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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의 리셋 I 좋은 친구-김종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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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카이로스타임즈
댓글 0건 작성일 24-10-03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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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훈 목사(뉴욕예일장로교회)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떤 젊은이가 교수형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효자였던 그는 집에 돌아가 연로하신 부모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왕은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는 일이 될 것이라며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 젊은이의 친구가 찾아와 그가 돌아올 때까지 대신 감옥에 갇히겠다고 말합니다. 만약 돌아오지 않으면 대신 처형을 당하겠다고 합니다.


결국 왕은 그 젊은이의 외출을 허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형 날짜가 되었는데도 그 젊은이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대신 감옥에 갇힌 젊은이를 보고 바보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친구를 비난했습니다. 친구 대신 갇힌 젊은이는 교수형을 받기 위해 형틀로 올라갔습니다. 목에 밧줄이 걸렸습니다. 이 친구의 가족들이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왕이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렸습니다. 사형을 집행하라는 표시였습니다. 바로 그때 멀리서 말을 재촉하며 누군가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바로 사형수인 젊은이였습니다. 둘은 뜨겁게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위로하며 담담하게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왕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이 사형수를 사면해 주겠노라." 그리고 혼자 조용히 말했습니다. "내 모든 것을 주어서라도 이런 친구를 얻었으면 좋겠구나."


구약성경 다니엘서에 보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는 좋은 친구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들은 유대 민족이었으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27미터나 되는 큰 금 신상을 세워 놓고는 모든 백성에게 이에 절하라고 한 것입니다. 불복하는 자는 타오르는 풀무 불에 던져 넣으라는 명령도 덧붙였습니다. 아마 독재자가 제국의 위엄을 세우고 자신을 신격화하기 위해 만든 조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온갖 악기 소리가 들리자 모든 사람이 그 신상 앞에 절했습니다. 그러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절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느부갓네살 왕이 분노하며 그들을 끌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절을 하면 살려주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매우 멋진 말을 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풀무 불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실지라도 금 신상에 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왕은 풀무 불을 일곱 배나 더 뜨겁게 해 이들을 집어넣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들이 불 속에서 털 끝 하나 상하지 않고 걸어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더 놀란 것은 신의 아들과 같은 분이 그들과 함께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왕이 놀라 급히 그들에게 불에서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불에 그슬린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이에 느부갓네살 왕은 자기를 의뢰하는 자에게 천사를 보내어 불 속에서도 보호하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거역 하고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은 모두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리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바벨론 지방에서 더 높은 자리에 앉도록 승진시켜 주었습니다.


개학 시즌이 되면 부모들이 학교에 가는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 좋은 친구를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를 많이 합니다. 아무래도 친구들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불과 같은 시험 앞에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믿음의 좋은 친구들이 있다면 그 시험을 이기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같은 친구들을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지금 우리와 우리 자녀들은 신앙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개인주의가 절대화되면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말씀의 권위가 많이 희미해져가고 있습니다. 신앙은 점점 형식화되고 세속화되어 갑니다. 그 자리에 물질의 번영과 쾌락의 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러한 우상에게 절하고 있는 이때에 손해를 보더라도 신앙을 지키는 사람들이 그립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렇게 불 속에 들어가기까지 신앙을 지키면 가장 좋은 친구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신 좋은 친구입니다. 이런 좋은 친구 예수님을 한번 사귀어 보시지 않겠습니까?


<카이로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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