 언어폭력으로 공격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세계 60억 인구가 3,000여 개의 종교를 가지고 있는데, 각각의 종교마다 진리가 있고 신이 있고 구원이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포용하고 상호 존중해야 된다.” 또한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을 굉장히 높이 평가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다원주의를 쫓는 많은 젊은이들과 지성인들이 갖고 있는 생각의 흐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이런 주장은 다 기만에 지나지 않습니다. 죽음으로 끝을 본 자를 우리는 구원자로 섬길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종교가도 구원자라고 보지 않습니다. 무덤을 놓고 경배와 찬양의 대상을 삼는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전 인류가 소원하는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죽음에서 우리를 건지는 것입니다. 죽음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할 구원자는 죽음을 정복하고 살아나신 분이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214~15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죽음을 이기고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자로 믿는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전파하는 기독교만이 참 진리요, 참 구원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다음 세 가지를 다시금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통해 과연 내가 확실하게 부활 신앙에 기초하여 신앙생활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철저하게 믿어야 합니다.

 

주일날 원근 각처에서 교회로 모여 하나님 앞에 정성스럽게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 가운데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좀더 깊이 들어가 보면 마음이 아닌 머리로만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리로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버젓이 고백하지만, 그 고백이 그 사람의 삶과 생각과 인격을 좌우할 만큼 능력 있는 고백이 되질 못합니다. 그래서 믿는 것 같은데 사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일 이런 사람들이 우리 중에 있다면, 이 시간 마음속에 숨어 있는 의심을 씻어버리는 시간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철저하게 믿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 목격하고 증언하는 사람들의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만 봐도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셔서 장사된 지 사흘째 되던 날 이른 아침에 무덤 앞에서 일어난 사건이 마가복음 16장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가운데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평소 예수님은 내가 죽은 지 사흘 만에 살아나리라고 몇 번이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정작 그 말씀을 기억하고 사흘째 되던 날 아침 일찍 무덤 앞에서 서성거린 제자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전혀 기대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았던 사람들, 나중에는 이를 알고서도 믿으려 하지 않았던 사람들만 등장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다른 복음서의 기록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복음서 기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도록 하고 싶은 욕심을 가졌더라면 이런 식으로 기록해선 안됩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함께 모여 서로 입을 맞춰 기록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부활에 대해서 일관성 있게 기록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각 저자마다 서로 말이 안 맞습니다. 최소한 우리를 납득시키려면 증거에 있어서 모순이 없어야 합니다.

더욱이 맨 처음에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목격한 자들이 여자들이라고 증거합니다. 그 당시 여자들의 말은 참말도 거짓말로 취급해버리는 시대였습니다. 따라서 그런 하찮은 여자들의 입을 빌려 예수님의 부활이 증거된 사실을 그대로 기록했다는 것은 도무지 사람들이 믿도록 하기 위해서 기록한 책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합니다. 단지 자기들이 예상 밖에 발견한 사실을 보고 듣고 느낀 대로 적어 놓은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주목해보면 그것이 거짓말일 수 없음을 분명히 확인하게 됩니다. 믿으려고 한 사람이 아닌데도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증거한 점만 봐도 그렇습니다. 11절에 보면 여자들이 가서 예수님이 살아나셨다고 하자,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듣고도 믿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13절에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나고는 예루살렘으로 허겁지겁 돌아와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외치자 그 말을 들은 다른 제자들도 역시 안 믿었다고 나옵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열한 제자가 있는 방에 나타나셨을 때 책망 먼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아직도 부활에 대해서 회의적인 분들이 있다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기록한 사람들의 기록을 정직한 마음으로 대해 보십시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도록 설득하려고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도 안 믿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엄격히 보면 이 사실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누우셨던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습니다. 빈 무덤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만일 시체를 훔쳐갔다면 예수를 죽인 자들이 기필코 찾아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몇몇 사람들을 직접 만나셨습니다. 결국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인 자들은 부활의 사실 앞에 침묵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의 부활 현장에 있었던 군인들의 입을 뇌물로 틀어막았지만, 예루살렘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예수님의 부활을 외치는 제자들과 여인들의 소리를 잠잠케 할 순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루살렘 도성에 예수의 부활을 외치며 이를 믿는 거룩한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말이라면 어떻게 그 거짓말을 믿고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님을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부활 사건은 꾸며낸 이야기도 아니고, 기독교가 말하는 전설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저하게 주님의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사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사는 놀라운 부활의 축복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믿음이 철저하면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믿음의 영향이 미칩니다. 나의 사고 구석구석에 이 부활의 믿음이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므로 보는 것이 달라지고,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고, 문제를 다루는 자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어가는 사람을 앞에 놓고 예수님의 부활신앙이 어느 정도 나에게 힘과 기쁨과 소망이 되는지는 다른 차원입니다. 예수의 부활을 철저히 믿어야 되는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 부활신앙 때문에 우리가 좌절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 앞에서도 우리는 생명 되신 주님을 찬양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 안에서 우리는 더 힘있게 우리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철저히 믿는다는 것은 나의 부활신앙이 나의 삶 전체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예수의 부활을 담대하게 전해야 합니다.

 

1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여기에서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부활하심으로 모든 인류가 부활할 수 있고, 예수 부활하심으로 모든 예수 믿는 자들이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전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빈 무덤을 본 자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예수님의 살아나심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자들도 나중에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직접 빈 무덤을 보지 못했고 예수님을 만난 적도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부활하셨다고 소리치며 외쳤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 외에 이 세상에 다른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출발점으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놓고 이 세상을 보면 죄는 반드시 정복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악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 앞에서 심판을 받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고통 하는 수많은 죄인들이 용서 받고 영생을 얻는 축복의 날이 올 것입니다. 이 더럽고 악한 세상은 하나님 앞에 심판 받고 영원히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그 나라가 올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을 중심으로 놓고 보면, 이 세상은 희망이 있습니다. 주님만이 희망이요, 소망입니다.

 

앞으로 이 세상에 태어날 모든 인류의 소망은 예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전해야 합니다. 예수 부활하심을 전하십시오. 이제 이 부활의 생명을 받아서 보다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이룩하시기 바랍니다. 매일 옛 사람을 벗어 던지고 새 사람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교회가 진정으로 거듭난 부활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거듭난 부활 생명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어떤 것인지 이 세계 속에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는 부활하신 주님과 날마다 동행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동행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한편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일 먼저 찾은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살펴보면 여러 가지 은혜스러운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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